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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돌되는 인권

기자명 법보신문

길거리를 지나다보면 전쟁의 참혹함을 알리는 사진이나 학대받은 아동, 또 아프리카 난민들의 처참한 모습의 사진을 접하곤 한다. 대부분 모금을 위한 전시다. 고통스런 사진을 보면 안타깝고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편치 않다. 인권이 무참히 짓밟힌 현장을 알게 되는 것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사진 속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야기가 공개된 장소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눈앞에 보여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이렇게 알려지는 것에 대해 동의했을까?’, 그리고 ‘이런 과정을 거쳐 모아진 도움을 흔쾌하게 받아들일까?’하는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인권침해를 나타내는 현장의 사진이나 동영상이 반전이나 인권에 대한 의식을 고취시키는데 효과적이라 하더라도 무분별하게 게재되고 전시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인권침해가 나타나기도 한다. 타인의 고통을 한낱 구경거리로 만들거나, 그 극악한 ‘현실’을 마치 정지된 하나의 ‘그림’처럼 인식케 하거나 누군가의 아픔을 홍보의 수단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특히 기아로 죽어가는 아이들의 지원을 위해 아동 개인의 정보가 노출되는 것만이 아니라 부모들과 형제들 전체의 사진이 노출되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 과정에서 부모의 무능력함, 지역사회와 국가의 무기력함이 강조되는 것은 훨씬 심각한 문제다. 물론 이런 문제의식을 인지하지만 그 참혹한 현장을 그대로 알리는 것만이 함께 살아가는 일이기에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고통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실제 상황을 나타내는 사진과 동영상이 지나치게 자극적으로 변하고 있다. 심지어 알권리, 알릴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네티즌에 의해 기존 언론을 통하지 않고 직접 나서서 찾아내고 단죄하는 일까지 일어나고 있다. ‘지하철 00남’ 등의 사건에서처럼 비난받을만한 행동을 한 사람의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려지고 그 이후 불과 몇 시간 만에 남성의 이름, 나이, 학교, 거주 지역 등 상세한 개인정보가 인터넷에 올라온 일이 있었다. 하지만 곧 허위정보임이 밝혀졌고 이로 인해 잘못된 정보에 오르내렸던 이름을 가진 엉뚱한 사람들이 사생활 침해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다수의 힘, 여론의 힘으로 한 개인의 신상을 낱낱이 밝혀내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에 지나지 않으며 심각한 사생활 침해일 수밖에 없다. 사회 공익을 위해서라면 정의의 이름으로 그 신원을 밝혀 일벌백계의 표본으로 삼아야 한다며 신상이 공개되는 소위 ‘신상털기’가 마치 유행처럼 일어나고 있으며 성범죄와 같은 2차 피해 등 심각한 인권침해도 단순 취재대상이나 뉴스거리로 취급되고 있다.


대중의 연인이라고도 하는 스타의 사생활도 무차별적으로 폭로되며 이 과정에서 그들 역시 심각한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한다. 포르노그라피조차 표현의 자유로 보장해야한다며 옹호되고 있지만 여성의 이미지를 왜곡하거나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모독하는 착취적인 방식으로 그려지는 포르노는 폭력이 될 수 있다. 세상은 이런 형태의 폭력에 익숙해지고 있다.


누군가의 입장에서 필요한 권리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 될 때, 즉 서로 다른 요구를 가진 권리가 현실에서 충돌할 때 누구의 권리가 우선하는가?

 

▲김영란 소장
우리 모두 각자의 인권이 존중되고 보장받기를 원하는데 모두의 인권을 지키는 것이 가능한가?


분명한 것은 나의 권리를 위해 다른 사람의 사진이나 기사, 동영상 등을 올릴거나 알릴 때 그것이 사회에 어떤 파장을 미칠지, 다른 사람의 권리에 어떤 영향을 줄지, 공익과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를 항상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역할과 책임의 대부분이 언론, 매체에 있는 것도 분명하다. 

 

김영란 나무여성인권상담소장 ranyhar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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