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재를 시작하며
1. 연재를 시작하며
  • 이성운
  • 승인 2013.01.15 16: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의례는 종교정체성 정형화한 실천체계

아스라이 들려오는 산사의 새벽 종소리나 대중스님들이 동음으로 읊는 예불소리는 설령 불자가 아니더라도, 뜻과 의미를 잘 모를지라도 마음이 평안해진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또 화청(회심곡)을 하는 스님의 염불소리는 그 어떤 불사(법문)보다 참여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어 자신을 돌아보며 참회의 눈물을 흘리게 하거나 귀의하게 한다. 이는 예불이나 재 등 불교의례의 아름다움이 감성을 자극해 유발하는 긍정적인 순기능으로 그 효과는 자못 크다고 할 것이다.


의례는 특정 종교나 집단의 교의와 신념, 그리고 정체성을 정형화한 실천체계이다. 특히 종교는 의례를 통해 그 집단의 신념을 전승하고 전파하며 발전하므로 의례는 과거의 유물이나 문화재에 머물러 있지 않는 살아있는 유기체로서 그 담지자들의 사상과 문화와 정체성을 올곧이 보여주는 의미 있는 형식이자 형태이다.


불교의례에 활용되는 범종, 법고, 목어, 운판의 불전사물은 소식을 전하는 일반적 기능과 사물의 고유한 특징에 의미를 부여해 그 소식을 전해 받는 특정한 대상과 매개된다. 가령 범종은 지옥중생을, 법고는 축생을, 목어는 어류를, 운판은 조류를 불러 제도하고자 할 때 그들을 부르는 신호기로서 역할을 수행한다. 이 하나하나는 그 소리의 특성이나 깊숙이 스며있는 유래 등에 의지함은 물론이다. 또 향을 사르거나 등을 밝히는 데 활용되는 향로와 석등, 괘불, 지주, 번, 장엄물 등 법석에 활용되는 다양한 기물과 지물은 모두 의례의 산물이며, 대웅전, 극락전, 지장전, 명부전, 운수전 등 각종 전각과 대웅전 큰 마당, 해탈문, 소대 등은 다 의례 봉행의 무대로서 의례를 떠나 종교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 증좌들이다.

여기에 더해 장구한 한국불교 역사 속에서 형성돼온 고유의 영산재나 전통의 수륙재는 한국적인 특징이 살아있는 범음범패와 무용작법과 같은 독특한 무형문화를 오늘의 우리들에게 전승해 주고 있다. 아울러 불교의례는 보렴이나 민요와 같은 기층문화에 습합되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우리 민족의 마음속에 자비를 심어 뭇 생명을 아끼고 사랑하는 보편적인 정서를 함양하는데 기여해왔다. 화광동진이요, 입전수수의 모습이라고 하겠다.


이렇듯이 불교의례는 유·무형의 다양한 문화재를 안고 있는, 신행과 문화의 보고이며 결정체인 불교의례에서 전개되는 방대한 내용을 다 다룰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이 연재에서는 현재 한국불교에서 행해지는 의례 현상이 지닌 미적 본질이나 법칙을 밝혀보는데 일차 목적을 두고자 한다.


그렇다고 해서 합장, 예경, 공양 등 주요 기본 의례의 개념 속에 박힌 본질적 미학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왜인가. 불교를 수용한지 1700여 년에 이르는 동안 정치 사회의 변화에 따라 한국불교는 신산과 환희가 교차되고 공존하는 굴곡의 역사를 안게 되었고, 그 결과 의례 형식과 형태의 변화, 의례에 대한 인식이 적지 않게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이성운 강사
하여 이곳에서 한국불교 의례의 공시적 현상을 통시적 미학적 관점에서, 변형 의미 상징 등을 하나하나 톺아볼 것이다. 그러다 보면 한국불교의례의 전형과 특징이 조금이나마 드러날 수 있으리라 본다. 때로는 필자의 관점이 다수 불자들의 보편적 이해와의 거리도, 또 거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현실태와 이상태에 대한 학문적인 한 논점이라고 유념하고 봐 주신다면 한국불교 의례의 미학 탐색에 조금이라도 이바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성운 동국대 강사 jabidj@korea.com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