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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세종, 신미 스님에 법을 청하다

 

▲복천암에 소장된 신미 스님 진영.

 

 

1450년 1월26일, 깊은 병세에서 다소 기운을 회복한 세종(1397~1450)은 내관을 시켜 신미 스님을 조용히 궁에 들게 했다. 삶의 마지막 회향을 앞두고 자신을 위해 헌신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신미 스님이 침전에 들자, 세종은 신하로서가 아니라 큰 스승을 대하듯 스님을 극진히 모셨다. 감로수와 같은 스님의 법문을 청해 들은 세종은 스님이 주석하던 속리산 복천암을 중창할 수 있도록 불사(佛事)를 돕고 싶다고 했다. 그래도 부족하다고 여겼던지 얼마 뒤 세종은 스님에 대해 ‘선교도총섭 밀전정법 비지쌍운 우국이세 원융무애 혜각존자’라는 긴 법호를 친히 내렸다. 그러나 병세가 다시 악화돼 직접 전해주는 것이 어렵게 되자 세종은 문종에게 이를 유언으로 남겼다.


세종이 죽기 한 달 전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내용이다. 숭유억불을 내세웠던 조선시대에 임금이 자신의 침실에 스님을 초청해 법문을 청했다는 것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지만 친히 ‘존자’라는 호칭을 내렸다는 점은 세종이 신미 스님을 오랜 기간 존경해 왔음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나라를 위하고 백성을 이롭게 했다(祐國利世)’는 문구를 포함시켰다는 점은 이미 신미 스님이 나라에 큰 공적을 남겼다는 것도 암시한다.


그럼에도 조선왕조실록에서 스님에 대한 기록은 인색했다. 그나마 실록에 등장할 때면 스님은 ‘간사한 스님(姦僧)’으로 내몰리기 일쑤였다. 불교를 배척했던 조선 전기의 상황에 철저히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이랬던 스님이 최근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한글창제의 비밀’이 학자들에 의해 속속 밝혀지면서부터다. 즉 훈민정음이 범자 모양을 본떠 만들어졌으며, 불교의 신성한 숫자가 곳곳에 숨겨져 있고, 훈민정음 창제 과정에서 집현전 학자들이 주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최근 연구결과 속속 드러났다. 또 훈민정음 창제 이후 유독 불교경전이 많이 번역됐다는 점 등은 당시 범어(梵語)에 탁월했을 뿐 아니라 불교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춘 누군가가 한글창제에 깊숙이 개입했을 것이라는 가능성이 제기됐다. 그 결과 훈민정음을 창제한 일등공신이 신미 스님일 것이라는 분석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스님은 범어에 탁월했을 뿐 아니라 세종과 깊은 친분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미 스님은 충북 영동에서 태종 때 영의정을 지낸 김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머리가 총명해 유학경전을 빨리 익혔으며 과거에도 합격해 집현전의 학사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벼슬에 큰 뜻이 없었고 우연히 접한 불교경전에 심취해 홀연히 출가했다. 속리산 법주사에서 동갑의 도반 수미 스님과 대장경, 율을 함께 익혔으며 범어에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이런 가운데 스님의 동생이면서 조선 전기 대표적인 호불 성리학자였던 김수온이 집현전의 학사가 되면서 신미 스님은 비밀리에 세종의 왕사 역할을 담당했다. 세종이 다섯 째 아들 광평대군과 일곱 째 평원대군에 이어 부인 소헌왕후를 잇따라 잃어 깊은 시름에 빠져 병을 앓게 되자 궁에 내원당 짓고 법회를 주관했다. 또 세종의 아들인 세조가 ‘간경도감’을 설치하고 불전을 번역, 간행했을 때 이를 책임지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이런 까닭에 신미 스님은 당시 유학자들로부터 경계와 시기의 대상이 됐다. 더구나 불교를 배척했던 당시의 사회분위기에서 스님의 뛰어난 활약은 가려질 수밖에 없었다.


지난 560여년 간 이념의 벽으로 인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했던 신미 스님. 이제 그의 삶과 업적을 바르게 복원하고 재평가하는 것은 시대적 사명이 되고 있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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