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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유위와 무위

기자명 법보신문

인간 경험세계 자체가 유위
무위란 열반과 동일한 의미
팔정도 등이 무위 이르는 길

 

유위(有爲)는 무엇이고 무위(無爲)는 무엇인가. 유위란 빨리어(Pāli)로 상카따(saṅkhata)이며 글자 그대로의 의미는 ‘지어낸’, ‘만들어낸’, ‘조작된’ 따위로 옮길 수 있다. 한편 무위란 부정형 접두사가 첨가된 아상카따(asaṅkhata) 로 ‘지어내지 않은’, ‘만들어내지 않은’, ‘조작되지 않은’ 따위의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유위란 ‘만들거나 지어낸 인위적인 것’을 의미하고 무위란 ‘지어내지도 조작되지도 않은 본래적인 것’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깨달음을 얻지 못한 범부들은 스스로의 눈높이가 허락하는 범위에서만 인식한다. 이것은 개구리가 움직이는 물체만을 식별할 수 있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이렇듯 중생들은 자신의 눈 위에 덧씌워진 색안경을 통해 본 색깔만을 진실한 것으로 오인하고 고집한다. 그러나 그렇게 포착된 색깔이란 사실 색안경을 통해 ‘조작된 것’에 불과하다. 경험세계를 구성하는 다섯의 구성요소들 즉 오온(五蘊)이 이러한 방식으로 드러난다. 오온으로 이루어진 경험세계는 결국 스스로 ‘지어낸 것’이고 ‘조작해낸 것’이다. 유위란 오온을 비롯하여 경험세계를 구성하는 일체의 대상(dhamma)을 일컫는다.


그렇다면 무위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색안경을 벗고서 있는 그대로를 마주할 때 드러나는 세계로 설명할 수 있다. 경전에서는 이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비구들이여, 무위란 무엇인가. 탐냄의 소멸, 성냄의 소멸, 어리석음의 소멸이다. 비구들이여, 바로 이것이 무위이다(SN. IV. 359).” 이것에 비추어 ‘지어낸 것’도 아니고 ‘조작된 것’도 아닌 무위란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가라앉았을 때 나타나는 경지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무위란 초기불교 이래로 피안(彼岸)의 세계로 일컬어진다. 또한 번뇌에 물든 차안(此岸)의 중생들이 떨치고 건너가야 할 이상향으로 묘사되곤 한다(SN. IV. 373.).


초기불교의 여러 경전에서 탐냄·성냄·어리석음이 소멸된 경지는 열반(涅槃)으로 풀이되곤 한다(SN. IV. 251). 따라서 무위란 열반과 동일한 의미임을 알 수 있다. 열반과 무위의 실현은 초기불교의 궁극 목적에 해당한다. 실천·수행이란 결국 유위로부터 무위로 넘어가는 과정이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다. 사마타와 위빠사나도, 삼매의 닦음도, 사념처와 팔정도도 무위에 이르는 길로 설명된다(SN. IV. 360). 이들을 닦음으로써 스스로 지어낸 경험세계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난다면 그것으로 무위에 도달한 셈이다.


그러나 무위의 성취란 쉽지 않다. 인간이 살아가는 경험세계 자체가 유위이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이 구사하는 개념들 역시 유위의 차원을 벗어나지 못한다. 심지어 지금 언급하고 있는 ‘무위’라는 명칭마저 언어적 관습을 통해 ‘지어낸 것’에 불과하다. 여기에도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은 얼마든지 개입될 수 있다. 무위를 마치 손안에 거머쥘 수 있는 전리품인 양 오해하는 사례들이 곧 그것이다. 이것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달로 오인하는 것과 유사하다. 개념적 사고의 틀 안에서 획득하는 무위란 착각에 불과하다.


무위란 만질 수도 잡을 수도 없다. 무위를 잡으려는 시도는 물속에 비친 달을 잡으려는 어리석음에 비유할 수 있다. 무위란 그러한 시도들마저 완전히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무위란 의지적인 결과물이 아니다. 이것은 오로지 비우고 버리는 것을 통해서만 드러난다.

 

▲임승택 교수

무위에 이르는 길로 언급된 사마타와 위빠사나, 삼매의 닦음, 사념처와 팔정도 따위도 이러한 맥락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들이 무위에 도달하는 길일 수 있는 이유는 오직 스스로를 비우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임승택  경북대 철학과 교수 sati@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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