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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백성욱 박사 입적

1981년 9월15일 84세 입적
독일서 국내 첫 불교학 박사
내무부장관·동대 총장 역임
‘금강경’ 독송 수행모임 견인


▲백성욱 박사
독립운동가. 수행자, 정치인, 교육자로서의 삶을 살았던 백성욱 박사가 1981년 9월15일(음력 8월19일) 84세로 입적했다. 그는 우리나라 불교학자로는 처음으로 유럽 유학을 떠나 불교학 1호 박사가 됐고, 해방 이후 내무부 장관을 거쳐 정치인으로도 활약했으며 동국대 총장, 동국학원 이사장 등을 맡아 교육행정가로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인물이었다.


1897년 서울에서 태어난 백성욱 박사는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1910년 7월 정릉 봉국사에서 최하옹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11년부터 불교전문강원에서 불교경전을 배웠던 백 박사는 1917년 동국대의 전신인 경성 불교중앙학림에 입학했다. 당시 불교중앙학림은 불교계가 설립한 근대 고등교육기관으로 예과 1년과 본과 3년으로 총 4년 과정이었다.


이곳에서 그는 불교중앙학림 강사였던 만해 스님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고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특히 백 박사는 중앙학림 학인들과 더불어 3·1운동을 주도했으며 이후 지방 사찰을 돌며 청년운동 조직을 만들어 나갔다. 그러나 일제의 감시가 심해지는 등 더 이상 국내에서 활동하기가 어려워지자 중국 상해로 건너가 임시정부에 참여했다. 이곳에서 이승만 등 당시 임시정부의 주요 인사들과 교류했고, 이는 해방 이후 내무부 장관으로 발탁되게 된 계기가 됐다.


상해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던 백 박사는 그로부터 얼마 뒤 유럽 유학을 결심했다. ‘선진학문을 익혀 대중들을 계몽하고 변화시키는 것이 조국광복을 앞당기는 길이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백 박사가 생소했던 유럽 유학을 택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는 당시 중국 지식층을 중심으로 진행됐던 ‘근공검학(勤工儉學)’운동의 영향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김영진 동국대 HK연구교수에 따르면 1920년대 프랑스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전후 복구를 위해 외국인노동자를 받아들이는 정책을 폈다. 중국 지식인들은 청년을 모집해 노동자로 파견, 그곳에서 학업을 병행하도록 했다. 훗날 중국 공산당을 이끈 덩샤오핑도 근공검학 운동 출신이었다. 결국 백성욱 박사의 프랑스 유학은 중국청년들과 함께 근공검학 운동에 참가하면서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어찌됐든 1920년 프랑스에 도착한 백 박사는 파리 보베고등학교에 입학해 그곳에서 독일어와 라틴어 등을 배웠다. 그리곤 1922년 다시 독일로 건너가 뷔르츠부르크 대학 철학과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고대 희랍어는 물론 독일 신화사와 천주교 의식 등을 공부하며 학문의 폭을 넓힌 그는 1925년 10월 ‘불교순전철학’으로 국내 첫 불교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내로 돌아온 백 박사는 1928년 중앙불교전문학교 교수로 취임해 학인들을 지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백 박사는 얼마 되지 않아 교단을 떠나 금강산으로 단신수도에 들어갔다. 평소 후학들에게 ‘제 아무리 부처님 아들이라도 부처님의 지혜를 상속 받을 수는 없다. 수행하는 것을 미루지 말라’고 했던 말들을 스스로 실천하기 위해서였다. 백 박사는 금강산 장안사, 안양암, 지장암 등을 거쳐 오대산 적멸보궁 등에서 해방이 될 때까지 10여년간 수행정진을 했다.


해방과 동시에 국가재건에 앞장섰던 백 박사는 1950년 내무부장관에 발탁돼 국가치안을 담당했으며, 1952년과 1956년 부통령 후보로 입후보했다가 낙선하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1953년 모교인 동국대 총장과 1954년 동국학원 이사장을 맡아 종합대학으로서의 면모를 갖출 수 있도록 이끌었다.


이후 4·19혁명과 5·16군사쿠데타 등 격변의 세월을 지켜본 백 박사는 1962년 돌연 모든 공직을 내려놓고 부천 소사동에 현대식 법당을 신축해 ‘백성목장’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후학 양성과 대중교화에 매진했다. 특히 그는 공부의 기본을 ‘금강경’으로 삼고, 아침저녁으로 ‘금강경’ 독송을 강조하면서 수행모임으로 이끌었다.


‘경전이 있는 곳에 부처님이 계시다’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것이 곧 제 마음을 닦는 것’이라는 그의 가르침은 이후에도 ‘금강경독송회’, ‘바른법연구원’등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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