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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정신·물질현상(名色)

기자명 법보신문

의식을 조건으로 발생
개체 사물의 성립 근거
고의 구체적 단계 양상


정신·물질현상이란 무엇인가. 무명으로부터 시작되는 십이연기의 지분들 가운데 4번째에 해당하는 항목이다. 정신·물질현상은 여섯 영역(六入)의 조건이 되며 또한 그들 자체는 의식(識)을 조건으로 발생한다. 정신이란 빨리어(Pa-li)로 나마(na-ma)라고 부르며 ‘이름’ 혹은 ‘명칭’이라는 원래의 의미를 지닌다. 한편 이것과 짝을 이루는 물질현상이란 루빠(ru- pa)를 번역한 것으로 ‘명칭에 의해 지시되는 형태’를 가리킨다. 정신은 어떠한 형태에 대한 언어적 표현이고 물질현상은 그것을 통해 지시되는 형태 혹은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정신·물질현상은 이름과 형태를 지닌 개체화된 사물의 성립 근거가 된다. 이것에 대한 일반적인 해설은 다음과 같다. “정신·물질현상이란 무엇인가. 느낌(受)·지각(想)·의도(思)·접촉(觸)·마음냄(作意)이 있다. 이것을 정신(名)이라고 한다. [땅(地)·물(水)·불(火)·바람(風)의] 4가지 요소(四大)와 4가지 요소에 의존한 물질현상(四大所造色)이 있다. 이것을 물질현상(色)이라고 한다(SN. II. 3~4).” 후대의 해설가들은 여기에서 언급된 내용에 대해 인식이 가능하기 위해 전제되어져야 할 최소한의 심리적 요소들로 간주하였다.


정신·물질현상은 인식의 발생에 필요불가결한 사항들로 구성된다. 따라서 이들은 ‘식별하여 아는 작용’으로서의 의식을 발생시킨다고 설명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의식을 조건으로 정신·물질현상이 발생하는 것만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의존하는 관계에 놓이게 된다. “정신·물질현상을 조건으로 의식이 있고 또한 의식을 조건으로 정신·물질현상이 있다(SN. II. 104).”라는 가르침이 그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괴로움의 발생을 10단계로 설명하는 십지연기에 등장하는 것으로 두 지분 사이의 독특한 관계성을 드러낸다.


정신(名)이란 특정한 정신적 실재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개념적 사고가 가능하도록 해주는 인식능력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것은 느낌(受)·지각(想)·지음(行)·의식(識)이라는 4가지 비물질적 요인(四無色蘊)들 전체로 규정되기도 한다(‘잡아함경’ 298경). 한편 물질현상(色)은 땅·물·불·바람의 4가지 요소와 이들에 의존한 것들로 언급된다. 그런데 이들 또한 차가움이라든가 뜨거움 따위로 경험된다고 언급되듯이 단순한 물리적 실재가 아니다(SN. III. 86). 따라서 물질현상 역시 인식능력과 긴밀한 상관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신·물질현상은 명칭이라는 의미에 국한되지 않으며 객관적이고 물리적인 사물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다. 이들은 현실의 경험에 앞서 요구되는 정신적·육체적 능력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들이 전제될 때 여섯 영역(六入)을 통한 일상의 사고와 정서가 뒤따르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육체와 정신을 아우르는 내면의 인지적·생리적 능력이 경험에 앞서 미리 작동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십이연기의 가르침은 늙음·죽음(老死)이라는 실존적 괴로움이 전개되는 과정을 내부적인 원인으로 규명한다.


정신·물질현상에 배속된 느낌과 접촉은 십이연기 정식 지분 가운데 7번째와 6번째의 것들이기도 하다. 독립된 지분으로서의 느낌과 접촉은 여섯 영역이라는 감각채널을 통한 것으로 실제적이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느낌과 접촉은 꿈속에서와 같이 오직 마음에 속한 것으로 실재성을 지니지 않는다.

 

▲임승택 교수

이러한 정신·물질현상에서 이후의 지분들로 넘어가는 과정은 실재론적 분화의 방식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예컨대 정신·물질현상이 눈이나 귀 따위의 여섯 감관으로 분열·증식해 나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 대해서는 괴로움의 실존이 구체화되는 단계적 양상 정도로만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해 보인다.


임승택 경북대 철학과 교수 sati@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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