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라는 한 인물을 기독교 신앙의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결코 성령이라는 존재를 빼고는 이야기 할 수 없다. 성령이란 성스러운 신의 영으로, 예수는 하나님이라고 하는 신 야훼의 성령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이다. 보통 기독교에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하지만 실제에 있어서 신 야훼와 예수는 동격으로 별개의 존재가 아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니라”(로마서8장9절)와 “성령께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위이시며”(마태복음28장19절)라는 구절들이 그 예다. 이는 성령이 곧 야훼 신의 영이며 동시에 예수의 영임을 설명해 주는 것으로 흔히 기독교에서 성부와 성령과 성자를 지칭하면서 이 셋은 한 몸이라는 삼위일체설이 나오는데 바로 이와 같은 교리에 근거해서 나온 말이다. 여기서 성부는 야훼 신을 가리키고 성령은 야훼신의 영이며, 성자는 예수를 의미한다. 야훼 신 성부가 성령으로써 성자가 되어 세상을 구원한다는 교리가 곧 기독교인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성령이 비단 예수와 관계되는 존재만은 아니라는데 있다. 기독교에 있어 성령은 곧 야훼 신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이 세상과 인간들에게 자신의 뜻을 드러내 보인다. 성령은 창조이전부터 존재해 왔으며 창조의 주체이고 세계와 인간의 주인이다. 그리고 성령은 세상과 인간들 속에 전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자신이 선택한 인간들을 보호하고 가르치며 계시하고 구원한다. 성령은 창조의 영이며 심판의 영이고 구원의 영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이미 인간이 아니며 역사 속에 존재 했지만 역사적 인물이 아니다.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하나의 인간 부류에 집어넣고 성인으로 불리는 것을 거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미 예수를 인간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으로 보기 때문에 단순히 성인이라고 불러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독교의 이와 같은 성령을 불교에서는 어떻게 볼까? 불교는 기본적으로 야훼와 같은 창조신을 애초부터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성령이 존재한다거나 이 세상을 성령이 지배하고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법이고, 바로 그 법아래 중생들이 업을 지어 태어나기도하고 죽기도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세계는 업에 따라 존재하고 사람 또한 업에 따라 존재한다. 수레바퀴가 쐐기에 얽혀져 돌아가듯 존재하는 모든 것은 업의 속박 속에 굴러간다”는 숫타니파타의 말씀이 이를 뒷받침 한다. 불교적 시각에서 본다면 예수가 아무리 성령에 의해 태어났다고 하지만 성령은 존재할 수 없고, 예수의 몸은 결국 ‘업의 신’일수밖에 없다. 불교에서 세상에 몸을 가지고 태어나는 존재는 중생 외에 보살이 있는데, 중생의 몸을 업신(業身)이라고 하고 보살의 몸을 의생신(意生身)이라고 한다. 업신은 과거의 업에 의해 만들어진 몸이고 의생신은 수행과 공덕에 의해 만들어진 몸이다. 경전에서는 중생과 보살의 힘을 업력과 원력으로 나누고 업력을 원력으로 바꿀 것을 중생들에게 요구한다. 보살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수행을 쌓고 그 수행의 힘으로 수승한 원력을 발하여 마음대로 몸을 받는다. 그러므로 의생신은 수행의 공덕과 원력이 없이는 생겨날 수 없게 되어있다.
|
이제열 법림법회 법사 yoomalee@hanmail.net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