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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성철 스님 열반

1993년 11월4일 입적
‘증도가’ 읽고 출가 결심
1947년 봉암사결사 주도
지계 등 수행자본분 강조

 

 

▲성철 스님

 

 

최근 조계종 원로 스님들이 종단 정치에 깊숙이 개입하는가 하면 원로의장직을 두고 심각하게 대립하는 일들이 발생하면서 종단 안팎에서 우려가 크다. 종단 원로 스님에 대한 존경은 고사하고 ‘이젠 후학들이 원로 스님까지 걱정해야 할 판’이라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오고 있다. 그런가 하면 법의 상징이 돼야 할 총림 방장 스님의 권위가 흔들리고 있는 것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새삼 1993년 11월4일 입적한 조계종 전 종정 퇴옹당 성철 스님의 사자후가 그리워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부처님 법대로 사는 것이 결국 불교가 나아가야 할 길’이라며 묵묵히 수행자로서의 길만 걸었던 성철 스님. 평생 산속에서 살았지만 불자뿐 아니라 많은 국민들로부터 존경 받았던 가장 대중적인 스님이었다. 성철 스님은 종교지도자가 걸어야 할 삶을 가장 올곧게 실천한 인물로 추앙받고 있다.


1912년 경남 산청에서 태어난 성철 스님은 출가하기 이전부터 ‘행복론’, ‘순수이성비판’, ‘역사철학강의’, ‘소학’, ‘대학’, ‘기독교 신구약성서’, ‘자본론’ 등 동서고금의 철학서 70여권을 탐독했다. 출가 이후 스님이 사회를 꿰뚫어보는 안목과 지혜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이 시절 풍부한 인문고전에서 기인한 것이다. 스님은 또 불교서적에도 심취하면서 삶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이어갔다. 그러나 스무 살 되던 해 결혼을 했고, 두 딸을 낳을 때까지 스님에게 불연(佛緣)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그러던 스님은 어느 날 지나가는 탁발승으로부터 건네받은 영가현각 선사의 ‘증도가(證道歌)’를 읽고 비로소 인생의 전환기를 맞았다. 훗날 ‘증도가’를 접한 것이 “밤중에 횃불을 만난 것 같았다”고 회고할 정도로 스님에게 선(禪)은 삶의 갈증을 풀어줄 감로수였다.


‘대자유인으로 사는 것은 불가(佛家)에 귀의해 수행을 통해 진리를 깨달을 때만 가능하다’고 생각한 스님은 그 길로 대원사를 찾았다. 마침 백련사에 주석하던 당대 선지식 동산 스님을 친견한 스님은 1936년 3월 비로소 삭발염의하고 출가수행자의 길에 올랐다.


출가의 뜻이 남달랐던 스님은 수행에도 두드러졌다. 수행 이외의 어떤 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고 오로지 자신 앞에 놓인 화두를 깨치는 일에만 몰두했다. 범어사 내원암과 통도사 백련암, 은해사 운부암과 금강산 마하연선원 등에서 용맹정진하며 화두를 참구해 온 스님은 1940년 동화사 금당선원에서 마침내 오도송을 읊었다. 그러나 스님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때부터 장좌불와를 시작하면서 깨달음을 점검 받기 위해 전국의 선방을 찾아 안거 정진에 나섰다. 송광사 삼일암을 비롯해 수덕사 정혜사, 서산 간월암, 통도사 내원암 등에서 동안거와 하안거를 보내며 정진했다.


확철대오의 경지에 오른 스님은 1947년 청담, 자운, 월산 스님 등과 함께 봉암사 결사를 주도하며 한국불교를 바로 세우는 일에도 앞장섰다. 특히 ‘출가자의 본분은 자급자족하며 수행에 전념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봉암사 결사의 공주 규약(共住規約)은 조선과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왜곡된 한국불교를 개혁하겠다는 스님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었다.


스님은 누구보다 스스로에게 엄격했다. 평생 계율에 엄격했으며 청빈함을 잃지 않았다. 또 개인적 명예를 위한 어떤 직함도 갖지 않으려 했다. 실제 1955년 자신의 뜻과 달리 해인사 주지로 추대되자 스님은 바로 팔공산 파계사 성전암으로 거처를 옮긴 뒤 스스로 철조망을 치고 외부와 단절했다. 그 유명한 10년 ‘동구불출(洞口不出)’이었다. 그런가 하면 스님은 1981년 조계종 종정에 추대됐지만 단 한 차례도 산문을 벗어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중은 중답게 살아야 한다’는 스님의 확고한 신념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스님은 대중 교화에 게으르지 않았다. 해인총림 초대 방장으로 부임하면서 불교의 중도사상을 100일 동안 법문했을 뿐 아니라 종정이 돼서는 부처님오신날과 신년 때마다 특별 법어를 내려 유신과 군부독재로 고통 받는 중생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기도 했다.


현대한국불교사를 대표하는 선지식으로 추앙받고 있는 성철 스님. 평생 부처님법대로 살아야 할 것을 강조하며 몸소 실천했던 스님의 모습은 출가수행자들이 걸어가야 할 삶의 나침반이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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