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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성폭력

기자명 김영란
  • 법보시론
  • 입력 2012.11.19 15:15
  • 수정 2012.11.28 13:18
  • 댓글 0

교구본사의 선원장이었던 스님의 성추행 사건이 보도되었다. 성폭력 관련한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건과정이나 앞으로의 결과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됐다. 보도된 내용만으로 다 알 수는 없으나 일반인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일반적으로 성폭력 사건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나 주변 사람들이 사과나 반성의 태도를 보이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런 거 가지고 문제제기를 하다니’,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어떻게 처신했길래’ 등의 반응이 대부분이다. 반면 피해를 당한 당사자는 ‘이 일로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이 비난을 받지 않을까’, ‘사람들이 날 믿어줄까’라는 죄책감과 걱정으로 피해를 드러내지 못하고 몸을 사린다. 훨씬 더 성숙하고 지혜로울 것 같은 종교계도 이와 차이가 나지 않는 듯하다.


‘절 집안의 허물을 들춰내지 말라’는 말 때문인지, 실제로 수많은 성폭력 사건들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스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가진 신도 입장에서 스님의 허물을 밖으로 내는 것은 자신의 신심을 의심받는 일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불교계나 스님을 비난받게 한 죄의식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일부 피해자는 ‘성직자의 문제이니 그냥 넘어가야 한다’는 생각마저 가지고 있다. 깊이 존경하고 따랐던 경우에는 피해를 당하고도 ‘설마 내게 그러셨을까’라며 피해사실 자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기도 한다.


수행자는 왜 성폭력 가해행위를 하는가? 그 행위를 항의했을 때 왜 곧바로 진정성 있게 사과하지 않는가? 이 역시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이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교육상담을 했던 한 성폭력 가해자의 사례가 이를 대변한다. 교육상담 의견서에 ‘성폭력’이라는 용어를 썼더니 가해자는 자신이 한 행동은 성추행이지 성폭력이 아니라며 고쳐달라고 요구했다. 사실 성추행은 법적으로 구분된 용어이며, 성폭력은 그 모든 것을 포괄하고 있는 용어다. 강압, 물리적 폭력이 수반되지 않더라도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면 성폭력으로 정의된다.


누구나 다른 사람에 의해 강요받거나 지배당하지 않으면서 자율적 의지나 판단에 의해 자신의 성적 행동을 결정하고 선택할 권리가 있다. 그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바로 성폭력인 것이다. 권리침해가 발생하는 것은 성적인 욕망 때문도, 상대가 유혹해서도 아니다. ‘해도 될 만한’ 권력이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권력은 지위나 직급, 경제력이나 나이, 성별 그리고 종교적 권위에 있다. 바로 그 권력관계 때문에 권리를 침해당해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워도 거부하거나 항의하지 못하는 것이다.


왜 내 몸의 권리를 침해했느냐 항의할 때 가해자가 미안한 마음으로 사과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행위가 성적욕망을 드러낸 범죄로 치부되는 것에 대한 불편함 때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피해자가 사과를 요구했음에도 사과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일 것이다.


대부분의 종교가 평등을 강조한다. 하지만 사실 종교만큼 성차별적인 사회적 장치나 개념들을 굳건하게 하는 데 기여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불교 역시 “수행자가 여성의 유혹에 말려들어서는 안된다”고 경고하는 등 여성을 욕망의 유혹자, 부정적 대상으로 만드는 의식과 문화가 깊이 내재되어있다. 이러한 인식과 문화를 묵과해온 분위기, 인권에 대한 낮은 감수성, 성차별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바로 이런 차별에서 성폭력이 발생한다.

 

▲김영란 소장
그런 의미에서 성폭력은 특정 개인의 문제인 동시에 조직, 집단의 문제이다. 인권감수성을 높이고 성폭력을 예방하는 것은 개개인뿐만 아니라 조직적 차원의 변화가 필요하다. 집단적 교육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김영란 나무여성인권상담소장 ranyhar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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