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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개화승 무불 스님 입적

1884년 2월9일 급사
일본서 선진문물 전파
근대 개화가들의 스승
고종의 특사로도 활동


1884년 2월9일 일본 동경에서 비보가 날아들었다. 일찍이 이동인 스님과 함께 일본의 선진문물을 조선에 알리던 전령이자 개화 사상가였던 무불 스님이 일본 섭주 신호(攝州 神戶) 병원에서 원인모를 병으로 급사했다는 것이다. 그의 나이 겨우 34세였다.


뜻밖의 사건이었다. 특히 스님과 친분을 쌓고 일본의 정세를 들으며 조선의 개혁을 치밀하게 준비했던 김옥균, 박영효 등이 중심이 된 개화당 세력들은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순간 자신들이 추진하고 있는 조선의 개혁에 불길한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로부터 10개월 뒤인 1884년 12월 개화당이 청의 간섭과 수구세력의 척결을 시도한 갑신정변은 청군의 반격으로 ‘3일 천하’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좌절을 맛본 김옥균은 겨우 목숨을 건져 일본으로 망명했다. 그리고 오랜 도반이자 조선의 개혁을 함께 꿈꿨던 동지이기도 했던 무불 스님의 유골이 봉안된 동경 동본원사를 찾아 슬픈 소식을 전했다.


김옥균·박영교·박영효·서광범 등 19세기 중엽 개화파의 정신적 스승으로 불렸던 무불 스님. 뛰어난 학식과 어학으로 이동인 스님에 이어 일본으로 건너가 고종의 특사역할을 했던 스님이었지만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못했다. 그랬던 스님이 다시 세간에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130여년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근대불교연구자이자 불교인권운동가인 진관 스님이 2009년 6월 보조사상연구원 월례학술대회에서 ‘개화승 무불 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그동안 역사의 뒤안길에 있던 무불 스님이 비로소 부각되기 시작했다. 진관 스님은 논문에서 “무불 스님은 초기 개화 사상가들에게 불교사상에 기초한 평등과 민권의 이념을 제공함으로써 조선의 개화사상을 이끈 인물이었다”며 “그럼에도 그에 대한 연구가 미진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진관 스님에 따르면 무불 스님은 1851년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며 출가 이전에는 탁정식으로 불렸다. 조선말 판관을 지낸 집안에서 성장한 탓에 어려서부터 유학에 밝았으며 청으로부터 건너온 책을 접하며 신학문을 탐독하기도 했다. 출가를 결심한 것도 이즈음인 것으로 추정된다. 출가 이전부터 뛰어난 학식을 겸비했던 탓에 스님은 젊은 나이에 백담사 강사가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스님은 금강산 건봉사에서 열린 만일염불회에 참석, 미타염불사상에 심취하면서 개화사상을 받아들이게 됐다. 김옥균, 박영효 등을 만난 것도 이맘때였다. 스님은 이들과 화계사에 모여 불교경전을 함께 공부하며 개화 사상의 체계를 잡아갔다. 특히 불교의 평등사상은 전근대적인 계급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믿었다. 여기에 무불 스님의 소개로 이동인 스님이 이들의 모임에 합류하면서 새로운 세상 만들기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했다. 특히 무불 스님은 이동인 스님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몇 차례 일본을 드나들면서 일본의 정세와 새로운 문물 등 자료를 수집해 개화파에게 전달했고, 외교적인 역할도 담당했다.


또 이동인 스님이 임오군란 이후 정치적인 이해관계의 희생양으로 갑자기 실종되자, 무불 스님은 그를 대신해 신사유람단을 인솔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동경에 위치한 외국인학교에서 교사로 취직해 개화파들이 필요로 하는 자료를 수집해 전달했으며 박영효를 비롯해 김옥균, 서광범 등이 수신사로 파견됐을 때에도 이들을 안내해 다양한 신문물을 경험하도록 도왔다. 때문에 진관 스님은 “조선의 개화사상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인물이 바로 무불 스님”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진관 스님이 논문에서 밝혔듯 무불 스님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미약하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스님의 행적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근대 개화 사상가들에게 정신적 스승으로 불릴 만큼 뛰어난 학식과 인품을 갖췄던 무불 스님. 행적과 사상 연구는 어렵더라도 스님의 기일에 맞춰 차 한 잔이라도 올리는 것이 후학으로서 도리가 아닐까.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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