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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시간 행복동행, 라오스 그늘에 희망을 비추다

  • 교계
  • 입력 2012.12.03 10:59
  • 수정 2012.12.03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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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다 연우야·병원불자연합회

11월25~27일 라오스 의료봉사
의료진 15명 포함 봉사단 40명
폰싸바쓰 마을서 3054건 진료

 

 

▲불교의료봉사단 반갑다 연우야와 전국병원불자연합회가 3일간 라오스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펼쳤다. 신혜정 국립의료원 소아과 전문의가 진료소를 찾은 아이를 문진하고 있다.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에서 북서쪽으로 160km 떨어진 무앙푸앙군 폰싸바쓰 마을은 2개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마을 내 유일한 보건소에 설치된 임시 진료소 안과 밖은 다른 시간이 흘렀다. 진료소 밖에서는 오토바이도 경운기도 사람도 느리게 달렸고 걸었다. 되새김질 하는 소와 저녁노을도 느긋하게 하루를 마감했다.


반면 진료소 안 시간은 바삐 흘렀다. 11월25일 오전 7시 사단법인 날마다 좋은날(이사장 이기흥) 불교의료봉사단체 반갑다 연우야와 전국병원불자연합회(회장 류재환)는 손과 발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전날 새벽에서야 진료소에서 10km 떨어진 게스트하우스에서 선잠을 청하고 1t 트럭 짐칸에 앉아 이동했던 고단함은 잠시 잊었다.

 

한국에서 라오스로 날아온 의료기기와 약품 등 600kg에 달하는 물품 32박스가 봉사단 손길로 해체되고 있었다. 봉사단이 입은 파란 조끼가 바쁘게 물결쳤다. 입원실이 전무한 폰싸바쓰 보건소에 내과, 소아과, 외과, 치과, 한의과 그리고 약국이 차려졌다. 원두막 같은 곳엔 발맛사지 전용 장소도 마련됐다. 접수처 옆에선 2세 이상인 라오스 아이들에게 한국에서 준비해온 2000개의 구충제를 나눠줬다. 진료소가 종합병원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다.

 

 

▲한방의학이 알려지지 않은 라오스에서 침술은 단연 인기였다.

 


마당에 친 천막 아래 놓인 의자에 앉거나 선 주민들은 무료진료를 간절히 기다렸다. 폰싸바쓰 마을은 라오스의 가장 큰 댐인 남능댐 건설로 인해 고향을 떠나야 했던 이주민들의 정착지다. 1113가구 6500여명이 하루하루 삶을 이어가고 있지만 많은 가구가 한정된 토지를 나누다 보니 가구당 경작지가 적다. 농업이 주업인 주민들 생활수준이 라오스 내 최하위에 속해 나라에서 식량배급을 시행 중이다.

 

이곳에서 의료진과 일반봉사자 40명은 11월25~27일 2박3일간 무료진료로써 ‘싸바이 디(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며 ‘건강한 삶을 누리는 행복한 길(Happy Together)’을 찾고자 주민들과 함께했다. 행정안전부와 불광사, 봉은사, 베리콤, 한미약품, LG생명과학이 봉사단의 정성에 마음을 포갰다.


접수가 시작되자 번호표를 받은 주민이 몰려들었다. 진료 시작 후에도 진료소를 찾는 주민들 발길이 이어졌다. 손수레에 몸을 의지한 뒤 가족의 부축을 받으며 한의학과를 찾은 할머니, 딸과 손주를 데려온 36세 할머니, 아이를 안고 온 어머니와 아버지 등등. 그네들에게 무료진료는 땡볕에서 땅을 일구며 살아왔던 지난한 삶으로 메말랐던 몸과 마음을 적시는 단비였다.

 

배급 없인 살 수 없는 최극빈 지역

 

 

▲2세 이상 라오스 어린이들에겐 봉사단이 한국에서 마련해온 구충제를 먹였다.

 


봉사단 지도법사 명궁(좋은절 주지) 스님의 집전으로 입재식을 봉행한 뒤 진료는 체계적으로 이뤄졌다. 폰싸바쓰 마을 주민들에게 부족하지 않게 의료혜택이 돌아가도록 팀을 짰다. 내과, 소아과, 외과, 치과, 한의과 진료실엔 각 분야 전문의와 간호사가 배치됐다.

 

혈액검사는 이현주와 이지은 간호사가, 심전도 검사는 정덕자 간호사 몫이었다. 약국에서는 김미경, 김해경 약사와 한기신 봉사자가 팀을 이뤘고, 경희의료원서 행정업무를 보고 있는 김회대씨가 돋보기안경을 나눴다. 김영희, 전영옥 발마사지 강사는 주민들이 집에서도 가족의 혈액순환을 도울 수 있도록 발마사지를 가르쳤다. 진료소 마당에서는 아이들이 축구는 물론 한국 민속놀이인 투호, 제기차기, 팽이치기를 하며 뛰어 놀았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6개월간 충치를 예방하는 불소젤을 물고 있는 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통역도 혜현 스님이 운영 중인 보리·청허영어학교 재학생과 교사 13명이 도왔다. 학생과 주민은 라오스어로 아픈 곳을 묻고 답했으며, 학생과 의료진은 영어로 진단과 처방을 내렸다. 몇 단계를 거치는 다소 불편한 진료였으나 의료진과 통역, 주민들 사이에 큰 문제는 없었다. 오히려 긴 대화는 필요 없었다. 진료에 온마음 열어젖힌 베테랑 의료진에겐 오고가는 눈빛과 맞닿은 손길을 통해 전해오는 주민들의 신음 섞인 심장소리만으로도 충분했다.

 

 

▲김진섭 김화치과원장이 현지 주민들의 치아 진료를 진행 중이다.

 


접수처를 찾은 주민들은 성한 곳이 없었다. 백내장, 썩은 치아, 휘고 부은 다리, 아픈 배 등등. 끈적끈적한 공기를 가르며 봉사단과 주민들의 눈빛이 바삐 오고 갔다. 주민은 행여 자신의 차례일까 노심초사했으며, 봉사단은 혹여 오래 기다리게 했을까 걱정이었다. 눈빛이 마주할 땐 손을 맞잡았고 진료는 시작됐다.

 

각 분야 진료실마다 의료혜택이 적은 마을 분위기와 주민들 고통이 그대로 드러났다. 내과를 찾은 말라이길(83) 스님은 10년 넘게 어지러움증과 구토증세를 앓아왔다. 나이 들어 절에 머물 수 없게 되자 재가자인 분마(47)씨가 집에서 15년을 시봉해왔다. 약을 먹어도 스님 병세가 나아질 기미가 없자 오토바이 뒷좌석에 스님을 모시고 왔다. 류재환 경희의료원 동서의학과 교수가 혈압을 체크하고 조심스럽게 청진기를 스님 몸에 댔다.

 

류 교수는 심전도와 혈액검사를 추가로 한 뒤 처방을 내렸다. 스님 혈액에선 몸에 좋지 않은 중성, 포화지방 수치가 높게 나왔다. 류 교수는 “보통 동양인 평균이 130인데 스님은 276이었다”며 “심전도는 괜찮아 단 것을 줄이라 일렀고 식습관 조절과 운동을 처방했다”고 밝혔다.

 

 

▲류재환 병불련 회장이 어지러움과 구토 증상을 호소한 말라이길 스님을 문진했다.

 


자연스럽게 빠져야 하는 유치가 그대로 남아 영구치와 함께 2줄로 이가 난 아이는 치과를 찾았다. 어머니는 “마을에서 ‘괴물’이라고 놀림 당한다”며 발치를 원했다. 김진섭 김화치과원장은 난감했다. 다시 진료소를 찾기 어려운 16세의 아이는 당장 10개를 한꺼번에 뽑아야 했다. 순간, 어머니와 김 원장의 눈이 마주쳤다. 김 원장은 절실함이 담긴 어머니의 마음을 외면하지 못했다.


삐쩍 마른 체격의 콘살완(15)군은 소아과를 찾았지만 시무룩할 수밖에 없었다. 신혜정 국립의료원 소아과 전문의도 처방이 난감한 경우였다. 그녀는 “근이영양증으로 보인다. 현재 이곳에서 정밀진단이 어렵다”며 안타까워했다. 근이영양증은 골격근이 위축되고 악화되는 진행성이자 불치성, 유전성 질환이다. 골격근 퇴화로 근육의 약화, 구축, 변형을 보인다. 그래도 약 한 봉지 받아들자 어머니의 눈에 서린 근심이 누그려졌다. 농사일로 목, 어깨, 허리, 무릎통증을 호소하는 주민들은 한의과에서 침으로 쑤시는 곳을 달랬다. 침은 생소한 시술이었지만 3일간의 의료봉사 내내 한의과는 북적였다.

 

보건소 있지만 약품 없어 무용지물


폰싸바쓰 마을주민에게는 머나먼 한국에서 불교국가 라오스를 찾아온 의료진이 약왕보살이었다. 진료 첫날 치과를 찾아 아픈 이를 뽑은 랑쌔(41)씨는 연신 웃음을 보였다. 그녀는 “내내 아파 고통스러웠는데 뽑고 나니 시원하다”며 “이렇게 좋은 곳이 있었다. 내일 할머니를 모시고 오겠다”고 진료소를 나섰다.


11월27일까지 무료진료 3일 동안 1228명이 진료소를 찾았다. 내과, 소아과, 외과, 치과, 한의과, 돋보기안경, 심전도·혈액검사, 발마사지, 불소 등 각 분야를 통틀어 3054건의 진료가 이뤄졌다. 마을 주민은 한국 불자의 온정을 가득 안고 진료소를 빠져 나갔다. 한 손엔 약봉지, 또 다른 손엔 아이 손을 잡고 얼굴엔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약을 먹으면 아픈 곳이 다 나을 수 있다는 기대와 의료봉사단의 따뜻한 손길에 대한 믿음도 한아름 안고 떠났다. 진료 마지막 날, 마을은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으로 봉사단을 환송했고 감사의 말을 전했다. 마을 보건소장 캄다씨는 “주민들이 행복해 한다. 정말 감사하다”며 거듭 고마움을 전했다. 주민들은 봉사단의 건강과 행복을 염원하는 마음을 하얀 실에 담아 봉사단 손목에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묶었다.

 

 

▲봉사단과 라오스 주민 간 의사소통을 책임졌던 청허영어학교장 혜현 스님과 학생들.

 


11월28일 비엔티안 공항, 귀국 비행기에 몸을 싣고 지쳐 잠든 봉사단 손목엔 단주와 단단히 매듭지은 하얀 실이 나란히 감겨 있었다.


라오스=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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