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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묵조선(默照禪)

기자명 윤창화

묵묵히 앉아 본래 청정한 마음 관조
남송 때 굉지정각 선사가 제창한 선

묵조선과 간화선은 그 수행법에 있어서 정반대라고 할 정도로 다르다. 가장 큰 차이점을 든다면 간화선은 화두참구를 통하여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법이고, 묵조선은 화두를 들지 않고 오로지 묵묵히 앉아서(默坐) 본래 청정한 마음(本來淸淨心, 불성), 즉 자성(自性)과 본성을 관조(觀照)하는 수행법이다.


묵조선은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는 것 즉 좌선을 절대적으로 중시하는 선수행법이다. 고요하게 앉아 좌선하고 있는 그 행위, 좌선 그 자체가 곧 깨달은 부처의 모습이고 부처의 행위이므로(修證不二), 별도로 깨닫기 위하여 화두를 들(참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즉 별도로 깨달음의 세계가 있는 것이 아니고, 좌선 그 자체가 그대로 선의 경지를 현현(顯現)하고 있다는 것이다.


묵조선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말이 바로 지관타좌(只管打坐)이다. ‘오로지(只管) 일체를 끊고 묵묵히 앉아 있는 것이다(打坐)’라는 말로, 오직 간화선이 최고라고 알고 있는 우리로서는 도무지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데, 이것이 간화선과는 다른 현격한 차이점이다. 이 때문에 대혜 종고로부터 ‘묵조는 삿된 선(默照邪禪)’이라는 원색적인 비난을 받았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 회차인 ‘간화선과 묵조선의 격전’에서 다루고자 한다.


묵조선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남송 때 굉지 정각(宏智正覺, 1091∼1157)선사가 제창한 선이다. 그는 중국 5가7종 가운데 하나인 조동선 즉 조동종(曹洞宗) 단하 자순(丹霞子淳, 1064∼1117)의 제자이다. 따라서 묵조선은 곧 조동종의 수행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간화선을 제창한 대혜(大慧, 1089∼1163)선사와는 서로가 방향은 달랐지만 친교는 깊은 편이었다. 두 고승은 모두 송대, 특히 남송을 대표했던 선승이었고 두 살 차이로, 같은 시대 같은 지역(항주, 영파)에서 선법을 펼쳤다.


굉지 정각이 묵조선을 제창한 것은 순수선(純粹禪)인 조사선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즉 북송 후기 조사선은 공안선과 문자선, 구두선 등 말기적 현상이 나타났다. 너도나도 고칙공안이나 달달 외우고 모범답안을 만들어 선문답을 하고(공안선), 언어문자로 선을 표현하고(문자선), 그리고 입으로는 앵무새처럼 ‘본래부처’라고 하면서 전혀 실천은 따르지 않는 이른바 구두선 등 잘못된 선이 유행했다.


이러한 병폐를 극복하고 순수선(純粹禪)인 안심(安心)의 달마선과 무심무사의 조사선으로 돌아가고자 한 것이 묵조선이다. 시대적 태생적인 바탕은 대혜 종고의 간화선과 궤를 같이한다고 할 수 있으나 지향하는 수행법은 이와 같이 현격하게 달랐다.


굉지 정각은 묵조선의 핵심을 요약한 묵조명(默照銘) 첫 구절에서 ‘일체의 언구(言句, 즉 사량분별)를 끊고 묵묵히 좌선하는 가운데 소소영영한 마음 즉 본래 청정한 마음(本來淸淨心)인 불성이 발현된다(默默忘言 昭昭現前)’고 정의했다. 또한 ‘묵조의 수행법은 마음을 무심(無心), 무사(無事)하게 하는 것이다’, ‘담담하고 묵묵히 좌선에 전념하는 그 모습이 바로 선이다’라고 하였으며, ‘묵조선만이 지혜 작용을 활발하게 하여 마음의 근본을 꿰뚫어 볼 수 있으며, 이는 바로 부처와 조사들이 전해 온 참된 선법’”이라고 강조했다.


즉, 오로지 앉아서(좌선) 말과 언어를 떠나 침묵한 채 자성을 반조(返照)하면 저절로 청정한 마음 곧 소소영영한 불성이 그대로 드러나게 되고(昭昭現前) 그것(좌선)이 바로 깨달은 부처의 모습인 동시에 부처의 행위이며, 깨달음의 경지라는 것이다.

 

▲윤창화

깨달아야 한다는 의식, 또는 대오(大悟)가 있다고 판단하여 수행하는 것 자체가 망상이므로, 얻어야 할 것도, 깨달아야 할 것도 없는 무소득(無所得), 무소오(無所悟)의 관점에서 좌선하는 것, 그것이 곧 부처의 경지라는 것이다. 이미 깨달은 부처이므로 지금 여기에서 부처다운 행을 하는 것, 그것이 유일한 진리라는 것이다. 

 

윤창화 changhwa9@hanmail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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