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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

1918년 10월7일 무력항쟁
법정사 김연일 스님이 주도
스님·농민 등 700여명 동참
'사교도 선동운동’왜곡되기도

 

 

▲법정사 항일운동을 형상화한 제주 항일기념관의 디오라마.

 


1918년 10월7일 새벽4시. 제주 서귀포 법정사에는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몰려든 스님과 불자, 농민들로 가득했다. 이들은 한 손에 태극기를, 다른 한 손에는 농기구를 들었다. 또 곤봉과 총을 든 사람도 적지 않았다.


법정사 주지 김연일 스님은 출정에 앞서 대웅전 앞마당에 깃발을 세워두고 거사가 반드시 성공하기를 발원하며 기원제를 올렸다. 그리곤 대중 앞에 나서 “일본 제국주의가 우리 동포를 학대하고 있다. 우리가 나서 그들을 이 섬에서 추방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호소했다.


그러자 이 자리에 모인 스님과 불자, 농민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며 서귀포 중문을 향해 행진을 시작했다. 화승총 3정과 몽둥이로 무장한 선봉대 30여명이 먼저 길을 나섰다. 법정사를 나서자 동참 인원들이 점점 늘었다. 특히 일제로부터 농토를 빼앗긴 농민들의 참여가 부쩍 늘었다. 서귀포로 향할 때에는 이미 700여명이 넘어섰다.


농민들의 참여가 컸던 것은 김연일, 박주석, 강창규 스님 등 이미 육지에서 항일운동을 진행하다 제주로 건너온 불교선각자들의 영향을 받은 것도 주된 요인이었지만, 1918년 일제가 진행한 조선토지조사사업이 결정적 계기가 된 것으로 학계는 추정하고 있다. 당시 일제는 조선토지조사사업을 통해 농민들의 가지고 있던 농토의 모든 권리를 빼앗았다. 이로 인해 삶의 기반을 빼앗긴 농민들은 더 이상 타협의 여지가 없었다. 치밀한 계획과 준비 덕에 스님과 농민들은 전광석화 같이 일본 경찰들을 향해 진격했다. 이들은 날이 밝기도 전에 중문의 일본 경찰 주재소를 불태웠고, 주재소에 갇혀 있었던 주민 13명을 구출하는 성과를 냈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농민들의 항쟁 소식을 들은 일본경찰들이 대대적인 반격을 시작했다.


오전 11시경 서귀포 경찰관 주재소 기마 순사대가 총으로 무장하고 스님과 농민들을 향해 진격해왔다. 일본 경찰의 강력한 총칼 앞에 스님과 농민들이 든 무기는 초라했다. 700여명에 달하던 항쟁민들의 대오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급격히 무너졌다. 대부분의 항쟁민들은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어 뿔뿔이 흩어졌다.


그나마 간신히 목숨을 건진 사람 가운데 66명은 일본 경찰에 체포돼 수감되고 말았다.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은 그렇게 막을 내리고 말았다. 비록 실패로 돌아가긴 했지만 법정사 항일운동은 스님들과 불자, 농민이 중심이 돼 진행한 불교계 최대의 무장 항일운동이었다. 또 5개월 뒤 발생한 3·1운동을 촉발하게 한 중요한 사건임에 틀림없었다.


그럼에도 이제까지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은 근현대사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법정사 항일운동이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사교(邪敎)도들이 벌린 민중 선동사건으로 왜곡되거나 ‘보천교의 난’으로 불리기도 했다. 실제 1938년 ‘매일신보’는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을 ‘사교도의 민중선동’으로 보도됐다. 이런 시각은 해방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지면서 법정사 항일운동은 큰 의미를 갖지 못했다. 더구나 불교계 역시 이와 관련해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서 일제시대 불교계 최대 무력항일운동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 했다.


그러다 1994년 법정사 항일운동 당시 수감된 사람들의 사건 기록과 명부가 기록된 자료들이 발굴되면서 법정사 항쟁은 새롭게 부각되기 시작했다. 실제 이런 자료를 토대로 2008년 ‘법정사 항일운동의 불교사적 의의’를 발표한 김광식 박사는 “법정사 항일운동은 민족과 국가를 지키기 위한 스님들과 불자들의 결단이자 행보였다”며 “특히 이 항일운동 속에는 민족불교의 이념이 흐르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불교계에서는 법정사 항일운동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지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근현대사에 대한 불교계의 관심과 연구가 절실한 이유이기도 하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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