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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결과, 우려와 기대

기자명 박한용

아쉽다. 많이 아쉽다. 송구하지만 역사학자에게도 감정은 있다. 불자 독자들께서 속내를 털어놓는 이 마음을 용서하시라. 훗날 역사는 이번 대통령선거를 어떻게 볼까. 박정희집권 18년에 대한 국민의 기억들의 집합적 대결이라고.


박정희 집권 18년 동안 박정희 대통령은 국민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길들여 왔다. 일제로부터 파시즘, 국가주의 교육을 받은 그는 민주주의를 아예 적으로 생각했다. 5·16쿠데타 후 자신이 쓴 ‘국가와 혁명과 나’라는 책을 통해 민주주의와 자유는 방종으로 흐르기 쉽기 때문에 우리식 민주주의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9년 뒤인 1972년 그는 한국적 민주주의의 토착화라는 명목으로 10월 유신을 단행했다. 그는 독재를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불렀다. 10월유신은 이미 5·16쿠데타 때 잉태되어 있었다. 국가주의자 박정희는 국민이 오로지 자신과 국가의 명령에 따르기를 원했기에, 자율적인 시민사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오로지 관변 단체만 존재했다. 권력에 반대하는 단체가 있으면 가차 없는 탄압대상이었다. 그래서 시민사회 대신 ‘재야’라는 독특한 전투적 민주주의 그룹이 형성되었다. 4·19 혁명 이후 피어나던 민주주의의 싹은 박정희군부 쿠데타에 의해 태아 살해되었다. 한국 시민에서 시민단체란 1990년대에야 비로소 등장했다.


민주주의란 시민의식에 기초한 풀뿌리민주주의이다. 이제 20년 정도 시민운동이 전개되고 시민들이 생활의 영역에서 민주주의를 조금씩 뿌리내리고 있다. 아래로부터 민주주의 훈련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어리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30년의 군부 통치의 역사보다 어리다. 그만큼의 연륜차이 만큼 이번 대선에서 변화의 바람은 패배하고 말았다.


이번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의 절대 공로자는 60대 이상 노인들이다. 요컨대 박정희 대통령시대에 가장 향수를 많이 느끼는 세대다. 동시에 1970년대 학교, 군대, 예비군과 민방위 교육, 반상회 등을 통해 유신체제식 사고와 규율만을 강요받고 자란 세대다. 그들은 가족과 국가만을 위해 헌신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대가족 제도가 사라지고 가부장제의 권위도 사라졌다. 그렇게 고생했건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지하철에서 손자 또래와 자리다툼을 해야 하는 이 시대의 비정함에 그들은 속으로 분노한다. 자연 박정희라는 조국근대화의 지도자와 그 상징을 이어받은 박근혜에게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이들은 박정희를 근대화혁명가로 칭송함으로써 자신들이 조국근대화의 기수로 이 사회에 기억되기를 바란다. 자신에 대한 기억을 박정희에 대한 기억으로 치환해버린 것이다.


우려하는 것은 박근혜 후보의 당선이 아니다. 그녀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과 더불어 이 시대에는 맞지 않는 낡은 사고와 풍토가 다시 되살아나면 어쩌나 하는 우려 때문이다. 권위주의와 일방주의, 재벌과 상층 중심, 박정희의 친일과 독재에 대한 사실상의 명예회복에 따른 가치관의 혼란, 이 모든 것들이 두렵다.


정리해야 할 것들을 정리하지 못하고 갈 때 역사의 짐은 더욱 무거워진다. 그만큼 우리 후손들의 부담이 커질까 두렵다. 어찌됐건 오늘은 내가 슬픔이 되어 기쁨에게 말한다. 5년의 국정 정말 잘 하기를. 나의 예단이 기우가 되기를.


▲박한용 연구실장
이번 선거에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젊은이의 좌절이다. 그들은 새누리당도 민주당도 내켜하지 않았다. 변화를 요구했다. 이들은 그 변화를 안철수 후보에게 기대했다. 안 후보 사퇴 후 그들의 일부는 투표에 참가하지 않았다. 대다수는 문 후보를 지지했다. 요컨대 대한민국이 젊어지기를 바랐다. 그 바람은 무너졌다. 이들의 박탈감이 한국 사회에 세대 간 갈등으로 빚어지지 않아야 할 것이다. 


박한용 phyk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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