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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사찰재산 경매’ 해인사의 대치욕

1924년 8월18일 동아일보 보도
주지 이회광의 무리한 사업으로
해인사 포교소 집기류 경매처분
90여년 뒤 해인사도 ‘불상압류’

 

 

 

▲1924년 8월18일 동아일보 기사 일부.

 

 

1924년 8월18일 불교계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이날 배달된 동아일보에 해인사 주지 이회광(1862~1933) 스님이 무리한 사업을 추진하다 서울 정동에 있던 해인사 서울중앙포교소의 재산이 압류당해 경매에 넘어갔다는 내용이 보도됐기 때문이다.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해인사의 주지로 인해 사찰 재산이 압류됐다는 소식은 불교계로서는 치욕스런 사건이었다.


동아일보는 이날 ‘해인사의 대치욕’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서울 정동에 있는 해인사 중앙포교소가 광화문 금융조합에서 6000원을 차용했지만 (원금은 고사하고) 그 이자조차 갚지 못해 금융조합에서 지난 달 포교소에 있는 물품을 차압했다”며 “이에 따라 지난 8월16일 부처님만 겨우 남겨두고 풍금과 난로 등 집기류에 대해 경매를 진행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해인사가 왜 광화문 금융조합에서 돈을 빌렸고, 어떻게 사찰 집기류가 경매에 넘어가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보도되지 않았다.


그러다 그해 10월29일 조선일보가 이 사건에 대해 자세하게 보도하면서 사건의 전말이 세상에 드러났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해인사 주지 회광 스님은 1920년 서울에 포교소를 건립하기로 하고 정동에 있던 한 건물을 6000원에 매입해 사찰을 지었다. 그리곤 해인사에서 불상을 모셔와 봉안했다. 또 근대식 의료사업을 위해 포교소 구내에 제중원(濟衆院)을 건립했다.


그런데 회광 스님은 해인사 주지로서 포교소 건립을 위해 막대한 자금을 사중에서 끌어왔음에도 포교소의 소유권을 해인사가 아닌 개인 명의로 전환했다. 또 제중원 역시 해인사와 전혀 관련이 없는 장일이라는 사람을 원장으로 임명하고 소유권도 그 사람의 명의로 돌리는 등 사찰 재산을 전횡했다.


그러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포교소의 외연을 넓히기 위해 추가적으로 정동인근에 6000평의 땅을 13만8000원에 매수하기로 계약하고 10년에 걸쳐 매년 1만3800원씩 분할해 갚기로 했었다. 그러나 이런 거액의 돈을 해인사가 감당하기란 쉽지 않았다. 약속한 토지매입금을 지불할 수 없게 되자 회광 스님은 한성은행 남대문 지점에 포교소 건물을 3500원에 저당 잡혔고, 장일씨도 제중원을 담보로 사채 2500원을 끌어들였다. 또 식산은행 등 많은 금융기관에서 포교소 건물을 담보로 빚을 내면서 자금을 변통했다. 원조 ‘돌려막기’였다.


그러나 눈덩이처럼 불어난 채무를 해결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결국 얼마 되지 않아 이회광 스님은 이자마저도 갚지 못하고 포교소는 금융기관으로부터 압류됐다. 특히 이 빚은 고스란히 해인사의 부담으로 이어질 위기에 놓였다. 해인사 주지의 욕심이 불러온 재앙이었던 셈이다.


당시 조선일보는 “(해인사가)무엇으로 이 채무를 보상하고 정리할까 하여 사내(寺內)의 승려 200여명이 좌불안석으로 초조한 상태에 있다”고 해인사 분위기를 전하며 “천년고찰 해인사가 풍전등화와 같다”고 꼬집었다.

 

사태가 확산되면서 해인사 내부에서는 주지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팽배해졌고, 조선총독부도 일본 조동종과의 병합을 추진하는 등 친일에 앞장섰던 이회광 스님을 해인사 주지직에서 해임하고 만응 스님을 새 주지로 인가했다. 결국 이 사건은 대표적 친일 권승으로 당시 한국불교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회광 스님의 몰락을 자초했던 배경이 됐다.


그로부터 90여년이 지난 2012년 해인사가 또다시 위기에 직면했다. 해인사 주지로 있던 선각 스님이 무리한 납골사업을 진행하다 사찰의 재산이 경매에 신청되고, 심지어 해인사 고불암 무량수전에 봉안돼 있던 불상이 압류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더구나 현재까지 고불암은 여전히 180여억 원의 빚을 떠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일로 주지 재임을 노리던 선각 스님이 조계종 총무원으로부터 임명 보류되고 새 주지가 부임했지만 ‘풍전등화와 같은 해인사의 운명’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역사는 정말 반복되는 것일까?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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