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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보조사상’ 발간

보조硏, 1987년 11월15일
성철 스님 돈점논쟁이 계기
월례발표로 토론문화 선도
사찰지원 학술단체 ‘롤모델’

 

 

▲보조국사 지눌 스님 진영.

 

 

보조사상연구원이 1987년 11월15일 창간한 학술지 ‘보조사상’은 당시 불교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보조사상연구원의 초대 원장인 ‘무소유’ 법정 스님이 창간호에서 당시 종정이었던 성철 스님의 ‘돈오돈수’ 주장을 반박하며 보조 스님의 ‘돈오점수’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일부 학자들이 반론을 제기한 적은 있지만 조계종에 소속된 스님이 직접 종정 스님을 비판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따라서 보조사상연구원의 ‘보조사상’ 발간은 본격적인 돈점논쟁의 서막이었다.


현대 한국불교에서 돈점 논쟁은 1981년 성철 스님이 ‘선문정로’에서 보조 지눌 스님의 돈오점수 사상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비롯됐다. 성철 스님은 선문정로에서 “지눌의 돈오점수설은 깨치지 못한 거짓 선지식이 알음알이로 조작해 낸 잘못된 수행이론”이라며 “알음알이는 깨달음을 이끌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깨달음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된다”고 주장했다. 스님은 한 발 더 나아가 “돈오점수 사상을 신봉하는 자는 전부 지해종도(知解宗徒)이며 이단사설(異端邪說)에 현혹된 자들”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성철 스님의 이 같은 주장은 조계종의 중흥조로 추앙 받으면서 절대적 권위를 누려오던 보조선에 대한 비판이라는 점에서 큰 충격을 줬다. 특히 보조 스님의 가풍을 이어오고 있는 사찰인 송광사 측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당시 종정인 성철 스님에게 즉각적인 반론을 제기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1987년 2월 송광사가 주도해 출범한 보조사상연구원은 학계뿐 아니라 세간으로부터 큰 이슈가 됐다. 보조사상연구원은 법정 스님을 원장으로 내세웠고, 1986년 성철 스님의 돈오돈수를 처음으로 비판해 이목이 집중됐던 이종익 박사를 발기인으로 전격 영입했다. 또 김지견, 강건기, 심재룡, 길희성, 최병헌, 한기두, 박성배, 로버트 버스웰, 권기종, 법산 스님 등 국내외 석학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학자들의 면면만으로도 송광사가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보조사단’으로 불린 이들 학자들의 첫 작업은 그 동안 흩어져 있던 보조 스님의 저술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1989년 보조 스님의 저술을 모은 ‘보조전서’를 발간했다. 보조 사상에 대한 기초를 마련한 보조사상연구원은 1990년 송광사에서 ‘불교사상에서 깨달음과 닦음’이라는 주제로 첫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했다. 당시 일반 사찰에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는 “보조 스님의 가르침을 단순히 불교계에 머무르지 않고 보편적인 인류 사상으로 수용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송광사 측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였다.


학술대회에서는 돈점논쟁에 대한 학자들간의 치열한 설전이 이어졌다. 그러나 보조 스님의 사상과 저술에 대해 치밀하게 준비해 온 보조사단의 맹공 앞에 성철 스님의 주장을 지지해 온 학자들은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특히 학계에서는 성철 스님을 비판하면서 보조 스님의 돈오점수를 강조한 박성배, 강건기 교수의 논문이 학술적으로 훨씬 앞섰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돈점논쟁으로 시작된 보조사상연구원의 토론문화는 월례발표회로 이어졌다. 1996년부터 시작된 월례발표회는 지난 6월 100회를 맞기도 했다. 보조사상연구원의 월례발표회는 소장학자들의 등용문이자 학술적으로도 숱한 논쟁을 양산하면서 자연스럽게 진지한 학문탐구의 장이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보조사상연구원의 월례발표회는 특별한 성역을 두지 않았다. 학술적 논거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면 비록 보조 스님과 그 제자들에 대한 비판도 얼마든지 토론을 펼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한다. 실제 100회 특집 발표회에서는 “그 동안 보조 스님의 대표적 저술 중 하나로 알려진 ‘간화결의론’이 제자 혜심 스님이 스승의 이름을 가탁해 쓴 것이며 보조 스님은 간화선을 설한 바도 없고 본인조차 행한 바도 없다”는 도발적인 소장학자의 논문이 발표될 수 있도록 ‘통큰 배려’를 하기도 했다.


최근 문중 어른스님을 비판한 논문이 게재됐다며 크게 반발해 이 논문을 수록한 한 교계매체가 폐간되는 일이 일어났다. 보조사상 선양을 위해 만들었으면서도 연구 분야를 보조 스님에 국한하지 않고, 심지어 비판까지도 불교학 발전의 자양분으로 삼고자하는 송광사의 보조사상연구원 운영방침은 특정 스님 선양을  위해 조직된 학술단체의 롤모델이 되기에 충분해 보인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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