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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간경도감 폐지

기자명 법보신문

1471년 12월5일 성종 결정

세조 때 불경 발간위해 설립

11년간 10여종 불경 한역

국어학·불교사 연구의 토대

 

▲간경도감이 설치된 뒤 처음 국역된 ‘능엄경 언해’.

1471년 12월5일 조선 성종(1457~ 1494)은 끝내 간경도감을 폐지했다. 할아버지 세조(1417~1468)가 각별한 관심을 두고 운영해 왔던 사업이었지만 성종은 거듭된 사간원 관리들의 반대 상소에 결국 폐지를 결정했다. 세조가 죽은 지 3년만의 일이다.

 

간경도감은 1461년 6월 세조가 국가차원에서 불경 간행을 진행하겠다며 왕명으로 설립한 기관이었다. 간경도감의 설치는 당시로선 파격에 가까웠다. 숭유억불을 국시로 내세운 조선조에서 불교경전을 번역하기 위한 기관을 궁안에 설치했다는 것은 자칫 정통성 부정으로 비춰질 수 있는 소지가 많았다. 따라서 유생들의 반발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세조는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간경도감을 설치해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세조는 우선 고려 때 설치됐던 교장도감과 대장도감의 형태를 본떠 중앙에 간경도감의 본사를 두고 개성, 안동, 상주, 진주, 전주, 남원 등에 분사(分司)를 두도록 했다. 또 간경도감의 조직은 총책임자로 도제조(都提調)를 두고 그 아래 제조(提調), 사(使), 부사(副使), 판관(判官) 등을 뒀다. 간경에 종사한 사람만 170명이 넘을 정도로 큰 규모로 운영됐으며 신미 스님을 비롯해 수미, 학열, 해초 학조 스님 등 당시 선지식으로 추앙받던 고승들도 불전 언해 사업에 동원됐다.

 

이처럼 국가로부터 막대한 지원을 받은 간경도감은 이후 11년간 운영되면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끌어냈다. 특히 간경도감이 설치된 1년만인 1462년 ‘능엄경언해’를 한글로 번역하는데 성공했다. 이어 1463년 ‘법화경 언해’, 1464년 ‘금강경’, ‘반야심경’, ‘아미타경’, ‘영가집’ 1465년 ‘원각경’, 1467년 ‘수심결’, ‘몽산법어약록’ 등을 차례로 번역해 간행했다. 간경도감이 발간한 불서의 양만해도 한자본 불경이 37종 500여권이었으며 국역본 불경도 10종 36권에 달했다. 인쇄기술이 현대에 비해 현격이 떨어지는 조선시대에 11년간 이런 성과를 낸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국가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곧 학문의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낸 결과다.

 

그렇다면 왜 세조가 간경도감을 설치하고 불서 간행에 남다른 열정을 쏟았을까. 이는 세조가 왕자 시절부터 불교에 대한 신앙심이 돈독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많다. 특히 세조는 아버지 세종의 불서 편찬을 적극 도왔고, 조카인 단종을 내쫓고 왕위를 찬탈한 뒤에 이를 속죄하고자 불교에 더욱 심취했었다. 그런가하면 세조는 즉위 3년만인 1457년 왕세자가 병으로 죽자, 아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불경을 사경하기도 했으며, 1458년에는 신미, 수미 스님 등을 시켜 해인사 대장경 50부를 인출, 각도의 명산대찰에 나눠 보관하도록 명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1459년 유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역 ‘월인석보’를 간행하기도 했다. 따라서 세조가 간경도감을 설치한 것은 간경사업의 경험을 살려, 불서의 보급을 국가사업으로 장려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그러나 최근 들어 세조가 자신의 왕권강화를 위해 간경도감을 설치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즉 세종이 자신의 측근을 양성하기 위해 집현전을 활용했듯 세조 역시 간경도감을 활용했다고 보는 시각이다. 실제 간경도감의 주요관직은 모두 세조의 최측근으로 구성됐다. 때문에 세조가 죽은 이후 간경도감 폐지론이 대두되게 된 직접적인 배경이 되기도 했다. 특히 불경 발간 등으로 크게 반발하던 유신들은 세조가 죽자 간경도감 폐지 상소문을 끊임없이 올려 성종을 압박해 결국 폐지하도록 만들었다.

 

간경도감의 설치배경을 두고 비록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지만, 간경도감이 설치돼 수많은 불서들을 발간한 것은 국어학사를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한역본에 등장하는 글자의 형태는 곧 15세기 한글체계를 연구하는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또 조선시대 유통되던 불경들이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은 한국불교사 연구의 토대가 되기에 충분해 보인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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