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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뱀의 독

기자명 법보신문

몸에 퍼진 뱀의 독을 약초로 치료하듯
독 같은 분노를 알아차리고 제어해야

이 비유는 ‘숫따니빠따’ 제1장 ‘뱀의 품’에 나오는 비유이다. 부처님께서 알라위(Āḷavi)국에 있는 악갈라와(Aggāḷava) 탑묘에 계실 때였다. 그때 알라위의 비구 수행자들은 자신들이 머물 처소를 지으려 나무를 베고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 살고 있는 천신들(devatā)이 ‘존자들이시여, 자신의 처소를 지으면서 우리의 처소를 자르지 마소서’라고 말했음에도, 한 비구가 나무를 자르다가 천신의 손가락을 베고 말았다. 이에 천신들이 크게 분노하여 그 비구를 죽이려 하다가 부처님을 찾아뵙고 이일을 고하였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천신들이여,  참으로 잘하였다. 그 비구의 목숨을 빼앗지 말라”라고 하시며 천신들을 달래었다. 그리곤 천신들에게 다른 나무를 찾아 살기를 부탁하고, 나무를 베면 참회죄(pāccitiya)에 해당한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읊은 시가 바로 이것이다.


이 시는 ‘이미 일어난 분노를 제거하는 비구는 이 세상과 저 세상을 버린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즉 분노가 일어나 그 분노에 지배되면 오히려 그 분노로 인해 자신을 해치게 되고, 태어남과 죽음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는 가르침이다. 그것을 뱀에 물려 독이 퍼지면 약초로 다스려야 하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뱀에 물리고도 이를 가만히 두고 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린 주변을 동여매어 독이 퍼지지 않게 하고 서둘러 병원에 가서 해독제를 맞고 치료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화가 나면 이것이 독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며, 설혹 이러한 이야기를 듣더라도 뱀의 독을 대하듯이 하지는 않는다.


부처님께서 천신들에게 ‘잘하였다(sādhu)’라고 하신 것은 분노에 차서 그 비구를 죽이지 않은 것을 칭찬한 것이다. 분노는 이성을 마비시켜 전후 상황을 판단하지 못하게 한다. 분노에 찬 사람은 이미 분노라는 독에 중독되어 분노의 대상을 불태워 버리는 일에만 혈안이 되고 만다. 상대에게 물리적 폭력을 가하거나, 욕설과 비방을 하거나, 나아가 살해를 하기도 한다. 이는 결국 대상을 때리거나 비방하거나 죽이는 것만 아니라 자신도 그렇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그러니 커다란 분노를 극복한 것을 두고 어찌 칭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부처님께서 분노를 ‘삼독(三毒)’ 가운데 하나로 규정하신 것은 분노가 그만큼 커다란 해악을 끼치기 때문이다. 현대 심리학계에서도 ‘분노’는 중요한 연구테마다. 하지만 분노는 다른 정서와는 달리 연구하는데 매우 어렵다고 한다. 분노는 분노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울, 불안, (성)폭력, 자살 등의 다양한 양상으로 표출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분노로 찬 ‘증오의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 사소한 일에 분노하여 사람을 해치는 범죄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나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을 ‘악’으로 규정하며 분노하기도 한다. 분노의 감정은 일어난 그 순간 제어하지 못하면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린다. 신들이 손가락을 베이자 분노하여 결국 비구를 죽이려는 마음을 가진 것처럼, 분노는 대부분 사소한 일로 촉발되지만 그 결과는 참혹하게 끝나는 경우가 많다.

 

▲이필원 박사

부처님께서 분노를 뱀의 독에 비유하신 것은 바로 모든 것을 불태우는 분노의 파괴적 속성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어찌 뱀의 독처럼 분노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일상 속에서 분노의 일어남을 알아차리고 제거하는데 힘을 쏟아야 할 이유인 것이다. 
 

이필원 동국대 연구교수 nikay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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