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 만해 스님 ‘조선독립의 서’ 집필

1919년 7월10일 日검사에 전달
조선 독립의 확고한 신념 담겨
모진 고문에도 선사 기개 보여
변절한 민족대표에 똥뿌리기도

1919년 7월10일 서울 서대문 형무소 취조실. 3·1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수감된 만해 한용운(1879~1944) 스님은 일본 검사장을 마주하고도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4개월째 밤낮으로 계속된 고문과 협박으로 두려움에 떨 법도 했건만 스님의 매운 눈초리는 더욱 빛을 냈다. 그리곤 말없이 ‘조선독립의 서’라고 적힌 종이뭉치를 검사장에게 건넸다.


만해 스님은 ‘조선독립의 서’에서 “자유와 평화는 인류와 조선민족이 지향해야 할 근본가치”라고 천명했다.


또 “조선민족이 이미 실력을 갖췄고, 군국주의를 내세운 독일의 1차 세계대전 패망과 민족자결주의를 앞세운 세계정세를 살펴보면 조선민족이 독립을 선언할 수 있는 충분한 명분을 갖췄다”고 갈파했다. 더구나 “반만년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가 오직 군함과 총포의 수가 적다는 이유로 남의 민족으로부터 유린을 받아 역사가 단절됨에 이르렀으니, 누가 이를 참고, 누가 이를 잊겠는냐”고 독립선언의 이유를 당당하게 밝혔다. 결국 만해 스님이 일본 검사장에게 건넨 ‘조선독립의 서’는 조선독립에 대한 자신의 신념이 이러할지니 더 이상 어떤 취조도 소용없다는 무언의 선언이었던 셈이다.


깨알같이 써내려간 스님의 글을 모두 읽은 일본 검사장은 그만 고개를 떨구었다. 조선독립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당위성, 세계정세까지 꿰뚫어보는 스님의 안목과 논리 정연함에 말문을 잇지 못했다. 조선에도 이런 인물이 있었나 싶었다. 한참이 지나고서야 검사장은 “답변은 정당하나 일본 제국의 방침이니 어쩔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기록은 전한다.


만해 스님의 3년간 수감생활은 지옥과도 같았다. 매일같이 이어지는 혹독한 고문, 뼈 속까지 냉기가 스며드는 마룻바닥에서 하루하루를 견뎌야 했다. 오죽했으면 “옥중생활을 하는 사이 정서(情緖)조차 ‘쪼각쪼각’ 부서질 때가 많았다”고 회고할 만큼 옥중생활은 지독한 고통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스님은 결코 조선민족의 자존심을 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지옥에서 극락을 구하겠다”는 구도자의 심정으로 고통의 칼날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지옥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이런 스님이었기에 일본 간수들조차도 “저 중이 제일 간이 크다. 도통 당해낼 수가 없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만해 스님의 이같은 기개는 민족대표로서의 당당함과 나라 잃은 민중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신념에서 출발했다. 스님은 1932년 조선일보에 기고한 ‘평생 못 잊을 상처’라는 글에서 “3·1운동 당시 어린 학생들이 일본 경찰의 제지로 개천에 떨어지면서도 만세를 부르다 마침내 잡혀가는 광경을 보고, 비오듯 눈물을 흘렸다. 그 때 그 소년들의 그림자와 소리로 맺힌 나의 눈물이 평생 잊지 못하는 상처”라고 고백했다. 결국 그 상처가 치유되는 해방 전까지는 지옥과 같은 처절한 고통도 감내해 나가겠다는 다짐이었다.


이런 까닭에 스님은 함께 수감됐던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일부가 일제의 회유에 넘어가거나 고문이 두려워 통곡하는 추태를 보일 때면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심지어 만해 스님은 고문이 두려워 울부짖는 한 민족대표에게 똥을 퍼붓는 일도 마다않았다. 조선독립이라는 민족의 당면과제 앞에 결코 흔들리지 않는 선사다운 기개였던 셈이다.


죽는 순간까지 민족의 독립을 위해 온몸으로 싸웠던 만해 스님. 최근 정부가 과거사에 대한 반성은 고사하고 제2의 군국주의 야욕을 꿈꾸고 있는 일본과 비밀리에 진행한 ‘한일군사협정’ 체결 문제로 세간이 시끄럽다. 어떤 고문과 회유, 협박에도 평생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려 했던 만해 스님의 당당함이 더욱 그리워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