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와 불교
이주노동자와 불교
  • 김형규 기자
  • 승인 2013.01.19 1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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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향한 차가운 시선

이들의 삶을 더욱 힘들게 해

다문화가정 어린이만 17만명

다양성 인정하는 사회되어야

 

1월16일자 본지 1178호에는 이주 노동자인 방글라데시인 데부 스라만씨의 사연이 소개됐다. 더 나은 삶을 기약하며 떠나온 한국에서 오히려 병마와 싸우고 있는 한 외국인노동자의 안타까운 사연이었다. 취재기자로부터 그의 기구한 얘기를 전해들은 순간 막막함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본지는 화계사와 공동으로 매달 이주노동자나 다문화가정을 선정해 후원하는 이주민돕기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올해로 벌써 6년째다. 사연을 읽고 십시일반 독자들이 보내온 후원금으로 이들을 돕고 있다. 이렇게 지원된 금액이 2억여 원. 사연들은 하나같이 안타깝다. 노동현장에서 몸을 다쳐 홀로 병마와 싸우거나 자녀의 병으로 삶의 희망조차 잃어버린 다문화가정이 많았다. 이들 중에는 이미 삶의 끈을 놓아버린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들이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차가운 시선이다. 따가운 눈초리와 멸시, 우리 정부와 사회가 함께 가하는 폭력은 이들의 삶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우리사회는 급속도로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110만명을 넘어섰다. 새로 결혼하는 10쌍 중 1쌍이 다문화가정이다. 국제결혼을 통해 태어난 아이들이 이미 17만 명에 이른다. 이들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다. 이제 마음을 열고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정을 이방인이 아닌 사회의 일원으로, 나라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때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누리는 지금의 번영은 이주노동에서 시작됐다. 30~40년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한국은 아들과 딸을 먼 타국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를 파견했다. 그들이 보내온 눈물 젖은 돈으로 공부를 하고 공장을 지었다. 그리고 지금의 발전을 이뤘다. 그런 나라의 사람들이 이제 살만하니 이주노동자들을 가난한 나라 사람이라며 멸시하고 있다.

 

부처님은 계급사회인 인도의 척박한 땅에서 천민과 여성을 평등하게 교단에 받아들였다.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며 성불할 수 있다고 선포했다.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이었을 것이다. 신분의 존귀함은 피부색깔이나 가문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행동에 의해 결정된다는 가르침은 지금까지도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국내에 거주하는 이주노동자는 세월을 거슬러 독일에 파송됐던 우리의 아들딸과 다를 게 없다.

 

물론 이주노동자들에 의한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부 부정적인 면을 부풀려 편견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커서 범죄를 저지르기 쉽듯이 이주노동자나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을 차별하거나 소외시키면 결국 좋지 못한 결과를 불러 올 것이다.

 

“모르고 저지르는 죄와 알고 저지르는 죄 가운데 모르고 저지르는 죄의 잘못이 더욱 크다.” ‘밀린다왕문경’의 가르침이다. 알고 저지르는 죄는 일말의 부끄러움이라도 있지만 모르고 저지르는 죄는 반성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죄는 왜곡된 정보에 의해 저지르는 잘못일 것이다. 스스로 옳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김형규 부장

이주노동자나 다문화가정에 대한 편견도 왜곡된 정보에 의해 일어난다. 이제 이주노동자나 다문화가정을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먼저 살갑게 받아들이고, 나중에는 무심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본지 이주민 돕기 캠페인에 동참하는 것도 다양성이 인정되는 성숙한 사회로 가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김형규 kimh@beopbo.com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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