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라만상의 그림자 그 가운데 나타나고, 한 덩이 둥글게 밝음은 안과 밖이 아니로다. 활달히 공하다고 인과를 없다고 하면, 아득하고 끝없이 앙화를 부르리로다.”
불법은 공도 아니고 불공도 아니므로 여여하게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불법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해와 달, 그리고 하늘과 땅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과 약간의 차이를 갖는다. 왜냐하면 불법은 저들 명사들의 존재방식과 달리 지시 가능한 명사들의 방식처럼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저들 명사들은 하나가 곧 일체를 이루는 그런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 명사들은, 즉 개개명사들은 개별적으로 따로 따로 존재한다. 그러나 불법은 하나가 곧 전체를 이루는 일체의 방식을 띠면서 존재한다. 그래서 불법은 일즉일체 되는 그런 존재방식을 갖는다.
세상의 존재방식은 존재론적인 연관성을 띠기보다는 오히려 존재자적인 개별명사들의 합계와 유사하다 하겠다.
존재자들의 개별명사들의 집합은 내외와 상하원근의 구별이 있어서 명암의 정도가 뚜렷이 표시되어 나타나는데 반하여, 존재의 세예는 내외와 원근의 표시를 아울러 나타낼 수 없다. 왜냐하면 존재의 세계는 중심이 되는 명사나 대상이 없어서 원근과 상하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존재의 세계가 존재자들의 형상이 없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하늘의 존재는 해와 달과 별들의 존립을 떠나서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존재자들이 곧 하늘의 존재를 더욱 찬란히 빛나게 만든다. 해와 달과 별들의 존재자들의 빛남이 하늘의 텅빈 존재방식을 더욱 더 빛나게 만든다. 존재자들의 존재방식은 텅 빈 공간이 허용해 주는 배경을 무대로 하여 성립한다. 해와 달도 허공이 없다면 존립할 수 없듯이, 삼라만상의 존재도 다 빈 허공의 힘을 배경으로 하여 우리에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존재하는 모든 삼라만상이 삼라만상으로 성립하는 까닭은 삼라만상이 그렇게 존재하도록 가능케 하는 허공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체적 명사들로서의 존재자들과 그 존재자들을 존재하게 하는 텅 빈 허공의 힘이 합쳐서 존재의 말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존재라는 말은 존재자라는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성립한다.
그러므로 존재는 ‘삼라만상의 그림자 가운데서 나타난다’는 ‘증도가’의 구절은 철학적으로 일리가 있다. 즉 존재는 존재자의 그림자 속에서 이미 그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존재가 존재자의 그림자 속에서 그 의미를 작동시키고 있다면, 그 존재의 힘은 안과 밖이 구별되어 있어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존재자 가운데 존재의 힘이 작용하고 있으나, ‘증도가’의 구절처럼 존재의 힘은 안팎의 구별이 두드러지게 구분되지 않는다. 존재의 힘은 안팎의 구별이 구분되지 않아서 개별적인 존재자처럼 지시할 수 없으므로, 그 힘은 텅 빈 공의 모습과 유사하다.
존재가 공의 의미와 다르지 않다. 존재가 존재자의 존재와 분리되어 의미를 띨 수 없으나, 존재와 존재자는 완연히 다르다. 구태여 말하자면 존재자는 구체적인 명사와 같은 어떤 것으로 지시가능 하지만, 존재는 그런 성질을 띠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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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효 서강대 석좌교수 kihyhy@nate.com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