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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장경호 거사의 사재기부

1975년 7월10일 30억 헌납
유년시절 불교만나 발원세워
불교중흥 위해 대중화에 헌신
불서보급·대원정사 등 창립

▲장경호 거사

“내가 소유한 모든 것이 내 것이란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잠시 나에게 맡겨진 것을 관리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모두의 관계 속에서 이뤄진 공동의 것이다.”


동국제강의 창업주이자 현대판 유마거사로 불린 대원 장경호(1899~1975) 거사가 모든 사재를 기부하게 된 주된 이유다. 그는 1975년 7월10일 세연이 다했음을 직감하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평생 모은 사재 30억원을 불교중흥을 위해 써달라며 기부했다.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거치는 동안 낙후된 국가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철강 산업에 뛰어든 뒤 피땀으로 일군 재산이었지만 그는 아낌없이 내려놓았다.


장 거사의 이 같은 보시행은 일제강점기 암울했던 유년시절을 보내면서 만난 불교의 가르침에서 비롯됐다. “인간은 누구나 존엄하다. 때문에 끊임없이 바른 길로 나아가면 어떤 일도 이룰 수 있다”는 가르침은 삶의 지향점이 됐고 “앞으로 불교의 진리를 받들며 살아갈 것”을 결심했다. 그리곤 “상업에 종사해 큰돈을 벌리라. 그리하여 그 모든 것을 불교에 바치겠다”는 발원을 세웠다.


장 거사는 31살 되던 해 대궁양행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사업의 길에 뛰어들었다. 대궁양행은 비수기인 봄과 여름에 농촌을 돌아다니면서 가마니를 헐값에 구입해 수요가 많은 성수기에 되파는 것으로 적은 자본을 투입해 큰 이윤을 얻었다. 이 일을 통해 자본을 키운 장 거사는 1949년 철사와 못을 생산하는 조선선재를 부산에 설립했다.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반드시 철사와 못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장차 전망이 밝다는 사업적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이런 장 거사의 예견은 적중했다. 때마침 한국전쟁이 발생하면서 전쟁을 피해 몰려든 피난민들로 인해 못의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 때 축적된 자본이 곧 동국제강의 창업기반이 됐다. 적지 않은 수익을 올렸지만 장 거사는 여기에 머무르지 않았다. 단순히 소비재를 팔아 큰 수익을 올릴 수도 있었지만 국가경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간산업에 대한 투자가 절실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장 거사가 누구도 쉽게 엄두를 내지 못했던 철강 사업에 나서 마침내 1954년 동국제강을 설립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장 거사는 기업가 이전에 자신에게 엄격한 수행자이기도 했다. 스무 살 때 불교에 귀의한 뒤 술과 담배, 고기를 입에 대지 않았으며 바쁜 일상에도 안거 때면 거르지 않고 선방을 찾아 화두를 들었다. 이런 불교적 삶은 경영철학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그는 “우리 기업의 모든 구성원들은 지극히 소중한 인연에 의해 만나는 것이고 모두 평등한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점을 기업의 경영원칙으로 내세웠다. 이런 까닭에 그는 늘 노동자를 부처님 대하듯 존중했고, 때론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작업장에 뛰어들었다. 창업주의 이런 경영이념은 훗날 IMF라는 경제 위기가 몰아쳐 줄줄이 기업들이 도산할 때도 동국제강이 흔들림 없이 성장할 수 있었던 든든한 배경이 되기도 했다.


불교 이념으로 사업을 성공으로 이끈 장 거사는 불교중흥에도 적극 뛰어들었다. 특히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왜색불교로 변질된 한국불교가 제 모습을 찾기 위해서는 불교의 대중화가 시급한 과제라고 판단했다. 그는 1967년 불서보급사를 설립, 문서 포교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불교중흥 운동에 투신했다. 그런가 하면 1970년 재단법인 대원정사를 설립해 도심 포교의 전형을 구축한데 이어 1973년 대원정사 준공을 계기로 최초의 불교교양대학 개설과 신행단체인 대원회 창립 등 본격적인 대중불교 운동을 펼쳐나갔다. 또 그가 삶을 회향하면서 기부한 사재는 대한불교진흥원을 출범시켰고, 훗날 불교방송을 출범시킬 수 있는 동력이 됐다.


‘탐심에서 벗어날 때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던 장경호 거사. 육바라밀 중 으뜸인 보시의 의미가 퇴색돼 가는 오늘날 그가 마지막까지 보여줬던 큰 원력과 회향은 지금도 잔잔한 울림으로 다가오고 있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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