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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관음사 주지 지현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나는 진흙…인연 닿은 이들 연꽃으로 활짝 피어주기를

20년 전 관음사서 복지 시작
노인요양·자활센터 등 운영


구족계 받으면 모두가 율사
포교에 율사·선사 따로 없어

 

 

▲ 지현 스님

 

 

‘저는 진흙이 되겠습니다. 저를 만난 인연으로 모든 사람이 연꽃으로 피기를 바랍니다.’


연꽃. 진흙 속에서 피는 꽃이기에 인내의 꽃이요 깨달음의 꽃으로 상징된다. 시인들도 노래했다. 이호연은 ‘세상 온갖 시름/ 황톳물 같은 아픔이라도/ 지긋이 누르고/ 꽃으로 피우면 저리 고운 것을’이라 하고, 구상은 ‘무어라 이름 할 수 없는 신선함에/ 먼지 하나 범할 수도 없고/ 숨소리도 죽여야 하느니,/ 이 청정한 고운 님의 경지에/ 해와 달이 함께 빚어낸 꽃이라’이라 했다. 연꽃인들 아픔이 없을까! 김세실은 ‘연꽃이 혹독한 추위 속에/ 견디는 것은/ 수렁 속 세상을/ 정화하기 위해서야. // 뿌리는 고통에 떨며/ 온힘을 다해서/ 꽃잎을 바치는 거야’라 했다.

송광사 율주 지현 스님은 연꽃을 좋아한다 했다. 어느 스님인들 연꽃을 좋아하지 않을까.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진흙 속에 피는 연꽃’같이 살라는 말을 누누이 들어왔을 터이니 말이다. 하지만 스스로 ‘진흙이 되겠다’는 일성은 지현 스님으로부터 처음 들었다. 법회 때나 간간이 비춰진 언론매체에서도 지현 스님은 이 말을 전한다.
한 송이 ‘연꽃’을 위해 기꺼이 ‘진흙’이 되겠다는 지현 스님! 그 원력을 일으킨 마음 한 자락의 진의는 무엇일까. 부산 관음사를 찾았다.


송광사 분원 관음사는 아파트 단지 사이에 위치한 도심 사찰이지만 깊은 산중의 산사 정취도 간직하고 있다. 관음사는 20여년 전부터 복지사업에 뛰어들었다. 다대동 두송종합사회복지관을 위탁받아 운영하는 것은 물론, 1998년 ‘늘 기쁜 마을’이라는 사회복지법인까지 설립했다. 뿐만 아니다. 두송노인복지센터를 중심으로 환희소규모요양시설, 사하두송지역자활센터, 다정한 어린이집, 사하사랑나눔푸드마켓 등도 운영해 오고 있다.


1999년 첫 발을 내디딘 전문 호스피스 봉사자 양성 기관은 벌써1000여명의 봉사자를 배출했다. 부산 시내 각 병원에서 무료 봉사하고 있는 호스피스 봉사자 대부분은 이곳 출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2년 설립된 관음선행장학회는 대학생들에게 해마다 장학금 2500여만 원을 지급하고 있다. 말사 단위 사찰 장학지원 규모로는 결코 적지 않다.


관음사 신도들의 신행 활동도 왕성하다. 승다련회, 정토염불회, 청신사회, 청년회, 단이슬어린이회, 간호사회, 자비명상모임 등은 모두 불자들이 자생적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변화는 정확히 송광사 율주 지현 스님이 관음사 주지로 주석하며 시작됐다. 자청해 온 것도 아니다. 관음사를 맡으라는 어른 스님들의 언명에 ‘예’하고 걸음했을 뿐이다. 처음부터 복지 불사에 뛰어들겠다는 원력을 세운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저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부처님 품으로 보듬어야겠다는 생각에 어린이 법회를 시작했고, 실직하거나 명예퇴직한 사람들을 위해 자활센터를 운영했을 뿐이다. 말 그대로 ‘인연 닿는 대로’다.


하지만 부산 복지영역에서 관음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엄청나다. 지역주민들은 물론 공공기관으로부터도 인정받은 지 오래다. 30명 안팎의 노인을 모실 수 있는 소규모 환희노인요양시설이지만 건강보험공단 평가 결과 최우수기관으로 선정된 것만으로도 이를 방증한다. 초파일 이후면 대규모 환희노인요양시설도 개원될 예정이다. 지하 1층, 지상 4층의 요양시설이 4월 완공을 목표로 건립 중에 있다.


포교 원력을 세운 스님도 이뤄내기 어려운 이 불사를 율사의 길을 걷는 스님이 해나가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혹, 출가 직후부터 포교 원력을 세웠던 건 아닐까?


“포교란 부처님 법을 펴는 겁니다. 불법홍포는 스님의 사명입니다. 여기에 ‘포교 원력’이라는 사족은 왜 붙지요?” 나지막하면서도 부드러운 음성. 하지만 뼈가 있다. “가부좌를 틀고 앉으면 선사고, 경을 보고 있으면 강사입니다. 계율은 항상 지켜야 하는 것이니 율사 아닌 스님은 없습니다.” 선사, 강사, 율사라는 이름에 사람을 가둬두지 말라는 뜻이리라.


“그렇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법을 지켜야 하는 것이지, 변호사라 해서 법을 더 잘 지켜야 하는 건 아닙니다. 선사, 강사, 율사라는 이름에 자신을 한정시킬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직위 또는 소임에 따라 스님을 예단해 왔다. 그렇다. 선사라 해서 강단에 서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며, 강사라 해서 참선 하지 말라는 법은 또 어디 있는가. 지현 스님 말씀대로 ‘구족계 받은 순간’ 모든 스님은 율사다. 아니, 모든 스님이 선사이며 강사이고 율사다. 다만, 그 길을 제대로 걷고 있는지만 남아 있을 뿐이다. 율사 스님이 ‘포교 원력은 왜 세웠을까?’라는 물음은 어리석었다. 하지만 또 하나 궁금했다. 왜 복지인가?


“사회에서 말하는 그늘진 곳, 사각지대. 누가 보살펴야 하나요? 아니, 누가 제일 먼저 그 곳에 빛을 전해야 하나요? 종교이겠지요. 이를 외면한다면 종교가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말만 있고 행이 없다면 의미가 없지요. 진리도 세상에 실현시킬 수 있을 때, 실현시키고자 하는 노력이 경주될 때 가치가 있겠지요.”


‘왜 복지인가?’라는 물음도 애당초 어리석었다.


지현 스님은 우리 사회가 ‘자살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쓴 이유를 알고 있느냐 물었다. 하루 평균 42.6명이 자살하고 있는 게 우리 현실이다.


“천진무구한 어린이를 보세요. 행복해 보이지 않나요? 그런데 그 아이들보다 더 많이 배운 어른들은 왜 불행하다고만 할까요?” 번뇌가 많기 때문 아닐까? “그 번뇌는 왜 나온 것일까요?”

 

삼독에 빠진 현대 과학문명
삼학으로 치유 못하면 비극

 

악 막고 선 쌓아야 청정 회복
정견 세웠으면 당장 정진해야


지현 스님 물음은 바로 이어졌다. “20세기, 전 세계는 엄청난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변화 원동력은 과학이었지요. 그런데 과학이 나쁜 건가요?” 분명 아니다. 머뭇거리는 사이 질문은 또 던져졌다. “20세기 과학문명! 삼학, 삼독 중 어느 관점에 기울어져 이뤄진 문명인가요?”


수많은 인문사회 석학들은 20세기 과학문명을 고찰하며 비판했다. 전쟁, 억압, 갈등의 원인을 과학문명에게 돌리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과학계 지성인들은 ‘과학이라는 도구를 인간이 잘못 썼기에 벌어진 일’이라고 맞섰다. 과학과 인문 사이의 팽팽한 줄다리기는 지금도 진행 중 아닌가. 지현 스님의 한마디는 모두가 귀담아 들어야 한다. 너무도 명료해지지 않는가. 계정혜를 통한 과학문명이라면 지금의 비극과 불합리는 훨씬 적었을 것이다.


“탐진치를 왜 삼독이라 합니까? 고통을 주기 때문입니다. 삼독을 앞세운 현대과학 문명이 가져다 줄 결과는 너무도 자명합니다. 계정혜 삼학으로 치유하지 못하면 이 세계는 고통으로 가득 찰 겁니다. 우리 사회는 여기에 급진적인 산업화까지 더해졌습니다. 그로 인한 상처는 누가 치유합니까? 너도나도 탐욕만 앞세우고 있는데 누가 치유한단 말입니까? 이젠 뒤돌아보아야 합니다.”


부처님을 닮아가려고 노력한다면 삼독을 다 끊지 못할지언정 적게, 멀리 할 수 있지는 않을까? “그리 생각한다면 부처님부터 모셔야 합니다. ‘내 마음에 부처 있다’는 추상적인 말만 앞세우는 건 허세입니다. 그리고 경전을 수지독송하며 실천해 가야 합니다.” 무엇을 실천해 가야 할까? 지현 스님은 출재가의 계율을 모두 담은 대승계로 대표되는 삼취정계(三聚淨戒)에 주목해 줄 것을 당부했다.


“섭률의계(攝律儀戒)는 부처님이 정한 계율을 잘 지키는 것입니다. 나쁜 업을 짓지 않는 겁니다. 섭선법계(攝善法戒), 착한 일을 받드는 것입니다. 둘 다 청정심을 회복하는 첫 걸음입니다. 섭중생계(攝衆生戒), 또는 요익유정계(饒益有情戒)라고도 하지요. 병든 이를 보살피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을 지키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보를 베푸는 일들 모두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 부산 관음사 경내. 도심사찰이지만 산사의 정취가 가득하다.

 


복지는 곧 중생에게 이익을 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복지야말로 요익유정계를 가장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방편 아닌가. 그러고보니, 율사인 지현 스님이 복지에 힘쓰는 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나쁜 일 하지 말고 선행을 베풀며 남을 이롭게 하라’는 부처님 말씀을 지현 스님은 올곧이 실천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나 알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이 한 구절을 말이다.


지현 스님은 ‘진흙’이 아닌 ‘연꽃’이었다. 자신을 ‘진흙’이라 한 건 ‘하심’의 발로였다. 모든 이들이 연꽃의 마음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역설적으로 절실하게 설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문해 본다. 우리 삶의 청사진은 무엇으로 설계했는지. 삼학인가 삼독인가? 오늘, 선행을 쌓으며 자신은 물론 남도 이롭게 했다면 ‘삼학 설계도’다. 그렇지 않다면 ‘삼독 설계도’가 분명하다. 고통이 보이는 설계도라면 지금이라도 걷어치우고 새로운 설계도를 그려야 한다.


지현 스님에게 한 가지 더 여쭈어 보았다. 복지불사 외에 ‘딱 하나’ 더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말이다.


“하던 공부 계속 해야지요. 염화미소 이치 하나 알았다고 공부 마쳤다 생각하면 큰일 납니다. 정진만 있을 뿐입니다.”


안도현 시인의 ‘돈오의 꽃’일부가 떠올랐다. ‘깨달음을 얻은 뒤에도/ 비 오고 바람 분다/ 연꽃 들고 미소짓지 말아라/ 연꽃 든 손 너머/ 허공을 보지 못하면/ 아직 무명이다// 버리고 죽어서/ 허공 된 뒤에/ 큰 허공과 만나야/ 비로소 우주이다// 백 번 천 번 다시 죽어라/ 깨달음을 얻은 뒤에도/ 매일 별똥이 지고/ 어둠 몰려올 것이다’
그렇다. 부처님께서도 열반에 드시기 전 당부하시지 않았는가. “정진하라!”


채한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지현 스님은

1972년 해인사에서 보성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 수지. 1977년 쌍계사에서 석암 스님을 은사로 비구계 수지. 1989년 부산 관음사 주지. 1998년 송광사 율원장. 현재 조계종 단일계단 교수사, 조계종 행자 교육원 유나, 조계종 교육원 교재편찬위원장, 성보문화재 연구원 이사, 대한불교어린이지도자연합회 회장, 사회복지법인 늘기쁜 마을 대표이사, 환희요양시설 원장, 전국불교 호스피스협회 회장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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