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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소림사

기자명 법보신문

247개 탑들이 장엄한 도량엔 달마대사 자취 고스란히 남아

달마 대사의 전법 도량
9년 면벽하며 후학양성

 

소림무술 등 알려지면서
참배객들 발걸음 이어져

 

 

▲ 국 정주 숭산에 위치한 소림사. 

 


달마대사(達磨大師)는 가히 전설적인 인물이다. 달마대사의 흔적을 찾아서 본 필자는 비 내리는 석가장(石家莊)을 떠나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정주(鄭州)에 도착하였다. 소림사를 가기 위해서이다.


소림사는 정주 비행장에서도 다시 버스로 한 시간여 달려야 했다. 날이 어두워져 숙소가 걱정되었으나 다행히 소림사 절 밑 동네에는 숙박시설이 넉넉하였다.


소림사는 달마대사와 인연이 깊은 절이다. 달마대사는 인도 향지국의 셋째 왕자로서 27대 반야다라 존자에게 출가하였다. 그는 동토(東土)로 가서 법을 전하라는 스승의 명을 받아 중국행을 택하였다. 인도차이나 반도 아래쪽 바닷길을 경유한 대사는 중국 광동성(廣東省) 어느 해변에 내렸다. 지금의 심천이 아닌가 생각된다. 마을로 진입하다가 마을 어귀에서 큰 구렁이가 썩어 가는 것을 목격하고 그 구렁이를 치우는 자비행 중에 몸이 바뀌어 왕자출신으로서의 그 귀티 나는 모습을 잃고 현재 대부분 불자들이 생각하는 험상궂은 얼굴을 얻었다고 한다.


대사가 가장 처음으로 찾아간 절은 법성사(法性寺)였다. 법성사는 지금의 광효사(光孝寺)이다. 필자가 광효사를 직접 방문하고는 달마대사가 육조 혜능대사로 다시 환생하시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왜냐하면 법성사는 육조혜능 스님이 머리를 깎고 수계한 도량인데, 달마대사가 중국에 도착하여 처음 방문한 절이 이곳이라는 것과 후일 수천 거리의 달마대사를 모셔놓은 소림사 초조암에 들러 직접 측백나무를 기념 식수했다고 하니(六祖手植柏) 두 분은 일심동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그 나무는 지금도 초조암 뜰에 장중하게 버티고 서있다.


아무튼 지금의 광효사에는 달마대사가 다녀갔다는 흔적이 여러 곳에 있다. 광효사 큰법당 옆에 보면 큰 비석이 있는데 그 비문에는 “대통 원년에 달마대사께서 천축으로부터 와서 가림(訶林)에 머물렀다”고 쓰여 있다. 가림은 이 절을 말한다. 그리고 그 비석 앞에는 큰 우물이 하나 있는데, 그 우물을 달마대사가 와서 팠다고 한다(洗鉢泉). 기록도 그렇지만 중국의 모든 스님들은 달마대사가 중국 땅에 들어와 법성사(광효사)에 가장 먼저 들린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달마대사는 그 뒤로 불심천자라고 알려진 양무제를 만나게 된다. 양무제는 많은 절을 짓고 많은 스님들을 배출하였다고 한다. 또한 불교적인 지식도 해박하여 ‘방광반야경’을 설할 정도였다. 이런 양무제가 달마대사를 초대해놓고 말했다.


“짐이 그동안 수많은 불사를 도모했는데 그 공덕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달마대사의 답변은 간단명료했다.


“무공덕(無功德).”


양무제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뒤에 또 자리가 마련되었다. 황제 스스로 인내심을 시험하는 일이었다.


“대사여, 무엇이 불교의 본질이 되는 가장 성스러운 진리입니까?”


이번에도 달마대사의 답은 분명했다.


“텅 비어서 성스럽다고 할 것이 없습니다.”


양무제는 어이가 없어 다시 물었다.


“짐과 마주한 당신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달마대사는 “나도 모르겠습니다(不識)”고 말해버렸다.

 

 

▲ 달마대사가 갈대 하나를 꺾어 건넜다는 양쯔강 전경.

 


이후 둘 관계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냉각된 채 헤어졌다. 곧바로 달마대사는 북쪽으로 가기 위해 장강(長江, 양쯔강{揚子江})에 다다랐다. 양무제는 희롱당한 상황을 분개하면서 군사를 풀어 달마대사를 좇게 한다. 군사들이 막 달마대사가 서있는 강변에 접근하자 대사는 갈대 하나를 꺾어서 물 위에 띄우고 유유히 장강을 건너갔다(折蘆渡江).


필자는 중국 무한(武漢) 쪽에서 장강을 보는 순간 입이 딱 벌어질 지경이었다. 바다인지 강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만큼 넓게 보였다. 그런 강을 갈대 잎 하나에 의지해 유유히 건넜다는 달마대사는 가히 전설적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 전설의 힘은 지금까지 이어져 달마대사 상을 모시면 수맥도 차단한다고 난리들이다. 중국에서는 달마무술, 달마권법도 대단한 인기이다.


장강을 건너면 당시는 위나라였다. 위나라로 가버린 달마대사를 두고 양무제가 지공이라는 큰스님께 여쭈었다.
“달마대사는 도대체 어떤 인물입니까?”


지공의 대답은 충격이었다.


“황제이시여, 그 분은 관세음보살의 화신입니다. 부처님의 심인(心印)을 전하는 대단한 분입니다.”


양무제는 그제서야 큰 선지식을 잃은 것에 대해 크게 후회하였다고 한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달마대사는 그 길로 바로 위나라, 지금의 정주 땅 숭산에 들어왔다. 지금의 숭산에는 소림사를 비롯해 초조암, 이조암, 달마 동굴 등이 있다.

 

 

▲소림사 인근의 비림. 달마대사 이후 소림사에 주석했던 스님들의 부도탑들이 주변 숲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다.

 


소림사 큰절 근처에는 247개의 탑이 있는 비림이 있는데 보기에도 아주 장관이다. 탑은 각각이 그 보존상태가 다른데 탑 주인공의 상좌들이 잘된 경우는 탑이 장엄하고 깨끗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는 탑도 외소하고 형편없다고 하니 절 집안이나 세속이나 크게 다를 바 없음을 느낀다. 후손을 잘 둘 일이다. 그 또한 스승의 몫이기도 하지만.

 

조암은 소림사에서 도보로 30분 거리에 있고, 이조암 가는 길은 케이블카가 놓여 있어 그렇게 힘든 코스가 아니다. 한편, 달마대사가 9년간 면벽했다고 알려져 있는 달마 동굴은 소림사 큰절에서 보통 걸음으로 1시간 반 정도 걸리는 거리이다.

 

 

▲ 최근 소림사의 전통문화를 보기 위한 참배객들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소림사는 수년 전만 하더라도 적자를 면치 못했는데 영국의 유수 대학에서 수학한 50세의 젊은 방장이 취임하면서 절 재정이 튼튼해졌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방장은 세계적 CEO로 뜨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도 7~8년 전 소림사를 방문했을 때와는 절 환경이 사뭇 달라보였다. 예전에 없던 붓글씨 판매대가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여러 명의 스님들이 나와서 관람객을 상대로 붓글씨를 써서 백위엔, 이백위엔, 천위엔 등 여러 단계의 값으로 팔고 있었다. 한 부부는 서예작품을 두고 흥정을 하다가 자기네들끼리 대판 싸웠다. 중국에서는 여성의 목소리가 훨씬 세다는 것을 자주 보게 되는데 여기에서도 그러하였다.


한편, 절 여러 곳에 약국이 많다. 정문을 비롯해 경내 이곳저곳에서 스님들이 직접 약을 파는데 고객이 여간 많은 게 아니다. 일반 상비약들이 대부분인데 절에서 나온 약이라니 중국 사람들은 큰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 같았다. 아무튼 이 약국 경영이 소림사 재정확보에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또 하나 특이한 것은 중국의 다른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기복(祈福) 기도’가 있다. ‘기복 기도 합니다’고 현수막을 걸어놓고 몇 명의 스님들이 법당에서 염불하고 축원하는데 그 기도해주는 동참금이 만만치 않았다. 참배나 좀 하려고 기도법당에 들어서는데 스님들의 태도가 영 떨떠름하여 왜 그런가 하고 물어보았더니 기도비를 안냈기 때문이라고 한다.


좀 불쾌하지만, 이방인 주제에 그들의 법도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무례한 줄을 알고 말없이 돌아 나왔다. 우리들의 잣대로 그들을 볼 이유는 없는 것이다. 여하튼 그들은 모두가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소림사 경내에는 달마대사를 특별히 모신 전각과 더불어 도량 여기저기에 스님의 흔적을 기리는 ‘그림조각비석’이 서있다. 활기 넘치는 소림사는 무술의 명성만큼이나 재미난 것도 많다.

 

 

▲ 소림사 경내에 모셔진 달마대사(좌). 장애를 극복하고 아라한이 된 무진행존자(우).

 


덧붙여, 소림사를 참배하는 이들에게 꼭 가보기를 권하는 곳이 있다면 오백나한전이다. 그곳의 392번째 모셔진 무진행 존자는 장애인이다. 입이 돌아가고 눈도 하나 없는 중증의 장애인인데 아라한으로 모셔져 있다. 이것이 불교의 위대함, 인간의 위대함이 아니겠는가!


‘심불급중생 시삼무차별(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 중생이 곧 부처이다.


우학 스님 한국불교대학 大관음사 회주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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