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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 스님과 내성천을 걷다

날카로운 포크레인 삽질에 가뭇 사라지는 고운 모래밭 눈물 흘러 강물에 더합니다

 

▲ 지율 스님은 1년 전부터 내성천 강가에 머물며 강의 아름다움과 영주댐 건설공사로 인한 변화모습을 사진에 담아오고 있다.

 

 

내성천(乃城川)은 경북 봉화 선달산에서 영주를 지나 낙동강으로 합류하는 길이 109,5km의 낙동강의 지류다. 상류부터 모래를 품으며 크고 작은 산을 휘돌아 내려가는 이 강물은 잔잔하고 느리게 모래알갱이를 굴리는 덕분에 1급수의 맑기를 유지하며 하류에 이른다.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모래로 이뤄진 생태 하천이 바로 내성천인 것이다.


천성산 지킴이 지율 스님은 3년 전부터 4대강 공사로 인한 강의 변화를 답사해 왔고 1년 전부터는 내성천 강가에 머물고 있다. 이곳에서 보존문화유산을 시민의 기금을 통해 확보해 온 내셔널 트러스트와 함께 내성천 땅 1평사기 운동을 전개했고, 내성천을 직접 걸으며 그 가치를 조명하는 텐트학교를 진행 중이다. 또 조계사 경내 컨테이너 박스 전시실인 ‘공간 모래’를 운영하는 등 내성천을 지키기 위한 끊임없는 문화 운동을 펼쳤다. 이에 지난 3월에는 낙동강 내성천 하류에 건립 예정이었던 삼강보의 건립 중단이라는 성과도 거뒀다.


내성천, 세계적으로 희소한 모래강


하지만 삼강을 지켰다는 기쁨도 잠시, 지율 스님은 다시 짐을 쌌다. 이번엔 아예 2013년 완공 예정인 영주댐의 수몰지, 내성천의 상류인 평은리로 들어갔다. 이 곳에 간 단초는 중앙일보의 허위보도였다.


스님에 따르면 중앙일보는 인공 물구덩이를 천성산 늪이라고 보도하는 등 지난 1년 동안 천성산에 대한 왜곡된 기사를 30회 이상 실었다. 스님은 “사실을 왜곡하고 은폐한 이 기사들의 이면에는 제주 구럼비, 원자력 사업, 새만금 등 삼성의 개발 사업을 합리화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며 “영주댐 역시 그 연장선상으로 삼성의 개발이익을 위한 현장이기에 강을 보호하기 위해 이 곳을 찾았다”고 밝혔다.  


지율 스님이 평은리로 들어간 지 20여 일이 지난 5월의 중순, 스님을 만나기 위해 영주로 향했다.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홈페이지 작업을 하고 해가 뜨면 누룽지 한 그릇을 삶아 먹고 다시 강으로 나선다는 스님은 1년 전 내성천 전 구간을 답사할 당시 사진 찍은 장소를 찾아 하루 종일 비교 사진을 찍었다. 강의 변화를 기록하기 위해서다. 스님을 따라 잔잔한 모래로 덮인 강바닥을 걷기 위해 운동화와 양말을 벗어서 가방에 걸었다.


얕게는 발목, 높게는 무릎정도로 천천히 흐르는 맑은 물이 부드럽게 발등을 감쌌다. 모래 바닥은 촉촉하고 폭신했다. 강 주위에 자생하는 왕버드나무의 그늘이 곳곳에 드리워 그리 덥지도 않았다. 물길은 소백산 자락의 수많은 구릉을 따라 굽이굽이 휘돌았다. 내성천은 누가 봐도 한 폭의 비경이었다.


“내성천의 가장 큰 특징은 마치 도화지에 물이 번지듯 강 전체에 모래가 드리워져 있다는 겁니다. 이 모래의 높이가 6m 이상이라고 해요. 물이 흐르면서 모래알을 굴리고 그 모래가 다시 물의 자정작용을 하면서 맑은 물이 계속 유지될 수 있게 합니다. 1급수의 내성천은 낙동강으로 흘러들어 다시 강물의 정화를 맡게 됩니다. 하지만 영주댐 공사가 시작되면서 물의 유입이 달라졌고 모래의 자정작용도 점점 그 힘을 잃어가고 있어요. 모래층은 수억 년에 걸쳐 만들어진 것인데 단 1년 만에 그 모습이 사라지는 걸 보면 개발이라고 하는 작용이 정말 수질정화를 위한 목적인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고운 모래에 내딛는 걸음도 잠시였다. 모래가 쓸려나간 자리에 자갈이 드러나 있었고 자유자재로 흐르던 투명한 강물은 골을 만들고 한 방향으로만 흐르면서 훤히 보이던 바닥의 깊이가 알 수 없을 만큼 탁해졌다.


스님의 설명에 따르면, 적어도 1.5m 이상의 모래가 쓸려 내려갔다고 한다. 그러한 사실은 1년 전 스님이 같은 장소에서 찍은 사진만 비교해도 확인이 가능했다.


평은리는 내성천의 상류에 해당되는 곳으로 댐이 건립되는 지역에 비해 아직 강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나마 남아있는 내성천의 모습이 수몰 이후에는 아예 자취를 감출 수밖에 없는 현실을 스님은 넓게 관찰하고 세심히 기록하는 데 집중했다.

 

 

▲ 영주댐 공사가 시작된 후 내성천의 변화모습. 위 사진이 공사전, 아래가 공사 후다.

 


영주댐 건설 후 모래층 사라져


“댐은 생각보다 엄청난 환경 파괴를 가져옵니다. 강 둔치에 자생해 온 수십 년 나무들이 그대로 잘려 나갑니다. 풍성한 수확을 가져왔던 논과 밭이 물에 잠기기 때문에 지금부터 경작이 금지돼 있어요. 강가 곳곳에 자리한 고졸한 가옥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보상을 받아서 도시로 나가겠지만 주민들은 대부분 어르신입니다. 한 어르신은 이 넓은 농토를 두고 불과 13평 아파트로 간다더군요. 막막하다는 할머니들이 불법인 줄 알면서도 묘종을 심고 공사업체 측은 그 자리를 다시 포크레인으로 이개 버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어요.”


상류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절경을 간직하고 있다는 금강마을을 지나자마자 암담할 정도의 영주댐 공사 현장이 드러났다. 현장에는 시멘트 공장도 버젓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흙먼지 탓에 눈을 제대로 뜰 수도 없었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그 공사현장을 지나면 만나는 미림(美林)이 내성천 전 구간 가운데 가장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는 점이다. 그 곱고 넓던 모래밭은 이미 자취가 없었고 그 자리엔 돌무더기가 널려 있었다.


물이 빠져나간 자리에 수초가 곳곳에서 번식을 했다. 댐 공사를 위해 물길을 인위적으로 바꾸면서 생긴 현상이었다. 하류로 내려갈수록 그냥 걷기에는 발이 아플 정도로 돌이 많았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게 스님의 우려다. 스님은 “누군가 내성천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해보라 한다면 최소한 100조는 넘을 거라고 말하고 싶다”며 “영주댐 공사가 1조라고 하는데 결코 내성천을 대신할 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아직 희망이 있어요. 사실상 댐 공사가 1/10 정도 수준에 머물러 있는 반면 내성천의 변화는 너무도 급격하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공사를 당장 멈춰야 합니다.”


5월 26일 환경을 생각하는 교사들의 모임에서 내성천을 방문할 때 즈음이면 한 편의 교육 자료를 영상으로 제작해서 공개할 예정이다. 6월 초 불교환경연대를 비롯한 불교계 시민단체에서 내성천을 방문한다는 소식은 무엇보다 반갑다.

 

 

▲맨발로 내성천을 거니는 사람들.

 


오전 9시 내성천의 상류인 평은에서 출발해 강을 따라 걸어 온 여정은 중류가 시작되는 지점인 우천에서 마무리됐다. 시계가 오후 6시를 가리켰다. 부은 발을 매만지고 있을 때, 스님은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어떤 일은 10만 명이 촛불을 들어도 안 됩니다. 하지만 아주 깜깜한 어둠 속에서 촛불 하나가 큰 의지처가 되듯이 한 사람이 든 촛불로도 충분히 어둠을 물릴 수 있습니다. 제가 든 촛불은 아주 작아요. 하지만 이 불빛이 거대한 생명의 인드라망에서 하나의 그물코가 될 수 있다면 어둠을 밝히기 위한 작은 노력이라도 해야 하는 겁니다.”
그 바람을 안고서 지율 스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다시 내성천을 향하고 있을 것이다. www.naeseong.org
 

영주=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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