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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층종교와 심층종교

이슬람·개신교 충돌은
종교 본질 혼돈이 원인


문자에만 집착해서는
진정한 행복 알 수 없어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충돌이 심상치 않다. 미국에서 제작된 무슬림 비하 영화에 이슬람이 분노하고 있다. 리비아에서 미국대사가 숨졌고, 세계 각국의 시위현장에서 50여명의 아까운 목숨이 스러졌다. 이슬람교와 기독교간 대립은 뿌리가 깊다. 십자군전쟁과 이슬람의 유럽침공 등 크고 작은 충돌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그래서 갈등은 필연적이다. 그러나 지금의 갈등은 서방의 책임이 크다. 유럽열강은 19~20세기, 양세기를 거쳐 석유의 확보를 위해 무력을 동원해 중동을 식민지화 했다. 중동의 지도를 다시 그리며 꼭두각시 정권을 세우고 부패한 정권을 지원하며 석유를 약탈했다. 2000년 넘게 살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내쫓고 그 땅에 유대교의 나라 이스라엘을 세우도록 했다. 오랜 세월 쌓아온 이슬람의 문화와 자존심이 처참히 짓밟혔다. 무슬림은 분노했다. 그 뒤로 2001년 미국 세계무역센터에 대한 9·11테러를 비롯해 각종 폭력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서구열강에 대한 무슬림의 복수다.


불구대천의 원수와 같은 두 종교는 아이러니하게도 뿌리가 같다. 같은 신을 믿고 같은 조상에 같은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알라’는 풀이하면 하느님과 같은 의미다. ‘야훼’를 똑같이 유일신으로 믿고 있다. 다만 기독교의 구원자 예수와 이슬람교의 예언자 무함마드에 대한 입장은 첨예하다. 그렇다고 적의(敵意)까지 가질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폭력으로 다른 사람을 교화하는 방법을 불교에선 상상할 수가 없다. 불교가 세계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진리를 전하고자 노력했던 구법승들의 땀과 노력 덕분이다. 전법의 과정에서 더러는 죽고 더러는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저 비폭력의 순교만이 있을 뿐이다. 중국의 폭압에 맞서 티베트인들이 택한 가장 강력한 저항은 스스로의 몸을 태우는 소신공양이다. 중국에 직접적 타격을 입히지는 않지만 강렬한 저항이다. 달라이라마 또한 개종을 반기지 않았다. 불교는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다. 삶의 방식은 그대로 둔 채 종교만 바꾼다고 해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원로 비교종교학자 오강남 교수는 “종교간 분쟁은 표층종교에서 심층종교로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표층종교는 문자에 집착하고, 구원과 같은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한다. 문자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이단으로 몰아붙이고 폭력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심층종교로 들어가면 체험이나 깨달음을 통해 욕망의 나를 벗어던지고 내 안의 신성(神聖)이나 불성(佛性)과 직면하게 된다. 모든 사람이 신성이나 불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면 분쟁은 설자리를 잃게 된다. 불교는 심층 종교를 지향한다. 표층종교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라면 불교는 궁극적으로 손가락을 넘어 달을 보라고 가르친다. 극도의 증오를 불러오는 이단 논쟁에서 불교가 자유로운 이유다. 요즘은 불자들도 부처님과 복을 거래하고 종교적인 배타성을 쌓아가는 이들이 있다. 불자라면 자비와 관용이 있어야 한다. 기복이 아니라 진리를 향해야 한다. 심층으로 들어가야 한다.


“법도 궁극에는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법이 아님에 얽매여서야 되겠는가.” 금강경의 가르침이다.

 

▲김형규 부장

이슬람교와 기독교 모두 문자와 원리주의에 집착하지 말고 심층으로 들어가 진정한 신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절로 분심(忿心)이 멎을 것이다.


불자들은 맹귀우목(盲龜遇木)의 가르침을 만났으니 참으로 행운이다. 

 

김형규 kimh@beopbo.com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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