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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성 스님 [중]

새벽 홀로 도량 돌며 ‘천수경’ 독송

▲스님은 물항아리 수행으로 수마를 조복받았다.

용성이 개최한 ‘화엄경 강의회’ 법석에 오르면서 화엄법사라는 별칭까지 얻었던 춘성은 세속 나이 40세에 이르러 덕숭산으로 만공을 찾아갔다. 여기서 ‘문자에 너무 밝아 화두를 줄 수 없다’는 만공의 말에 충격을 받은 춘성은 갖고 다니던 경전까지 모두 버리고 정혜사 능인선원 작은 방에 들어가 잠도 자지 않으면서 수행에 전념했다.


그렇게 만공 회상에서 정진하던 춘성은 1938년 만공을 떠나 독자적으로 수행하고자 수행처를 금강산 유점사로 옮겼다. 그곳에서 정진하던 춘성은 잠이 쏟아지자 수마(睡魔)를 조복받기 위한 극한의 방법으로 물 항아리 수행을 택했다. 법당 뒤에 큰 항아리를 묻고 물을 가득 채운 후 밤마다 물이 가득한 항아리에 들어가 머리만 내놓은 채 물에 잠겼다. 그는 그렇게 살을 에는 고통과 추위를 이겨내며 물 항아리 속 수행을 거듭했다.


그러던 어느 날 대중 방으로 돌아온 춘성은 “이제 잠은 항복받았으니 방에 불을 지피라”고 했다. 이때부터 자고 싶으면 자고, 그렇지 않으면 깨어 수행하는 자유로움을 지닐 수 있었다. 그리고 50세에 양주 흥국사에서 여름 안거 수행 중 문득 꿈속에서 만공이 연꽃을 들어 보이는 것을 보고 교외별전의 한 구절을 깨달았다.


그날 잠에서 깬 춘성은 “연화장 세계 속에 온몸이 차가웁고/ 대천사계가 나의 몸일레라/ 어떤 사람이 나에게 별전구를 묻는다면/ 바로 비로신이라 답하리라”는 게송을 읊었다. 그러나 만공은 이 게송에 침묵으로 응대할 뿐, 이렇다할 언급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화단에서 꽃구경을 하는데 만공이 “어떤 것이 가장 으뜸가는 꽃이냐”고 물었다. 이에 바로 주먹을 불끈 들어보이자, 만공은 “이것은 그만두고 어떤 것이 두 번째 가는 꽃이냐”고 물었다. 춘성이 곧바로 ‘억!’하고 큰소리를 내지르자, 만공은 미소를 짓고 방장으로 돌아갔다. 선사들만의 법거량이니, 이 상황이 무엇을 뜻하는지 일일이 해석할 수는 없으나 만공이 춘성의 수행력을 인가한 것에 다름 아닌 상황이라 할 것이다.


이후 스승 만해의 옥바라지를 할 때 머물렀던 망월사로 거처를 옮긴 춘성은 추운 겨울날 바위에서 삼매에 들 정도로 참선에 몰입했다. 훗날 그 후유증으로 손과 발에 동상이 걸리고 손톱 발톱이 썩기도 했으나, 그의 정진은 멈추지 않았다. 그 때문에 망월사 선방은 1960년대와 70년대 유명한 수행처가 되었다. ‘도봉산 호랑이’ 춘성이 주석하는 망월사에서 한 철 수행을 하며 춘성에게 선지가 가득담긴 욕 법문을 듣고 안거를 나는 것이 수좌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졌다.


하지만 춘성 문하에서 수행하는 일은 그리 녹녹치 않았다. 춘성 자신이 그런 것처럼 수좌들도 이불을 덮을 수 없었다. 당시 수좌들이 꾀를 내 누비로 장삼을 짓고 이를 길게 해서 이불을 대신하게 했다. 그래서 전국 수좌계에서는 망월사 수좌들을 ‘긴 누비파’, ‘양산박의 긴 누비파’ 등의 별칭으로 부르기도 했다.


춘성은 망월사에 있을 때나 다른 절에 갔을 때나 아침 예불에는 꼭 참석하고 108배를 빼놓지 않았다. 그리고 70대 후반 노구에도 대중과 함께 생활했던 춘성은 취침등이 꺼지고 나면 다른 스님들이 잠든 다음 경내를 포행했다. 새벽 2시까지 그렇게 포행하고 경내를 돌며 정진하는 그는 그 시간 ‘천수경’을 독송하며, 그 독송을 심야정진으로 삼았다. 시인 고은은 비록 크지는 않았지만 가까이서 듣는 그 소리는 장중한 여운을 남겼다고 전했다.
만공 말 한마디에 경전을 내던졌던 춘성이지만 그렇게 경전 독송을 할 정도로 경을 아끼고, 수행에도 변함이 없었다. ‘천하제일 도인’의 면모가 아닐 수 없다. 


심정섭 기자 sjs88@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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