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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 김시열 사장

“불교 인문학적으로 고찰 할 때 행복 배가”

1993년 불서출판 입문
학술서는 불교계 자산
불교인문학 분야 도전

 

 

▲김시열 사장은 불서가 ‘행복에 한걸음 더 가까이 가는 매개체’라고 확신한다.

 

 

1993년, 군사정권 시대가 막을 내리고 드디어 민간정부가 출범했다. 민주화를 염원했던 국민들은 현실을 반기면서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군사정권을 유지했던 당사자들과 한 몸이 되어 탄생한 이른바 문민정부가 제 역할을 하기 힘들 것이라는 걱정을 떨치지 못했다. 젊은이들은 변한 시대에 맞춰 세상 보는 눈을 넓히고자 서점가에서 사회과학과 인문과학 분야 서적을 찾아 들었다.


김시열(霽山, 도서출판 운주사 사장)도 그들 틈에 있었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군에 입대했다가 제대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절이었다. ‘어떻게 살아갈까’ 고민이 깊었다. 그런데 ‘책’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출판업에 막연한 동경도 있었고, 어렵지 않을 것이란 근거 없는 자신감까지 있었다. 그때 불서총판 운주사를 찾았다. 친 누님 내외가 운영하는 곳이었고, 그곳에 출판부가 있었다. 그렇게 불서출판에 첫 발을 디뎠다.


불서출판계는 자신감과 달리 그리 녹록한 일터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은 적이 없었다. 1998년 IMF때는 그야말로 출판계가 풍비박산 나듯 했다. 출판업은 급격하게 하향세로 돌아섰다. 반전이 필요했다. 누님 내외와 상의 끝에 총판과 출판을 분리하기로 했다. 몇 년간 준비 끝에 2001년 드디어 분사를 실행했다. 총판과 출판을 분리하면서 출판을 보다 강화하고 전문적으로 그 일에 매진하려는 선택이었다.


그렇게 독립 한 이후 현재까지 대략 200여 종의 책을 펴냈다. 일반 출판사들은 분야별 전문 인력을 두고 지속적으로 분야별 서적을 출간하지만, 운주사는 그렇지 못했다. 몇 명의 편집 인력이 전체분야를 다룰 수밖에 없었다. 김 사장은 “전문성과 정체성을 갖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그래도 다양성을 보이고자 노력했다. 스님들의 법어는 물론, 에세이, 학술서, 어린이 서적까지 분야를 넓혔다. 여기에 불교가 관념적 종교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불교문화와 실용서적까지 출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불서 읽는 풍토가 척박한 상황에서 출판사 운영이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수행관련 서적들은 불자와 일반인들에게까지 꾸준히 읽혀서 운주사 운영의 버팀목이 됐습니다.”


그렇게 출판 분야 다양성을 추구해온 김 사장은 몇 년 전부터 그동안 쌓은 출판 역량을 바탕으로 학술서에 관심을 가졌다. “학술서는 시장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출판사 입장에서 쉽지 않은 선택입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누적되면 그대로 불교계 자산이 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지금까지 16권을 펴낸 프라즈냐총서 시리즈가 이달 2권 더 발간될 예정이다. 매년 10권 가량 학술서를 발간하면서 ‘학술서 내는 출판사’로 인식되고 있기도 하다.


삶에 희로애락이 있듯, 책에도 갖가지 사연이 얽혀 있다. 지금껏 펴낸 200여 종 책 가운데 ‘그림으로 만나는 부처의 세계-탱화’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상업적 이익이 따른 것은 아니다. 저자와의 인연과 출간 후 평가 때문이다. 총판과 분리하기 이전이었다. 어느 날 전통불화작가가 원고 뭉치를 들고 찾아왔다. 그림은 훌륭했지만 도제식 공부를 한 탓에 이론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적지 않았다. ‘책으로 출간하기에 부족하다’며 가감 없이 문제를 지적했다. 작가는 돌아갔고, 김 사장은 잊었다. 그런데 7년 후 그가 다시 찾아왔다. 그동안 이론적으로 무장했고 다시 쓴 원고를 내밀었다.


외조부 해안 스님 덕에
절마당 놀이터 삼기도
불서출판은 삶이자 꿈

 

불화를 그리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열정과 노력에 마음이 움직였다. 함께 그림을 선정하고 글을 보강한 끝에 1년 만에 책으로 펴냈다. 작가의 30년 열정과 혼이 담긴 전통불화의 세계를 다룬 책은 이후 전통불화를 시작하는 이들에게 ‘교과서’로 불리고 있다.


김 사장이 그렇게 상업성을 떠나 ‘작품’에 마음을 둘 수 있게 된 계기는 ‘선의 황금시대’와의 만남이었다. 읽으면서 그동안 스스로 제도화하고 관습적으로 받아들이던 인식의 틀이 깨졌다. 감동과 충격이 동시에 밀려오면서 내재된 세계관이 송두리째 뒤흔들렸다. 그렇게 그 책은 다른 무엇에 연연하지 않고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불서 출판업을 이어가는 바탕이 됐다. 불서 만들기는 스스로도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지만, 무엇보다 독자들에게 불교를 다양하게 알릴 수 있다는 기쁨이 함께 했다.


여기에는 어려서부터 생활 속에 불교가 있었던 인연도 작용한다. 사람 좋은 웃음과 따뜻한 감성도 그때부터 몸에 배었다. 그에겐 혹시라도 외할아버지에게 누가 될까 싶어 밝히지 않은 가족사가 하나 있다. 내소사 해안 스님이다. ‘동(東)경봉(鏡峰) 서(西)해안(海眼)’이라 하여 동쪽의 경봉 스님과 비견되며 수행납자들의 존경을 받았던 해안 스님은 스스로 7일 용맹정진에서 견처를 얻는 체험을 했듯, “누구나 7일이면 깨달을 수 있다”며 항상 출·재가 수행자들에게 철저히 공부할 것을 강조했었다. 은산철벽을 뚫고 마치 광대무변한 허공으로 날아가는 봉황처럼 일생을 살다간 그 내소사 서래선림 조실 해안 스님이 바로 외할아버지다.


“외할아버지 덕분에 어려서부터 절에서 살다시피 했고 절 마당을 놀이터 삼아 뛰어놀았습니다. 이모님 중에 한분도 출가하셨고, 그렇다보니 불교가 특별히 종교라기보다는 생활 속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이론적인 부분은 책을 만들면서 공부했고, 그 재미가 좋았습니다.”


불서를 만들면서 배운 부처님 가르침은 자신의 인생관에도 잘 맞았다. “논리 정연한 철학체계를 갖고 있으면서도 선이라는 파격이 있고, 어렵고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기복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콘텐츠가 풍부한 종교다. 그는 그런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사회에 내보이는 방법으로 출판 분야를 불교인문학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불교가 확장된 형태로서의 인문학을 통해 사회적 통합과 융합을 다룰 수 있을 것이며, 불교의 가르침을 알고 인문학적 고찰이 가능해질 때 더 행복해 질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김시열 사장의 불서 만들기는 1993년 시작한 이래 햇수로 20년이 됐다. 때론 속으로 눈물을 삼킬 때도 있었으나, ‘불서는 불자가 행복에 한걸음 더 가까이 가는 매개체’라는 믿음도 생겼다. 그 자신도 불서를 만드는 생활 속에서 행복을 만끽하고 있다. 불서 출판이 ‘삶이자 꿈’이 됐다.


심정섭 기자  sjs88@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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