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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무위법의 생활화

기자명 법보신문

세상사가 마음 그림에 지나지 않음 알고
마음 고요히 바꾸는 사람의 일이 무위법

“상(相)이 있는 유위법은 어찌 무위의 실상법에 한 번 뛰어 들어 여래지(如來地)에 바로 들어감과 같으리오. 다만 근본만 얻을 뿐, 지말을 근심하지 말지니. 마치 깨끗한 유리가 보배스런 달을 머금은 것과 같도다.”


우리는 앞글에서 여러 번 유위법과 무위법의 차이를 알기 쉽게 설명하였다. 한국에서는 그간의 도가철학의 영향으로 저 유위법과 무위법을 알기 쉽게 설명하지 못하고 그냥 글자 그대로 해설하는 정도로 끝냈다. 유위법은 ‘함이 있다’라든가 무위법은 ‘함이 없다’라는 정도의 말이다. 그러나 현대인은 저런 글자 풀이식의 해설로는 만족이 되지 않는다. 유위법은 타동사적인 행위로서 마음의 욕망이 마치 타동사처럼 바깥의 목적어를 지배하고 소유하려는 행위를 말한다.


도덕의 당위도 이 유위법의 영역에 해당한다. 도덕적 당위는 남을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일을 하려는 것이라고 여겨, 그것은 지배와 소유의 일과는 무관한 것으로 착각한다. 당위법도 따지고 보면, 올바른 행위로 남을 지배하려는 의지를 머금고 있으므로 노자가 ‘도덕경’에서 잘 지적했듯이, 당위법도 유위법의 일종에 해당한다. 한국 사회에서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누가 다른 누구를 공격할 때에 으레 당위의 도덕을 내세워 상대방을 도덕주의적으로 공격한다. 변호사가 자기가 그 동안 일해 온 회사를 떠날 때에, 으레 그는 자기가 마치 도덕적으로 하자가 없는 의인(義人)인 양 회사를 나쁘다고 때린다. 한국은 별로 도덕적이지 않은 인간들이 엄청나게 도덕주의적 당위의 구호를 내걸고 고발하고 숙청하려고 하고 시비를 건다. 그래서 도덕주의적 심판으로 우리 사회가 어지럽다.


저와 같은 도덕주의적인 당위법이 우리 사회를 정화시킨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큰 착각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사회에는 저러한 비분강개형의 도덕주의자들이 너무 많다. 무위법은 도덕적 선행위 주창자도 아니고, 세상일을 지식이나 법률이나, 윤리와 기술로서 개조해 보려고 발심을 하지 않고, 세상사가 마음의 그림에 지나지 않음을 알고 마음의 개조 없이 세상사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자득하는 사람의 길을 말한다. 그래서 무위법은 마음을 고요히 바꾸는 사람의 일을 말한다. 그래서 자동사적으로 마음이 자기 입장을 스스로 바꾸는 것이다. 머리띠 두르면서 주먹 쥐고 휘두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한국의 병은 한국인의 의식이 너무 격정적이라는 데에 있다. 격정은 투쟁을 불러 오고 그 투쟁적 격정이 결코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 격정은 또 다른 격정을 불러 오면서 더욱 더 목소리가 격해져 결국 큰 싸움이 일어난다.


불자들에게는 오직 여래(如來)가 유일한 스승이다. 여래는 그와 같이 오셨고, 그와 같이 가셨기에 여거(如去)라 한다. 여래는 자연의 바람처럼 왔다 가셨다. 우주일심(宇宙一心)의 원력에 의하여 욕망의 원력이 그와 같이 무위법에 따라서 왔다 가셨다. 석가모니 부처님만 유일한 여래가 아닐 것이다. 그 사이에 이름 모를 많은 여래가 우리 주위에 왔다 가셨을 수 있다. 늘 격정의 세월 속에서 시끄럽게 나날을 보내온 이 나라는 격한 마음을 충동질하기에 부처님이 거주할 수 있는 틈을 내어주지 않는다.


이기심의 격한 감정, 도덕주의의 격한 감정, 이기심과 도덕주의가 뒤섞인 격한 감정 등이 이 땅을 격렬하게 몰아간다. 해맑은 유리구슬이 달을 품을 수 있는 고요의 시간이 없다. 우리는 유위법과 당위법의 미친 광기를 몰아내는 무위법의 안정된 마음이 그립다.

 

▲김형효 교수
그나마 불교가 남아 있었기에 우리나라가 이만큼 조그만 적정(寂靜)의 평정(平定)을 누릴 수가 있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어떤 정치적 생각이나 종교적 생각에 너무 빨리 미친다. 그래서 깊이가 없다. 미쳐 날뛰는 것을 열렬한 신앙이라고 부추기는 종교인도 있다.
 

김형효 서강대 석좌교수 kihyhy@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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