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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새해특집][br]동의과학대 불교학생회 재능봉사 하던 날

어둠이 가셨다 그늘진 빈민촌에 웃음이 살아났다

동의과학대 불교 학생회서
활동하는 전기전공 학생들


저소득층 밀집지역 찾아
무료로 전기시설 수리·교체
복지관 곳곳의 시설 보수도

 

 

▲ 12월17일, 박차수 교수와 김석균 거사, 그리고 동의과학대 불교 학생회 회원들은 부산 북구 곳곳을 돌아다니며 전기보수 재능봉사를 펼쳤다.

 

 

며칠 전 기말고사 마지막 과목까지 시험을 끝낸 임진택 씨(26)는 밀려오는 늦잠을 뿌리치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두툼한 코트보다는 활동하기 편한 점퍼를 입었고 구두 대신 운동화를 꺼냈다. 그렇게 집을 나서서 찾아간 곳은 부산 북구의 화명종합사회복지관(관장 김영란)이다. 이미 복지관에 도착한 학생회 친구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12월17일. 한겨울의 시린 공기가 코끝을 두드리는 이른 시각부터 화명복지관에 모인 건장한 체구의 청춘들은 동의과학대 불교 학생회(회장 김현재) 회원들다. 특히 이들은 회원 중에서도 전기과 전공의 1·2학년 학생들이다. 이곳에 모인 이유는 ‘일일 전기기사’가 되기 위해서다. 부산 북구의 저소득 계층 밀집지역을 찾아가서 무료로 전기 시설을 고치고 바꾸는 것이 오늘의 소임이다. 원활한 시설 보수를 위해 전문가의 조언은 필수. 불교 학생회를 지도하는 전기전공 박차수 교수의 지원 요청에 박 교수의 도반인 한국전력 부산본부 배전운영실 김석균 거사도 오전 근무를 반납하고 동참했다.


동의과학대 학생들과 어르신들을 연결하게 된 화명종합사회복지관은 사회복지법인 범어사에서 운영하는 불교계 복지시설이다. 김영란 관장이 직접 나와 학생들을 맞이했다. 김 관장은 “불교 학생회의 봉사라 반갑기도 하고 특히 전기 전공의 학생들이어서 복지관에서도 인기가 꽤 높다”며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다. 이들의 봉사 소식에 일찌감치 지역 저소득 계층의 전기 상황 점검은 물론 복지관 내 보수가 필요한 구역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고 학생들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이렇게 박 교수와 김 거사 그리고 10여 명의 학생들은 갖가지 전구와 스위치, 전선과 니퍼 등을 큼직한 상자에 한가득 실었다. 모두들 목장갑을 끼고 사다리까지 점검한 뒤 담당 복지사와 함께 어르신들의 집을 찾아 나섰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한 주택의 가장 구석진 곳 단칸방에서 살아가는 할머니였다. 할머니가 사는 곳은 24시간 내내 빛이 들지 않아 전기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20년 넘도록 쓰던 전기 시설은 낡을 대로 낡았고 단칸방의 불은 켜질 듯 말 듯 위태로운 빛만 깜박이고 있었다.


“일단 방 안의 등부터 완전히 교체합시다. 여기 두꺼비 집도 너무 오래 됐어요. 이것도 바꿔야 됩니다.”


박 교수의 진두지휘에 맞춰 즉각 보수 공사가 시작됐다. 베테랑 김 거사가 등 교체를 맡았고 두꺼비 집 교체는 2학년 임진택 씨가 전담했다. 어두운 곳이기 때문에 다른 한 사람은 불을 비춰줘야 했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옛 것과 새 시설을 바꿔주는 역할을 했다. 이렇게 한 구역 당 3인 1조가 되어 뚝딱뚝딱 고치기를 10여 분.


“할머니 이제 비교해 보세요. 불을 한 번 올려 봐 주십시오.”


전류 스위치를 올리자 방안 한 가득 환한 빛이 넘실거렸다. 할머니는 아기처럼 웃었다. 고맙다며 연신 등을 토닥거리는 손길에 따스함이 저절로 묻어났다. 손을 흔드는 할머니의 미소를 뒤로 한 채 다음 집을 향했다. 이번에는 허리가 아파서 제대로 일어서지 못하는 할아버지의 방이었다. 한 사람은 의자를 놓고 또 한 사람은 사다리에 올라가 두 곳의 등을 동시에 교체했다.


등 교체가 진행되는 동안 밖에서는 즉석에서 전기 수업이 한 장이었다. 박 교수의 설명에 학생들의 눈이 반짝거렸다. 1학년 엄대현 씨(20)는 “이론으로는 배웠지만 전기 에너지의 원리를 생활의 현장에서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 이날 주요 임무는 전기시설 교체.

 


이렇게 동의과학대 불교 학생회 학생들이 펼치는 전기시설 무료 보수공사는 학생회가 결성되기 이전인 2009년 전기과 차원에서 시작됐다. 불자인 박 교수가 학생들을 위해 봉사 학생회를 만들자고 제안했고 사회복지법인 범어사 소속의 부산 금정종합사회복지관에서 몇몇 학생들과 함께 출발했다. 금정구 서동 고개를 오가며 전기 시설을 보수해 주는 작업에 동참한 학생들은 기대이상의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박 교수는 이왕이면 불교 학생회를 만들어서 꾸준히 추진해야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 부처님의 자비사상을 학생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으로 봉사가 최고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박 교수의 뜻에 전기 봉사를 하던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불교 학생회에 가입했다. 전기과를 비롯해 타 학과 학생들까지 20여 명이 ‘불교’라는 이름 아래 모였다. 부처님 오신 날에는 연등을 내걸어 교내 명소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시간이 날 때 마다 학교 인근 사찰인 부산 양정동 고운사를 참배했다. 부산 연등축제에서 제등행진의 각 팀별 기수를 전담하는 등 부산의 크고 작은 불교 행사에도 동참했다. 전기 봉사는 가장 적극적인 학생회 활동이 됐다. 올해만도 네 차례에 걸쳐 전개했고 이제는 학생들이 먼저 문의 할 정도로 봉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것이 박 교수의 설명이다.


학생들의 열정어린 봉사 소식에 부산불교지도자포럼, 부산교수불자회 등 신행단체에서의 활동비 지원이 이어졌고 학교 측에서도 신설 학생회로는 이례적으로 학생회 공간을 제공했다. 전기시설 보수공사를 위한 일체 비용이 확보되자 학생회 활동은 더욱 활성화 됐다. 덕분에 학교에서는 올 해 최우수 학생회로 선정되기도 했다.


학생들에게 불교 학생회 활동의 보람을 물었다. 송상현 씨(26)는 “어르신들의 집을 찾아가서 전기 시설을 고쳐 드리면서 내가 이 일을 택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 공부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밝혔다. 김수희 씨(22)는 “불교에서는 ‘인욕’을 말하는데 그 말이 참 마음에 와 닿았다. 교수님을 통해 부처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삶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일기 씨(22)도 “오늘 봉사활동을 처음 나왔는데 신기하고 재미있다. 앞으로도 계속 참여하고 싶다”고 전했다.

 

 

▲학생들은 가는 곳마다 환영을 받았다.

 


박 교수는 현장에서 항상 학생들과 함께 활동하며 불교 학생회의 가치를 차곡차곡 쌓아 나가는 데 진력하고 있다. 그는 “자신보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 내가 잘 하는 무엇인가를 나누려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부처님의 참모습을 만난다”며 “얇은 전선으로 전기에너지가 전달되듯 불교 학생회 역시 학생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달하는 전선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저소득 가정 10여 곳을 찾아다니며 낡은 시설은 새 것으로, 희미한 등은 밝고 환한 등으로 바꾸는 작업은 오전 10시에 시작해 오후 4시가 넘어서야 마무리가 됐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복지관 곳곳의 전기 시설 보수까지 마무리 한 뒤 시계는 오후 6시를 향하고 있었다. 이미 해는 뉘엿뉘엿 넘어갔다.


박 교수는 “힘들었지?”라는 말을 건네며 다소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다리도 후들거리고 손가락도 얼얼할 텐데 학생들은 힘든 기색이 전혀 없었다. “다음에 또 하고 싶다”며 합창하듯 인사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박 교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성큼 어두워진 저녁, 일일 전기기사의 소임도 회향될 즈음, 가로등 불빛이 기다렸다는 듯 길을 비췄다. 이들에게는 보살의 삶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이미 탄탄한 뿌리를 내리고 있으리라.


부산=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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