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매를 맞읍시다

기자명 청화 스님
  • 법보시론
  • 입력 2012.06.11 11:18
  • 수정 2012.06.18 10:41
  • 댓글 0

어느 날 아사세왕은 부처님을 찾아뵙고 말씀 드렸다. “세존이시여, 아버지를 해친 저의 참회를 받아주소서, 저는 지난날의 잘못을 깊이 참회합니다.” 부처님은 그를 향해 말씀하셨다. “지금이 바로 자신을 돌아보아 참회할 때이오. 때를 놓치지 말고 참회하시오,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허물을 가질 수 있소. 그러나 곧 스스로 그것을 고치면 그는 훌륭한 사람이오. 나의 가르침은 넓고 커서 어떤 허물이라도 용서합니다. 왕은 지금 참회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어서 부처님은 아사세왕을 위해 다음과 같은 설법을 하셨다. “세상에는 죽어서 천상에 나게 되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죄를 짓지 않고 선행만 하는 사람이고, 또 하나는 죄를 지었어도 그것을 참회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증일아함경’에 있는 법문이다. 아사세왕은 태자 시절, 왕위를 탐내어 자신의 아버지 빈비사라왕을 일곱 겹의 감옥에 가두어 굶겨 죽인 흉악무도한 패륜아였다. 그러한 그가 권력도 누려보고 쾌락도 질탕히 맛보며 세상 경험을 쌓아가는 가운데, 언젠가부터 그의 내면에 무슨 맑은 종소리가 울렸는지도 모른다. 한 번, 두 번, 세 번, …… 그것이 거듭되면서 그는 분명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점점 달라졌을 것이다. 그 변화가 마침내는 그의 자아에까지 닿았을 때,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행위를 뒤돌아보는 눈길을 가졌으리라. 그리고 그 눈길에 의해 지난날의 행위 하나 하나를 조명하다가 문득 왕권을 탈취하기 위해 부왕을 죽인 자신을 발견하고 그 천인공노할 만행에 숨이 멎을 듯한 죄의식과 회오의 감정을 가졌을 것은 당연지사, 결국 그 괴로움 때문에 부처님을 찾아뵙고 참회를 한 것이다.


동물들 중에서 잘못을 하고 뒤에 그것을 뉘우치고 참회할 줄 아는 것은 유일하게 인간뿐이다. 아마 이것이 피부에 짐승스러운 털이 없는 동물로서 가장 인간다운 면모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람으로서 모자라는 것도 없고, 넘치는 것도 없어서 인격적으로 또는 도덕적으로 일체 흠결이 없이 깨끗하고 모범적으로 사는 것은 참으로 훌륭한 일이다. 또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점도 있고 믿을 수 없는 충동도 있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실망도 주고 많은 비난도 받는 행위가 있지만, 뒤에 그에 대한 잘못을 깨닫고 반성하는 것도 또한 훌륭한 일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남의 허물만 보는 것이 아니라 종국에 가서는 자신의 오점도 성찰할 줄 아는 지혜가 있다. 이것이 끝내 져버릴 수 없는 사람의 신뢰이다.


지금 스님들과 종단은 세간으로부터 매를 맞고 있다. 이른바 도박 건 때문이다. 이런 일은 스님들에게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수치이다. 그러나 인간의 속성상, 충동에 대한 자제력이 약한 스님들에게는 있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모든 스님들은 이 사건을 남의 일로 보지 않았으면 한다. 다시 말해서 이번에 도박 건을 일으킨 스님들을 미래의 내 모습으로 주시했으면 하는 것이다. 왜냐면 아직 인격적으로 불완전한 스님들은 그것이 잠재되어 있는 상태이므로 장차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접근할 때, 모든 스님들은 이번의 도박사건을 남의 허물이 아니라 바로 나의 과오로 인식하고 참회의 이유를 가질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종단적인 참회라는 것은 하나의 선언적 의미밖에 되지 않는다. 차제에 도박 건만 아니라 이와 유사한 모든 비행들까지도 자정하는 참회가 이뤄줬으면 한다.

 

▲청화 스님

매를 맞읍시다/ 저 작대기로 후려치는 매/ 피가 터지게 맞읍니다/ 그리하여 철철철 흐르는 피에/ 손가락질 받는 온 몸의 때/ 다 씻겨 흰 살이 드러나게// 둥근 문으로 들어가는/ 산승들의 옷 빛깔은 한 가지인데/ 왜 그 옷을 입은 사람은 같지 않습니까// 한 발우 맑은 물만 들고 가야 할 스님/ 오늘 안개 속 길을 벗어난 발길 있으니/ 비명도 지르지 말고 맞읍시다// 아아, 맞아서, 맞아서/ 새 얼굴이 생기도록 맞아서/ 꺾인 깃대 다시 세우게 하는 매.

 

청화 스님 전 조계종 교육원장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