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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새해특집-함께하는 벗 도반][br]‘목탁소리’ 이끄는 홍성덕·용정운·박대성씨

  • 새해특집
  • 입력 2013.01.02 13:58
  • 수정 2013.01.02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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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법당서 만나 함께 한 10년 세월 곧은 신심으로 남아”

법상스님 인터넷카페서 인연
99년 ‘목탁소리’ 사이트 개설
매일 온라인서 수행점검하며
삶의 고뇌·행복 함께 나눠

 

 

▲ 목탁소리를 이끌고 있는 홍성덕(사진좌)·용정운(가운데)·박대성씨는 서로를 만난 것이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라고 말했다.

 

 

1999년 처음 문을 연 ‘목탁소리(www.mok taksori.org)’는 인터넷 수행모임의 맏형이다. 대부분의 인터넷 모임이 ‘다음’,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가 할당해 주던 카페 공간을 빌려 쓰던 그시절 목탁소리는 수행단체로는 이례적으로 자체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등 사이버 수행의 롤모델이 돼왔다. 현재 회원 수만 4300명에 이르고, 하루 평균 400명의 회원들이 찾아 스스로를 돌아보고 서로의 수행을 점검하는 ‘사이버 생활수행도량’으로 발전해 오고 있다. 초창기 20~30대 중심이었던 회원 구성도 인터넷의 보편화로 ‘5060세대’까지 가입하면서 연령 분포도 다양해졌다.


이처럼 목탁소리가 10여년이 넘는 세월에도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운영된 것은 홍성덕(52,벽송), 용정운(41,심연)이라는 두 법우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목탁소리의 산파역할을 담당했을 뿐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콘텐츠를 양산해 내고, 수행단체가 추구해야 할 목표를 함께 제시해 왔다. 여기에 비록 뒤늦게 가입했지만 남다른 수행열정을 보인 박대성(40,법신)씨와 같은 회원들의 적극적인 뒷받침도 목탁소리가 모범적인 수행모임으로 발전하는 원동력이 됐다. 이들에게 목탁소리는 이미 삶 그 자체가 된지 오래다. 목탁소리와 함께 하루를 열고, 수행도반들이 던지는 화두를 붙들고 고민하다 하루를 마감한다. 10여년이 넘는 세월동안 이들은 한결같은 삶을 이어왔다.


오랜 세월을 함께 한 인연만큼이나 이들의 만남 또한 남달랐다.


1990년대 말 홍성덕씨는 군포교에 남다른 원력이 있었다. 군복무 시절 자신 역시 불교에 심취했던 경험이 있는데다 젊은 불자들을 양성하지 않으면 한국불교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는 독실한 불교 집안에서 자랐다. 어려서부터 부모님 손에 이끌려 절을 찾았지만 그는 늘 기복적인 불교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 군에 입대해 종교 활동을 하면서 불교를 새롭게 접했다. 법회에 참가해 찬불가도 배웠다. 법당에서 경전도 보고 관련 서적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불교의 너른 세계로 빠져들었다. 그의 불연(佛緣)은 제대 이후에도 이어졌다. 그는 불광사 청년회 활동을 시작했고, 능인선원 불교대학도 다녔다. 부처님가르침을 체계적으로 공부한 홍씨는 이때부터 자신이 늘 발원했던 군포교에 본격 나섰다.


그가 목탁소리 지도법사인 법상 스님과 인연을 맺게 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1999년 경기도 문산 호국 백성사에서 군법사로 활동하던 스님은 인터넷사이트 다음카페 ‘젊은 법사의 불교이야기’에 신행칼럼을 연재하면서 세간에 크게 회자되고 있었다. 생활 속을 파고드는 잔잔한 스님의 불교이야기는 막연하게만 느꼈던 불교를 체계적으로 알아가는 수행가이드였다. 스님의 수행카페는 입소문을 타고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카페를 개설한지 채 몇 개월이 되지 않아 회원수가 700여명으로 늘었다. 온라인에서 맺은 인연은 오프라인으로도 이어졌다. 매월 군법당에서 열린 ‘밝은모임’은 법상 스님과 카페 회원들이 만나 일상 속 수행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또한 밝은모임은 자연스럽게 군법당을 지원하는 군포교단체가 됐다. 홍씨가 무작정 문산 호국백성사로 발길을 옮긴 이유이기도 했다.


이 무렵 용정운씨는 서울 여의도에 있는 웹디자인 회사에 다녔다. 어느 날 같은 회사에 근무하던 한 선배로부터 법상 스님의 글을 소개 받았다. 가톨릭 신자였던 그 선배는 인터넷을 검색하다 우연히 법상 스님의 글에 깊은 감동을 받았고, 오프라인 수행모임인 ‘밝은 모임’에 함께 갈 것을 제안했다. 선배가 건네준 법상 스님의 글은 용씨가 가슴 한 구석에 묻어 뒀던 ‘불교’라는 단어를 다시 꺼내들게 했다. 그는 늘 불교를 동경했다. 어려서부터 불교집안에서 자란 탓도 있지만 절에 가고 스님의 법문을 듣는 것이 무척 좋았다. 그가 대학원에서 불교미술사를 전공하려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가족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밥벌이’에 적당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할 수 없이 그는 MBC에서 운영하는 멀티미디어 교육과정을 이수했고, 웹디자이너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 ‘밝은모임’에서 법상 스님과의 만남은 용씨를 불교에 심취하도록 했다. 그는 스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좋았고, 이후 매월 한 차례 있는 ‘밝은모임’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참석했다.


“불교를 공부한다는 것, 수행을 한다는 것은 그것을 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졌을 때 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법상 스님과의 만남 이후 일상에서 마음을 돌리고 공부하는 것이 바로 수행이라고 믿게 됐지요. 결혼 이후 춘천에 살며 불교일러스트 일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목탁소리 덕분이지요.”


용씨가 홍성덕씨와 함께 ‘목탁소리’라는 자체 홈페이지를 제작하게 된 것도 이 무렵이다. 밝은모임에서 만난 두 사람은 법상 스님의 글을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했다.


당시 다음카페에서 일정 공간을 할당 받은 스님의 카페는 다음 회원이 아닌 경우 들어가기 어려운 제약이 있었고, 카페 글쓰기 형식도 자유롭지 못했다. 여기에 초심자의 눈높이에 맞춘 법상 스님의 글은 향후 문서포교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함께 홈페이지를 만들기로 뜻을 모았다. 마침 IT회사를 운영하던 홍씨가 홈페이지에 필요한 재원과 기술을 지원했고 용정운씨가 웹마스터로서 디자인을 맡았다.


홈페이지가 만들어진 이후 회원들의 참여는 더욱 늘었다. 수행일기를 매일 올리는 회원들이 있는가하면 불교에 대한 궁금증을 법상 스님께 쌍방향으로 대화하는 불자들도 속속 생겨났다. 그 당시 목탁소리는 불교를 주제로 만나 회원 서로 간의 삶의 고민을 함께 나누는 소통의 공간이 됐다.

 

회원들과 나눔실천운동 전개
정토마을·어린이재단 등 보시
군법당 등 불서보내기도 진행
2009년부터 네팔에 학교 건립


속초에 거주하는 박대성씨가 목탁소리를 인연을 맺은 것은 2005년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을 접하고서부터다.

 

삶의 버팀목이었던 아버지를 잃은 슬픔이 너무나 컸다. 혼란은 쉽게 정돈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접한 것이 불교였다. 아버지를 모신 속초의 한 절에서 재를 올리던 날, 법당 안에서 우연히 ‘참 좋은 인연입니다’라는 문구를 발견했다. ‘좋은 인연’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이 물음은 한 동안 박씨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차츰 불교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신흥사 교양대학을 졸업했고 절에서 기도도 했다. 그러나 진리에 대한 갈증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우연히 불교용어를 검색하다 ‘목탁소리’라는 사이트를 알게 됐다. 회원들이 올려놓은 글들이 가슴에 와 닿았다. 특히 스님이 쉽게 풀어놓은 불교이야기는 늘 어렵게 느낀 불교를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했고, 당시 불교 일러스트의 길에 들어선 용정운씨의 ‘명상카툰’은 신선함으로 와 닿았다. 시나브로 박씨는 목탁소리에 빠져들었고, 하루하루 법우들과 나누는 법담을 삶의 큰 활력소가 됐다.


홍성덕·용정운·박대성씨가 주축이 된 목탁소리는 이후 자비나눔에도 앞장섰다. 보시의 실천이야말로 부처님가르침을 실천하는 첫걸음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목탁소리’라는 이름으로 매월 후원하는 복지단체도 정토마을을 비롯해 자비의 전화, 한국백혈병어린이 재단 등 7곳이다. 여기에 지난 2009년부터는 네팔의 한 시골마을에 있는 학교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화장실과 학용품을 지원한데 이어 올해부터는 학교 건물을 새롭게 건립하고 있다. 전액 목탁소리 회원들이 낸 후원금으로 이뤄진다. 또 군법당에 불서를 보내고 해외난민 구호사업에도 힘을 보태기도 했다. 이처럼 나눔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목탁소리 운영을 맡고 있는 이들 세 법우의 끈끈한 팀워크 때문이기도 했다. 서울과 춘천, 속초 등 사는 곳은 달라도 그들이 숨 쉬고 생활하는 곳은 ‘목탁소리’였다. 서로 기쁨을 나눴고, 삶의 고민과 아픔을 함께 덜어냈다. 10여년을 그렇게 살아왔다.


“두 법우 모두 조카벌 쯤 되는 나이 차이였지만 오히려 삶에 대한 열정을 배우고 자극 받았습니다. 늘 고마운 도반이죠.”(홍성덕씨)


“홍 법우님은 목탁소리의 신장이시죠. 법우님이 없었다면 목탁소리가 유지되기가 어려웠을 겁니다.”(용정운씨)
“목탁소리를 만난 건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선물입니다. 용 법우님의 명상카툰은 삶의 무게를 견디게 해 줬고, 홍 법우님은 나태해질 때마다 새롭게 발심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 에너지원이었습니다.”(박대성씨)


진리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벗, 도반. 사이버 공간에서 만나 함께 수행하며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세상을 바꾸겠다는 목표를 향해 떠나는 이들 세 도반이 가는 길은 결코 외롭지 않아 보인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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