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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삼조사(三祖寺)-上

기자명 법보신문

거대한 석조 일주문에서 승찬 스님의 위용을 보다

혜가 스님 만나 출가
복광사서 구족계 받고
6년간 시봉 끝에 전법

 

 

▲안위성 천주산에 위치한 삼조사 입구. 하늘을 향해 높게 솟은 석조 일주문이 웅장한 기운을 내뿜고 있다.

 

 

삼조사(三祖寺), 삼조선사(三祖禪寺)는 3조 승찬 스님께서 머물던 절이다. 먼저 3조 승찬 스님과 그의 스승, 2조 혜가 대사와의 첫 인연을 소개하기로 한다.


혜가 대사는 남북조시대, 북주 무제가 불교를 탄압하던 시절에 환공산이라는 산에서 속인의 복장으로 살았다. 법난을 피해 승복을 벗었다고는 하지만, 빛이 안에 있으면 겉으로 드러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스님에게는 도(道)의 티가 저절로 배어 나왔다. 숨은 도인으로 소문이 났다. 그즈음에 40대로 보이는 몰골이 아주 흉악한 처사 한 사람이 찾아왔다. 2조 혜가 대사 앞에 무릎을 꿇고 여쭈었다.


“큰스님, 보시다시피 저는 풍병을 앓고 있습니다. 전생에 무슨 죄가 그리 많아서 항상 죄를 한 짐이나 지고 다닙니다.”


2조 혜가 대사가 말하였다.


“그래, 그렇다면 네가 짊어지고 있다고 하는 죄의 짐을 내려놓아라!”


처사는 정말 내려놓을 짐이 있나 싶어서 안간 힘을 쓰다가 말씀드렸다.


“큰스님, 아무리 내려놓으려고 해도 내려놓을 짐은 없네요.”

 

 

▲삼조사 대웅전에 봉안돼 있는 불상. 부처님 가슴에 卍자가 유독 큰 것이 특징이다.

 


다급한 상황이 벌어졌다.


“무슨 소리! 빨리 나한테 그 죄의 짐을 바쳐라!”


“큰스님, 내려놓으려고 해도 내려놓을 짐이 없고, 바치려고 해도 바칠 짐이 없습니다.”


그때 2조 혜가 대사는 단언하였다.


“너의 죄는 이미 다 참회되고 없어졌다! 불(佛), 법(法), 승(僧), 삼보(三寶)가 자네를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네. 이제부터 너는 삼보의 품 안에서 편히 쉬도록 하라.”


그러자 처사가 다시 여쭈었다.


“큰스님을 뵈오니 승보는 알겠습니다만 불보(佛寶)와 법보(法寶)는 알지 못하겠습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마음이 불보요, 마음이 법보이니라. 부처와 법은 둘이 아니니라!”


처사는 크게 느끼는 바가 있어서 정중하게 말씀드렸다.


“큰스님, 오늘에야 비로소 죄의 성품이 안과 밖 중간 어디에도 있지 않은 줄 알겠습니다. 마음이 그러하듯이 부처와 법이 둘이 아닌 줄 알겠습니다.”


2조 혜가 대사는 처사의 법기(法器)가 큰 것을 알고 머리카락을 깎아주며 말했다.


“그대는 나의 보배이다. 그대는 스님들의 보배가 될 것이다. 그대의 법명을 승찬(僧璨)이라고 하리라.”

 

 

▲삼조사는 한때 삼곡사라고 불렸다. 절 입구에는 아직도 그 이름이 남아 있다.

 


그렇게 입문한 승찬 스님은 열심히 수행하는 중에 그 고질적인 풍병이 저절로 나았다. 일심(一心)이 청정하니 일신(一身)이 청정해진 것이다. 이후 스승 혜가 대사는 복광사라는 절에서 3조가 될 승찬 스님에게 구족계를 주었다. 승찬 스님은 근 6년 동안 은사인 혜가 대사를 모셨는데 어느 날 전법(傳法)이 있었다.


“본래 인연 있는 땅에
땅으로 인해 종자와 꽃이 나느니라.
본래 종자가 없다면
꽃도 나지 않느니라.”

 

잠시 후, 스승은 3조 승찬에게 명하였다.


“때를 기다렸다가 정법을 설하라. 때를 기다려라!”


3조 승찬 스님의 이러한 출가 동기와 스승 2조 혜가 대사와의 기연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물어 물어서 삼조사(三祖寺)를 찾아갔다. 내심 무척 기대가 되었다. 삼조사는 안위성 천주산(天柱山)에 있다. 높이 1485m의 천주산(天柱山)은 산 이름 그대로 산봉우리들이 쭉쭉 하늘 향해 뻗쳐 있다. 산이 하늘을 떠받들고 있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산 분위기에 어울리게 석재로 잘 다듬어진 일주문 또한 걸작이었다.

일주문에서 쳐다보면 산비탈 전체가 절로 보일만큼 삼조사 규모가 크다. 절에 막 들어서면 입장료를 내는 매표소가 나타난다. 무심코 통과하려는데 직원들이 우리 일행을 잡는다.


‘한국에서 온 스님들인데 돈을 내야하느냐?’고 하였더니 ‘스님들은 그냥 들어가도 좋은데 통역 가이드 겸 신도는 돈을 내야한다’며 다그친다. 밖에 나와 보지도 않은 채 매표소 안에서 말한다.


“돈 안 내려면 가이드, 당신들도 머리카락 깎아라.”


머리카락을 깎을 수는 없고 두 사람 입장료 20위엔을 지불하면서 일행들은 “스님들은 좋겠다. 절에도 다 무료요, 들어가면 절마다 공양도 거저 주니……”하고 귀여운 넋두리를 한다. 입장료는 다른 곳에 비하면 아주 싸다.
삼조사는 3조 승찬 스님이 최초로 세운 절은 아니다. 서기 505년 지공(志空), 또는 보지공(寶志空)이라는 스님이 이곳에 보리암을 지었다. 나중에 절 이름이 산곡사(山谷寺)로 바뀌고 그 뒤로 건원선사라는 이름으로도 있다가 3조 승찬 스님이 주지로 살면서 삼조선사(三祖禪寺)로 불렸다. 승찬 스님께서 본격적으로 머무시게 된 때는 서기 590년 인데, 그전에 특이한 사연이 있었다.

 

두타행 끝에 삼조사 정착
말년엔 삼조 동굴서 참선
선의 요체 ‘신심명’ 남겨

 

 

▲삼조동굴 내부에 모셔진 승찬 스님 상.

 


승찬 스님은 한때 토굴 같은 곳에서 소욕지족의 두타행을 하면서, 남루한 걸인의 복장으로 건원선사 공양간 사미들에게 찬밥이나 얻어먹는 신세였다. 못된 사미를 만나는 날이면 가끔은 쫓겨나기도 하였다. 행색은 초라하였으나 풍기는 이미지가 남달랐던지 한 행자가 주지스님에게 승찬 스님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그래서 승찬 스님은 주지스님과 독대하게 되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주지스님은 승찬 스님이 대단한 정신적 경지에 있음을 어느 정도 간파하였다. 주지 스님은 바로 절에 기거할 것을 허락하고 공양주 소임을 맡겼다.


그런데, 한번은 깡패들이 급습하였다. 모든 대중들을 한 곳에 몰아넣고는 돈과 쌀을 요구하였다. 내놓은 물건이 많지 않으니까 주지를 내동댕이치고 행패를 부렸다. 그때 승찬 스님이 참다못해 나섰다.


“내일 너희들의 두목이랑 이 앞 공터에서 한판 붙겠다.”


그래서 그 다음날 낮에 큰 대결이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다행스럽게도 깡패 대장을 일격에 무너뜨리는 쾌거를 달성하였다. 마음을 졸이고 지켜보던 주지스님은 싸움이 끝나자말자 승찬 스님에게 부탁했다.


“청하건 데 주지를 맡아주시오. 당신이 주지감이요!”


그래서 3조 승찬 스님은 본의 아니게 이 절의 주지를 맡게 되었고 그 뒤로 사명(寺名)이 삼조선사라고 불려졌다.
삼조선사를 막 들어서면 사천왕문을 만난다. 동쪽의 지국천왕, 남쪽의 증장천왕, 서쪽의 광복천왕, 북쪽의 다문천왕은 한국과 같이 늘 익히 듣는 신장들인데 특별히 돔 형식의 건축물 구조가 재미있었다. 천정 벽면에 눈에 띄는 글귀가 있다.


위태보살(). 위태보살은 요즘도 스님들이 신중기도 축원 할 때 ‘위태천존 동진보안대보살……’이라고 읊조린다. 위태보살을 사천왕문에 써놓은 경우는 처음 본다.


대웅전으로 들어서면 높은 천정에 꽉 찬 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다. 중국의 많은 절을 다니면서 참배하였지만 삼조사의 부처님은 이색적이다.


안내자의 말에 의하면 승찬 대사가 조성한 부처님은 아니라고 하지만 필자의 눈에는 승찬 대사의 이미지와 꼭 부합하였다. 깡패 대장을 한방에 쓰러뜨렸다면 맷집이 있어야 할 텐데 그러한 승찬 스님의 선입견과 잘 맞아 떨어지는 부처님이었다. 옷 입은 모습 또한 소박하면서도 멋이 있어서 흰 바탕에다 금색 줄무늬를 입혔다. 특히 부처님 상호는 인간 냄새 물씬 나는 남자상으로 보여 첫 눈에 믿음이 갈 정도였다. 그 절의 주지는 그 절 부처님을 닮는다는 말이 있는데 시공의 한계를 넘어서서 통하는 말인 듯하다.


부처님의 32상 80종호의 특징에 보면 가슴에 만(卍)자가 있다는데 삼조사 대웅전 부처님의 卍 자는 유별나게도 큼직하고 분명하다. 한마디로, 대웅전 가운데 모셔진 주불(主佛)은 어느 모로 보나 멋이 있어보였다. 기골이 장대하고 투박한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오래오래 그 인상이 기억에 남는다.

 

 

▲대웅전 법당 한켠에 수북이 쌓여 있는 법보시용 책들.

 


한참 부처님 존안을 뵙고 있으려니 뒤쪽에서 책 뒤적이는 소리가 나서 돌아보았다. 저만치 거리에서 법당지킴이로 보이는 한 스님이 무슨 책인지 독서삼매에 빠져있고 대웅전 법당 한 켠에 여러 종류의 책이 수북이 놓여있다. 모두 공짜로 가져가도 좋다는 안내문이 있었다. 우리로 말하면 무료로 배포하는 법보시 책이다. 경전에서부터 스님들 수필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하였다.


대만의 불광산사 성운대사의 책도 눈에 띄었다. 중국이나 대만을 다녀보면 이 절처럼 무료 법보시 책이 많다. ‘법보시 공덕회’ 같은 단체가 있어서 뜻 있는 신도들이 회원으로 가입하여 재정적 뒷받침을 한다는 말을 들었다.
필자도 늘 이러한 시스템의 책 보급 구상을 해 왔는데 신심이 부족해서인지 실행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회원제로 하여 월 얼마씩의 기금을 모아 우선 교도소, 군부대 등에 맘껏 책을 들여놓고 싶다. 그래서 지금 세우고 있는 작은 원력 중의 하나가 평생 동안에 33억권 책을 주위에 법보시하는 일인데, 이것이 실행되면 전 인류의 반이 나의 원력에 동참하는 일이 되므로 ‘이 또한 아주 의미 있는 불사가 아니겠는가!’하고 생각한다.

 

 

▲승찬 스님이 참선을 하며 ‘신심명’을 쓴 곳으로 알려진 삼조동굴.

 


책 한 권을 챙겨 걸망에 넣고 대웅전을 나와 조사전으로 가는 길에 삼조동(三祖洞))이라는 바위굴을 만났다. 표지판에 이르기를 이 삼조동에서 삼조 승찬 스님께서 참선도 하시고 그 유명한 신심명을 쓰셨다한다.


우학 스님 한국불교대학 大관음사 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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