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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사의 생떼’와 ‘기독교의 배려’?

  • 기자칼럼
  • 입력 2012.09.17 14:53
  • 수정 2012.09.19 19:11
  • 댓글 1

이런 일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어느 날 고위 공무원이 집에 들어오더니 “오늘부터 이집 마당을 마을 사람들 공원으로 사용키로 했으니 함부로 집을 수리하거나 짓지 말라”고 한다. 워낙 ‘힘센’ 사람이라 집주인은 항의도 못하고 눈치만 봤다. 그런데 40여 년이 지나도록 그 공무원은 다시 나타나지도 않고 공원으로 만들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집주인은 가족이 늘고 집이 낡아 방을 더 만들고 이곳저곳을 보수했다. 그런데 집 마당이 공원이라 집수리를 하거나 방을 만드는 것이 불법이란다. 집주인은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 더 가정해보자. 돈 많은 마을 사람 한 명이 집을 크게 새로 지으며 사람들이 다 같이 사용하고 있는 길 지하를 뚫어 자신들의 안방으로 사용하겠다고 한다. 윗사람들이랑 다 이야기가 됐으니 문제없단다. 마을 사람들은 그 길이 나라 땅인데 그렇게 사용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됐다. 그래서 더 높은 마을 행정 책임자에게 물어봤더니 그렇게 하면 안 된단다. 자, 이제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부잣집에서 하는 일이니 그냥 손 놓고 구경만 해야 할까.


이런 일이 우리 집이나 우리 마을이 아니고 사찰이나 교회에서 벌어졌다. 평가의 잣대가 달라져야 할까.


기독교계에서 발행하는 일간지 국민일보 인터넷 뉴스에 기사 하나가 실렸다. ‘서초구가 사랑의 교회 측에 도로 지하 점용허가를 내준 것은 무효’라는 행정소송을 낸 종교자유정책연구원(약칭 종자연)에 대해 한국교회언론회가 비판 성명을 냈다는 소식이다. 기사에서는 ‘종자연이 봉은사의 무허가 건축에 침묵하며 기독교계만을 공격하고 있다’는 해당 단체의 주장을 전했다. 성명서를 살펴보니 ‘봉은사 무허가 건축물’ 문제와 ‘사랑의 교회의 도로점용’을 비교하며 ‘불교계가 실정법을 무시하고 수많은 불법건축물을 양산해왔으면서 그 불법의 원인이 정부에 있다고 ‘생떼’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생떼’의 사전적 의미는 ‘아무 까닭이 없이 트집을 잡음’이다. 봉은사가 아무 까닭 없이 정부를 상대로 트집을 잡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한국교회언론회, 즉 언론에 관심이 많다는 사람들이 ‘생떼’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조차 모르는 것인가.


봉은사는 1971년 사찰 경내와 주변 전체가 공원용지로 지정됐다. 천년 넘게 이어져온 사찰이 하루아침에 공원이 되면서 법당, 요사채는 물론이며 화장실 등 편의시설 조차 불법이 되는 어이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종자연은 특정 단체가 공공 도로를 독점하려는 행위에 대한 다수 시민의 이익과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동시에 서울시가 “공공도로 지하 점용 허가를 취하 하라”고 서초구에 지시한 시정조치가 이행될 수 있도록 활동하고 있다. 이 사안을 기독교계의 활동에 대한 불교계의 공격이라고 낙인찍는다면 한국교회언론회와 종자연 중 과연 누가 더 종교편향적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내 것을 돌려 달라’는 봉은사와 ‘남의 것을 쓰겠다’고 버티는 사랑의 교회를 비교하며 “기독교계가 불교계의 모든 행위에 대하여 ‘모른 척’ 한 것은 몰라서가 아니라, 이웃종교에 대한 배려의 차원이었음을 밝힌다”는 대목에서는 그저 실소가 나올 뿐이다.

 

▲남수연 기자

그들에게 차라리 부탁하고 싶다. 모른 척 하지 말고 알기위해 더욱 노력하라. 무엇이 우리 사회의 상식이고 무엇이 생떼인지.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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