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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엄 스님 삶·수행으로 본 한국 비구니공동체

  • 불서
  • 입력 2012.05.16 17:07
  • 수정 2012.06.04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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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를 넘어서’ / 석담 스님 지음 / 동국대학교출판부

▲‘한계를 넘어서’

쌍련선원에 도착하던 날 청담, 성철과 함께 원주실 호롱불 아래 앉아 있었다. 성철과는 잠시 동안 몇 마디 대화를 어색하게 주고받았다. 청담은 성철 옆에서 한마디 말도 하지 않은 채 눈을 지그시 감고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 성철이 ‘부처를 아느냐’고 물었다. ‘잘 모른다’고 하니, 성철이 부처님의 생애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조용히 그 얘기를 듣고 있었다. 밤 아홉시가 가까울 무렵, 성철과 청담은 선방으로 건너갔다.


현대 한국불교 최초의 비구니 율사로 불리는 묘엄 스님이 출가를 결심하고 절을 찾은 날, 현대 한국불교 최고 선지식으로 불리는 성철·청담 두 스님은 이제 갓 출가를 결심한 신출내기를 앞에 두고 이처럼 정성을 다했다. 비구와 비구니의 위상이 엄연하게 달랐던 시절에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왜, 묘엄에겐 그 누구도 상상하기 어려운 이런 엄청난 특혜가 주어졌을까? 묘엄이 청담의 딸이었기 때문이었을까?


현재 한국 비구니 승단은 과거 어느 시기보다 교단의 인적 구성이나 역할에 있어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아직도 부족한 면이 많지만 그동안 비구니들은 출가 승단에서 소외된 존재였다. 그래서 비구니의 삶과 수행에 대한 기록은 오늘날까지도 한국불교사에 빈자리로 남아 있다. 때문에 한국불교사 해석은 주로 비구를 대상으로 남성 위주 시각에서 편향적으로 진행돼왔다. 따라서 본격적인 비구니 연구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은 시대적 흐름 속에서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청담의 딸 묘엄 스님의 일대기를 연구대상으로 삼아 한국 비구니 승단의 재건과 정체성 확립 등을 조명한 ‘한계를 넘어서-묘엄 스님 생애와 한국 비구니 승단-’은 본격적인 비구니 연구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제자 석담 스님이 묘엄의 출생을 곧 청담의 파계의 결과로 인식하는 특별한 상황을 정면으로 다뤘다.


저자는 비구니 승가의 일원이면서도 연구자로서 객관적 성찰과 냉정한 관점을 시종일관 견지하고 있다. 승단 내부에서 금기시되고 있는 비구들에게 버림받은 부모나 부인 혹은 자녀들에 관해 조명하고, 한국 불교계가 성문제와 관련된 파계에 대해 비구와 비구니에게 보여주는 차별적 태도를 가감 없이 논제로 삼았다.


책은 저자가 지난 2009년 5월 미국 버지니아대학 종교학과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은 논문을, 원문에 충실해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매년 여름 저자가 스승인 묘엄 스님을 인터뷰한 내용을 토대로 하고 있기 때문에 ‘묘엄 서사시’로 부를 만하다. 그러면서 한국 현대 비구니사를 관통하고 있다.

 

 

▲묘엄 스님의 삶에는 개인과 공동체, 여성과 남성, 불편과 특수가 겹겹이 엮여 있다.

 


묘엄 스님은 사미니가 비구 스승으로부터 교육을 받지 못하게 되어 있던 시절에 성철, 자운, 운허 스님 등 20세기 한국불교를 대표할 만한 비구 스승들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저자는 이 대목을 단순히 청담을 매개로 한 혜택을 넘어, 모든 중생이 붓다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서의 불성론을 체화한 선지식들의 행보로 해석했다.


그리고 묘엄 스님의 성장 과정을 보며 식민수탈과 전쟁으로 가난하고 혼돈스러웠던 시기에 한국 비구니 승가가 어떻게 강력한 교육체제를 수립하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전통을 재정비할 수 있었는지 재구성했다. 그래서 현대 비구니사에 큰 영향을 끼친 묘엄이라는 한 비구니의 삶이 색채 잃은 신화나 전설로 증류되기 전에 생명력 넘치는 역사로 기록될 수 있었다. 이렇듯 저자가 연기적 서사로 재구성한 묘엄의 삶에는 개인과 공동체, 여성과 남성, 보편과 특수의 씨줄과 날줄이 겹겹으로 엮여 있다. 그 속에서 승단 내 성차별에 대해 치열하게 도전하고 비구니 승단의 정체성을 재확립해가는 과정에서 온 생애를 관통하는 수행자의 치열함을 보인 묘엄을 읽을 수 있다.


책은 승가공동체에서 묘엄 스님이 비구니 교육자로서, 현대 한국불교 최초의 비구니 율사로 그 위상을 확고히 세울 수 있었던 배경과 결과를 통해 비구니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1만5000원.
 

심정섭 기자 sjs88@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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