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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숭산 전월사 법웅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따뜻한 마음 없으면 권력과 지식은 뭇생명 억압하는 도구”

선원서 30여년 간 정진

소림초당에선 ‘장좌불와’

 

중앙아시아 무슬림 땅에

홀로 계몽·전법 20년 째

 

 

▲해제철이면 어김없이 이슬람국가인 키르기스스탄으로 달려가 그들과 대화를 나눈다는 법웅 스님. “내 안의 도량, 산사의 도량이 중생계로 이어지면 온 대지가 도량이다. 나눠야 한다. 오라고만 하지 말고 내가 가야한다”고 스님은 강조한다.

 

 

핏빛 같은 빨간 단풍과 푸른 소나무가 어우러진 덕숭산의 11월 아침. 고즈넉하다. 아직도 ‘무상’(無常)을 간파하지 못했다면, 이 산에 깃든 ‘가을’을 통해서라도 느껴보라는 듯 덕숭산은 소리 없이 모든 이를 품고 있었다. 수덕사에서 정혜사로 오르는 숲속 길. 간밤 사이 내린 비와 함께 떨어진 단풍잎이 돌계단마다 가득하다. 시인 정호승의 시 한수가 이생을 떠나려는 잎들을 달래줄 수 있을까!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일부.)

소림초당이다. 가는 빗줄기 사이로 보이는 소림초당은 아직도 만공 스님의 선기가 서려 있는 듯하다. 법웅 스님도 몇 해 전 여기서 정진했다. 장좌불와 1년! 선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보고 싶은 선가 수행 방편중 하나. 장좌불와를 해야만 하느냐 따질게 아니다. 깨달음을 향한 담대함과 처절함. 그 두 힘을 응축시킨 직관력으로 은산철벽을 뚫어 보려는 크나 큰 원력의 한 단면 아닌가. 수마(睡魔) 하나라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면 엄두도 낼 수 없는 정진력이다.

 

빗줄기는 만공 스님 탑에도 내려앉고 있었다. 사자후가 울린다. ‘마음의 달이 오직 둥에(心月孤圓)/ 그 빛이 모든 것을 삼켰다(光呑萬像)/ 빛도 없고 빛의 대상도 없으니(光境俱忘)/ 다시 또 무엇이 있겠는가’(復是何物) ‘대롱으로 하늘을 보려’하느니 삼배를 올릴 뿐이다.

 

정혜사 능인선원에 당도할 즈음 비가 멎었다. 만행길을 떠난 선객을 곧 맞이하려는 듯 산 중턱에서 피어오른 운무가 경내를 정화시키고 있었다. 빛 한줄기가 쏟아져 내리자 능인선원은 이내 운무를 거두고, 산 아래의 마을과 드넓게 펼쳐진 차령산맥을 품어 안았다.

 

법웅 스님의 첫 발이 닿은 선원이 정혜사라 했던가. 통도사에서 경봉 스님을 모신 후 송광사, 상원사, 봉암사 등 선원에서 정진해 온 스님이지만 만공 스님과는 특별한 인연이 있음이 분명하다.

 

만선대와 소림초당에 이어 지금은 만공 스님이 직접 지은 전월사에 머무르고 있으니 말이다. 만선대에 머무르는 동안 스님은 경허, 만공 선사 진영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차 공양을 올렸다고 한다. 그 때의 신심은 상원사에서도 이어져 한겨울 영하 28도 아래로 내려가는 한파가 몰아쳐도 적멸보궁에 올리는 차를 끊지 않았던 법웅 스님이다.

전월사! 덕숭산 끝자락 길 끝나는 곳에 전월사는 선시(禪詩) 한 편을 드러내 보이는 듯 확연하면서도 오묘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만공 스님은 ‘법을 굴린다’는 의미를 담아 ‘전월사(轉月舍)’라 이름 했다. 법웅 스님은 그 달에 무엇을 담았을까? 소림초당 장좌불와 1년 발심을 여쭈어 보았다.

 

 

▲덕숭산 길 끝나는 곳에 전월사가 자리하고 있다. 월면 만공 스님이 ‘달을 굴린다’는 의미로 전월사(轉月舍)라 이름 했다.

 

 

“그 자리에 앉으면 누구인들 그 마음 안 갖겠습니까.” 경허, 만공, 혜월 스님이 머물렀던 덕숭산이 전하는 ‘선기의 덕’이라는 뜻일 터. “본질을 날카롭게 바라본다면 어디인들 불편하겠습니까? 덕숭산 성지 어디 있어도 감사할 뿐입니다.”

 

스님은 자신의 ‘안 살림’ 별 것 없으니 산 밖의 ‘바깥 일’이나 나누자는 듯 대선 향방을 되물어 왔다. ‘진보와 보수의 양자 대결이 치열하다’ 전하자 뜻하지 않은 일언이 다시 내리고 있던 빗소리를 갈랐다.

 

“보수, 진보! 힘을 가지면 보수고, 힘을 잃으면 진보일 뿐입니다.” ‘권력’ 하나로 진보와 보수를 나눌 수 있을까? 그 이유가 뒤를 이었다.

 

“우리 사회의 진보, 보수는 탄탄한 철학과 사상 기반에서 피지 못했다고 봅니다. 그러니 아직도 논쟁중이지요. 사실, 못된 무리들이 지역감정과 역사왜곡을 통해 대중을 갈라놓은 것 아닙니까. 그렇다 해도 변화를 위한 선택은 해야 한다고 봅니다. 고이고 쌓인 부조리를 합리화하며 정권만 탐한다면 그 또한 독재의 다름 아니지요.”

 

진실하면 지옥에서라도

숭고한 법 만날 수 있어

 

개발되지 않은 산·계곡이

모든 생명들 건강하게 해

 

 

▲안개가 걷히자 정혜사 능인선원이 차령산맥을 품어 안았다.

 

 

법웅 스님이 말하는 변화란 무엇일까? 단순히 정치권만을 겨냥한 말은 아닌 듯싶다. 스님은 ‘덜어 냄’ 즉 ‘비움’을 들었다.

 

법웅 스님은 1980년대 초 송광사에서 구산 스님 문하 수학 당시 일을 전했다. 한 스님이 짐을 좀 용이하게 싣고 나르기 위해 차 한 대를 구입했다. 구산 스님은 곧바로 대중공사에 붙이고는 책임을 물었다고 한다.

 

“한 철을, 한 해를 정리하는 시간이 해제 때입니다. 짐을 꾸립니다. 사과 상자로 세 개 반이면 그래도 괜찮은데, 네 상자 이상 나오면 ‘이게 뭔가’ 싶습니다. 자신을 날카롭게 바라보아야 할 수행자가 방관했다는 증거입니다. 자신이 한스럽습니다.”

 

한 철을 지내다 보면 이런 저런 공양물이 들어온다. 어느덧 공양물은 다락 한 쪽을 차지하기 시작한다. 나눌 것 나누고 꼭 필요한 경전과 선어록, 승복과 장삼 등을 상자 세 개에 나눠 넣고 나면 바랑 하나만 남아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는 말이다.

 

“가반(加飯)이라고 하지요. 그 어려운 시절에도 스님들은 언제 찾아올지 모를 나그네 스님을 위해 공양 때면 밥 한 숟가락이라도 덜었습니다.”

 

우리는 수행인보다 덜 가졌을까? 분명 아니다. 하지만, 덜기는커녕 ‘모자라다’고 아우성 아닌가.

 

“수행인을 예로 들었을 뿐입니다. ‘빈부’의 경제논리, 명예, 권위 논리로만 사람을 평가하면 안 됩니다. 진실하게 사는 사람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눈을 가지려면 따뜻한 가슴을 열어야 합니다. 마음을 열지 않으면 지식의 굴림이요, 권위의 굴림일 뿐입니다. 그러한 굴림은 모든 생명을 억압할 뿐입니다. 일례로 인간이 지구 전체를 개발했다 생각해 봅시다. 그건 재앙입니다. 이미 드러나고 있지 않습니까?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산과 계곡이 있어야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이 건강해집니다.”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에서 법을 편 이유가 확연히 드러났다. 법웅 스님은 지난 1993년부터 지금까지 20년 동안 그곳에서 부처님 법에 기반한 계몽운동을 펼쳤다.

 

구소련이 붕괴된 직후 법웅 스님은 중앙아시아를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컨테이너 박스를 차지하기 위해 노인들이 싸웠다. 그 안에 어떤 화공약품이 들어 있는지, 부패한 음식이 있는지 없는지는 관심 밖. 먹을 것을 찾기 위한 몸부림만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 곳은 포교 시도조차 두려운 무슬림 땅 아닌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당신들에게 무엇을 지시하고 가르치러 온 게 아닙니다. 수천 년간 이 땅을 일구며 지혜를 펼친 선각자들과 당신들의 가르침을 받고자 온 학생입니다. 아둔하지만 끈기는 있습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이 넓은 땅에 한 종교만 있다면 너무 허망합니다. 이슬람교라는 사과나무, 불교라는 배나무, 가톨릭이라는 감나무도 함께 있어야 이 땅의 과수원은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해제철이면 어김없이 그 곳으로 달려가 두 달 동안 봉사하며 그들과 대화를 나눴다. 인연따라 불사금이 한 푼 두 푼 모이면 밀가루와 구충약을 사들고 갔다. 지금도 2차 세계대전 당시 쓰던 병원을 그대로 쓰고 있는 땅. 수술 도구 하나라도, 미혼모가 낳은 아기를 위한 독일제 약 한 알이라도 들여놓았다. 여의치 않을 땐 세탁기라도 사 넣었다. 차츰 현지인들의 호응이 이어졌다. 부처님오신날이면 ‘자비심 나누기’에도 동참할 정도다. 선을 지도함은 물론이다.

 

“내 안의 도량, 산사의 도량이 중생계로 이어지면 온 대지가 도량입니다. 나눠야 합니다. 오라고만 하지 말고 내가 가야합니다.”

 

가슴을 열고 다 함께 멋진 인드라망을 만들자는 제안 아닌가. 법웅 스님은 ‘진실된 마음’을 다시 강조했다.

 

“진실하지 않으면 극락에 있어도 법을 만나지 못하고, 진실하면 지옥에 있어도 법을 만납니다.”

 

 

▲소나무가 아름다운 전월사 경내 모습.

 

 

겨울을 재촉하려는 듯 찬비가 거세진다. 지난 동안거 때도 그러했듯이, 전월사에도 눈보라가 칠 것이다. 전월사 작은 샘도 얼어붙을 터. 그 즈음이면 정혜사 관음전으로 내려가 물을 길어 와야만 할 것이다. 법웅 스님의 동안거는 늘 그러하다. 그래도 ‘전불사 앞 청송이 도반이 되어줄 터이니 외롭지만은 않다’고 한다. 수행인에게 고독은 숙명인가 보다.

 

채한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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