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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필연적 사실의 인식

상·하가 각각 분리되어 실존하지 않듯이

참과 망령도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아

 

“참됨도 구하지 않고 망령 됨도 끊지 않나니, 두 법이 공하여서 무상(無相)임을 분명히 알았도다.”

 

부처님이 가르쳐주신 이 세상의 법은 외곬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다 이중적인 모습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반드시 있고, 저것이 없으면, 이것도 또한 없다는 것이 부처님이 직접 가르쳐주신 연기법(緣起法)의 요체다. 이것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상호간 서로 이중적인 구조로서 짜여져 있다는 것을 말한다.

 

불법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의 존재방식이 이중적인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밝힌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상호 이중적이므로 어느 것도 외곬으로 홀로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나는 참됨만을 구하지 결코 망령 됨을 구하지 않겠다는 그런 결심은 실로 성립하지 않는 헛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어리석은 범부들은 참됨만을 구하는 심리에 급급해서 망령 됨을 절대로 구하지 않는 결심에 가득차 있어서 자신을 선과 진리의 화신인 양 자신감에 가득차 있게 된다. 그러나 그런 자신감은 한없이 어리석은 마음일 뿐이다. 왜냐하면 그런 일방적인 마음은 이 세상에 구체적으로 실존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실존하는 마음은 참된 마음을 구하고 찾는 그 심리가 동시에 어리석은 마음을 싫어하고 멀리하는 마음을 낳기 때문에, 이런 마음은 이미 스스로 멀리하는 그런 마음을 또한 자신의 가까이에 낳아서 기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이중성을 잉태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세상 만물의 실존방식이 이중적이라는 말은 곧 노자가 ‘도덕경’에서 읊은 사유구조를 반영하고 있다. 즉 노자가 ‘도덕경’에서 읊은 사유구조는 상/하, 장/단, 고/저의 이중적 구조의 논리와 다르지 않다.

 

상하를 각각 분리시켜 독자적으로 실존케 할 수 있으며, 장단도 각각 외곬으로 존립시킬 수 있겠는가? 그런 외곬의 존재방식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노자는 이 세상의 도라고 갈파하였다. 상하가 각각 외곬으로 분리되어 실존하지 않듯이, 참과 망령도 각각 이원적으로 분리되어 홀로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 세상의 도는 참이 있기에 망령도 실존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그러므로 나는 참만을 구하고 결단코 망령은 구하지 않겠노라고 주장할 수 없다. 그런 주장은 애오라지 도덕적 주장은 될런지 모르나, 구체적 현실적 삶의 방식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참을 구하려고 한다면 기필코 망령의 실존적 그림자를 나는 쫓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것은 선을 내가 추구하면 할수록 악의 그림자를 나는 어쩔 수없이 밟게 되는 현실을 발견하게 되는 이치와 같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나는 순수선의 화신이 되어서 악을 완전히 저 멀리 비껴가는 그런 순수선의 실존이 될 수 없음을 상징한다. 그래서 노자가 ‘도덕경’에서 이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존재의 도는 이 이중적인 모습을 한다고 갈파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참을 구하고 망령을 결단코 차단하는 그런 도덕적 결단내기는 사실상 인간의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우리가 노자의 ‘도덕경’을 무슨 도덕적 심판처럼 착각하지만, 그것은 그런 서적이 아니다. ‘도덕경’은 오히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실을 말하는 사실의 언명이다. 
 

▲김형효 교수

도덕경을 도덕적 선을 밝히는 도덕적 언명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도덕적 선보다 오히려 필연적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김형효 서강대 석좌교수 kihyhy@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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