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7. 부처님오신날 공휴일 제정

75년 1월14일 국무회의서
교계 30년 숙원 결국 해결
용태영 변호사 의지 작용
기독교계 여론도 움직여

 

 

▲부처님오신날 공휴일 제정을 알린 ‘대한불교’(1975년 1월9일자) 기사.

 


1975년 1월14일 늦은 밤, 박정희 대통령은 다급하게 국무회의를 소집했다. ‘부처님오신날 공휴일 제정’을 결정하기 위해서였다. 긴 논의 끝에 정부는 부처님오신날을 공휴일로 제정했다. 해방 이후 30년만에 불교계의 숙원이 해결된 셈이다.


불교계가 부처님오신날 공휴일 제정을 처음 공식 제기한 것은 1963년. 통합종단 조계종이 당시 주무부처인 문교부에 부처님오신날 공휴일 제정 건의문을 내면서부터다. 이미 정부가 기독교의 예수탄신일을 1945년부터 공휴일로 제정해 놓고도 불교의 최대 명절인 부처님오신날을 국경일에서 배제된 것은 종교적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정부는 단호했다. 예수탄신일을 휴일로 한 것은 범세계적인 추세 때문일 뿐 특정종교 기념일을 공휴일로 제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불교계는 즉각 반발했다. 당시 불교계는 청담 스님을 위원장으로 하는 ‘부처님오신날 공휴일 제정 운동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국민 서명운동을 벌이는가하면 언론에도 정부의 종교차별을 알려 대대적인 여론몰이에 나섰다. 그런가하면 1966년 4월 동국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김선흥씨가 서울고등법원에 ‘기독교 성탄절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하면서 부처님오신날 공휴일 제정은 법정공방으로 확산됐다. 그러나 법원은 “예수탄신일을 공휴일에서 제외시켜 달라는 것은 원고에게 아무런 실익이 없다”는 이유로 각하시켰다.

 

불교계의 실망은 컸다. 계속되는 청원에도 정부는 요지부동이었다. 차츰 불교계의 의지도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당시 고졸의 학력으로 204일 만에 사법고시에 합격했으며 40대 나이로 변호사협회 회장에 당선되는 등 ‘성공신화’를 이끌던 용태영(1929~2010) 변호사가 직접 소송에 뛰어들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소위 ‘잘나가는 변호사’가 소송에 뛰어들면서 세간의 이목이 서울고등법원으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특히 불교계는 용 변호사에 거는 기대가 남달랐다. 재판이 진행되는 날이면 전국 각지에서 수천 명의 불자들이 법원으로 몰려드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조계종을 비롯한 한국불교종단협의회도 소송 보조참가 신청을 통해 용 변호사 지원에 나섰고, 세계불교도연맹 등도 지지 결의문을 내면서 힘을 보탰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법원은 “사법부는 행정권의 행사가 있은 이후 그 적법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며 기각을 결정했다. 이번만큼을 될 것이라고 믿었던 불교계는 크게 좌절했다. 모두가 역부족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용 변호사는 포기하지 않고 대법원에 상고했다.


이 무렵 박정희 정권은 1974년 10월 유신을 단행하고 긴급조치로 시국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모조리 잡아 가뒀다. 이를 목격한 용 변호사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건의서를 보내 시국사범 전원을 석방할 것을 요구했다. 유신체제 아래서 이 같은 행동은 목숨을 건 승부수와 같았다. 이 소식은 외신을 통해 세계 각국으로 알려졌다. 이는 기독교계에도 큰 감동을 준 사건이기도 했다. 시국사범 가운데 기독교 인사가 상당수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기독교계가 화답했다. 반대 목소리를 높였던 기독교계조차 부처님오신날 공휴일 제정을 요구하고 나선 것. 기독교계의 눈치를 살피던 정부로서도 한결 행보가 가벼워질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 정부 출범과 동시에 발생한 첫 종교차별 사건은 이처럼 어떤 역경에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용태영 변호사의 용기와 의지로 마침내 해결됐다. 용태영 변호사가 떠난 빈자리가 유독 큰 것은 이 시대 역시 용기와 정의감을 갖춘 참된 지성인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리라.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