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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새해특집-뱀과 불교][br]뱀이 허물을 벗듯이 번뇌 사라지길 기원

  • 새해특집
  • 입력 2012.12.31 21:27
  • 수정 2013.01.02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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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지상 중 뱀. 만봉 스님 작품.

 

 

갈라진 혀와 매서운 눈, 차가운 비늘과 단번에 생명을 끊을 수 있는 독, 그리고 온몸으로 기는 기괴한 이동방식까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뱀의 이미지는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거나 흉물로 배척당했으며 ‘징그러운 외모에 간사하고 사악해 해를 끼치친다’는 세간의 오해(?)를 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민속신앙에서 뱀은 신적 존재로 여겨졌으며 이와 관련된 다양한 풍속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집과 마을을 지켜주는 신으로 추앙됐던 것을 비롯해 여러 아시아국가에서는 조상신으로 모셔지거나 남근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또 유럽에서는 질병과 상처를 치유하는 치료의 신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뱀에 대한 평가는 시대와 지역, 상황 등에 따라 크게 다르게 나타난다.


불교 경전 등에서 나타나는 뱀의 모습 역시 마찬가지다. 불교에서 뱀은 교만·애욕의 의미와 함께 관자재보살로서 무지한 인간들을 일깨워 지혜의 등불을 밝혀주고 가르쳐서 올바로 살게 하도록 교육하는 의미를 지닌다. 중생을 가르치다가 스스로 막히게 되자 복잡하고 오묘한 중생계에 내려와 모든 중생의 근기를 실제로 체험하고자 한다. 이에 관자재보살은 뱀신이 돼 스스로 광명을 터득하고 학문을 넓히는 성품을 지니게 된다.


‘용재총화’에는 한 스님이 죽어 뱀이 된 설화가 있다. 진광사의 스님이 시골 여인을 아내로 삼고 밤마다 출입하다 죽었다. 하지만 죽어서도 아내를 잊지 못한 스님은 뱀으로 환생해 낮에는 독 속에 숨어 있다가 밤이면 아내와 동침했다. 이 사실을 알아버린 마을의 사또가 뱀을 궤짝에 넣어 물에 던져버렸다는 내용이다.


춘천 청평사 공주탑의 설화 역시 애욕의 슬픈 이야기다. 원나라 공주가 평범한 청년과 사랑에 빠지자 왕은 크게 노해 청년을 죽인다. 하지만 청년은 죽어서도 공주를 잊지 못했고 뱀으로 환생해 공주의 몸을 칭칭 감아버린다.

 

뱀을 떼어내기 위해 갖은 방법을 썼지만 모두 허사에 그쳤고 공주는 결국 병에 걸리고 만다. 청평사에 큰스님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간 것은 그때였다. 청평사에 도착한 공주는 뱀에게 “밥을 얻어오겠으니 꽈리를 풀어달라”고 부탁하고 뱀은 이를 수락한다. 자유로워진 공주는 목욕재계하고 가사를 꿰맨 다음 법당에 들어가 염불을 했다. 남겨진 뱀은 하염없는 기다림에 지쳐 공주를 찾아 나섰다. 구성폭포에 이르렀을 때였다. 폭포 아래로 사랑하는 공주의 모습이 하늘거렸다. 들끓는 애욕을 잠재우지 못하고 폭포로 몸을 던진 뱀. 하지만 공주의 모습은 수면에 비친 형상이었다. 공주는 뱀의 시신을 거둬 정성껏 묻어주고 삼층석탑을 세워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다. 사람들은 이 탑을 공주탑이라 불렀다.


이처럼 뱀은 죽음이나 애욕을 상징하는가 하면, 허물을 벗듯 번뇌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숫타니파타’에서는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듯’ 교만함과 번뇌, 잡념에서 벗어날 것을 강조한다. ‘넘치는 집착의 물줄기를 남김없이 말려버리’고 ‘교만한 마음을 남김없이 없애버리’며 ‘잡념을 모두 끊어버리’기 위해서 수행자는 허물을 벗어던지고 새로워지는 뱀을 닮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말려버리고, 없애버리고, 끊어버리지 못하면 결국 축생계로 떨어져 버린다는 교훈이 금강산 유점사에 전해진다.


‘살아있는 부처’라 칭송받았던 유점사의 홍도 스님이 경행을 하는데 갑자기 먼지가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뭔 놈의 바람이 이렇게 먼지를 일으키는가?” 짜증내는 스님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엄하게 꾸짖었다. “그깟 먼지바람에 역정을 내는 그대가 어찌 산부처인가?”


등골이 오싹해진 스님이 벌떡 일어나려했지만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몸을 자세히 살펴보니 자신이 커다란 구렁이가 되어 있는 게 아닌가. 다음날 아침, 공양을 드리기 위해 처소를 방문한 대중들이 발견한 것은 똬리를 틀고 있는 구렁이 한 마리뿐이었다. 공양간으로 간 구렁이가 꼬리에 물을 묻히고 다시 재를 묻혀서 벽에 “일기진심 수사보(一起嗔心 受蛇報)”라 썼다. 한번 성내면 뱀의 업보를 받는다는 홍도 스님의 절절한 깨달음이었다. 이밖에도 뱀은 많은 설화와 소설, 시 등에 등장하면서 어리석은 중생들을 깨닫게 하는 방편으로 활용돼 왔다.


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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