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화선에서는 깨닫기 위하여 ‘무’, ‘간시궐’ 등 화두를 참구한다. 그러나 묵조선에서는 화두를 참구하지 않는다. 지관타좌(只管打坐)라 하여 언어를 끊은 채 오로지(只管) 묵묵히 앉아서(打坐) 본래 청정한 그 마음(本來淸淨心) 즉 불성, 자성, 본성을 반조(返照)한다.
간화선에서는 좌선을 통해서 깨닫는 것이 그 목적이다. 별도로 깨달음의 세계가 있다는 것이고, 부처가 되기 위하여 좌선을 한다(見性成佛).
그러나 묵조선에서는 본래불로서 별도로 깨달음의 세계가 있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깨닫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고요하게 앉아서 좌선하고 있는 그 자체가 곧 깨달은 부처의 행(行)이라는 관점이다.
간화선은 지혜를 가장 중요시했고 선정(좌선)은 그 다음이라는 입장이었고(先慧後定), 묵조선은 좌선을 가장 중시했고 지혜는 그 다음이라는 입장이었다(先定後慧).
이와 같이 간화선과 묵조선은 그 가치관과 목적, 수행방법 등이 현격하게 달랐기 때문에, 서로를 인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대단히 서로를 비난, 비판했다.
먼저 포문을 연 쪽은 간화선의 대표자 대혜(大慧, 1089∼1163)선사였다. 그는 화두를 들지 않고 그냥 묵묵히 앉아만 있는 것은 무명(無明)만 조장할 뿐이라고 하여 ‘흑산하 귀굴리(黑山下 鬼窟裏)’라고 비난했다.
또 ‘묵조는 삿된 선, 짝퉁선이다. 가짜선이다(默照邪禪)’, ‘묵조는 안일무사에 빠져 있는 선이다(無事禪, 無事甲裏)’, 또는 ‘고목처럼, 불 꺼진 죽은 재처럼 아무런 지혜 작용이 없는 고목사회선(枯木死灰禪)이다’, ‘어리석은 선(痴禪)이다’, ‘눈알이 없는 선(盲禪)이다’ 등 아주 원색적으로 비판했다.
이에 묵조선의 대표자 굉지 정각(1091∼1157)은 ‘간화선은 부질없이 깨달음을 기다리고 있는 대오선(待悟禪)이다’, ‘공안(화두)과 깨달음에 얽매여 있다’, ‘사다리처럼 하나의 공안(화두)을 통과하면 또 다른 공안을 통과해 올라가는 제자선(梯子禪, 사다리선)이다’, ‘하나하나 배우고 익혀가는 학습선(學習禪)이다’라고 비판했다.
대혜 선사가 더 적극적, 원색적으로 비판했는데, 물론 그 공격의 대상은 오로지 좌선과 무심무사를 내세우고 있는 묵조선(조동종) 전체였지만, 주 공격대상은 굉지 정각보다는 굉지의 사형인 진헐 청료(眞歇淸了, 1089∼1151)였다.
사실 무심무사를 강하게 주장한 선승은 조사선의 임제 선사이다. 그리고 임제종 황룡파의 동림 상총(東林常總, 1025∼1091)도 무심무사를 주장하여 묵조선과 같은 입장이었다. 대혜는 동림 상총을 향하여 ‘조각(照覺, 동림상총)은 평상무사와 지견해회(知見解會, 알음알이)를 두지 않는 것으로써 도를 삼고 있으며, 더욱더 문제는 묘오(妙悟, 깨달음)가 있는데도 구하지 않았다(蓋照覺, 以平常無事, 不立知見解會, 爲道. 更不求妙悟. ‘宗門武庫’)’라고 비판했다. 우리나라에는 간화선만 있고 묵조선은 없으므로 대부분 묵조선을 부정하는 경향인데, 꼭 그렇게 볼 수만은 없다.
간화선의 제창자 대혜 종고는 항주 경산사, 영파 아육왕사 주지(방장)였고, 묵조선의 제창자 굉지 정각은 영파 천동사 주지(방장)로서 같은 지역에서 법을 펼쳤다. 나이는 2살 차이. 비록 수행법은 크게 달랐지만 개인적으로는 서로를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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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화선과 묵조선이라는 명칭은 서로가 서로를 비판하면서 붙인 이름인데, 양자 모두 인정했다.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