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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코뿔소의 뿔

기자명 법보신문

인도 코뿔소 외뿔처럼
세속 가치 등진 수행자
자신 돌이켜보는 거울
혼자인 삶에 당당해야


‘코뿔소의 뿔’ 비유는 ‘숫따니빠따’ 뱀의 품, ‘코뿔소의 뿔의 경’에 나온다. 이 표현은 법정 스님의 번역어인 ‘무소의 뿔’로 더욱 유명하다. ‘코뿔소의 뿔의 경’은 41개의 시로 이루어졌으며, 각 시의 후렴구에 이 표현이 붙어 있다.
코뿔소의 뿔은 ‘홀로 묵묵히 걸어가는 수행자’의 모습을 빗댄 표현이다. 이유는, 인도 코뿔소가 외뿔이기 때문이다. 마치 갑옷을 입은 듯한 모습과 외뿔은 어떤 외부적 유혹이나 두려움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 수행자의 굳센 마음가짐을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더구나 이 인도 코뿔소는 새끼를 돌보는 어미를 제외하고는 단독생활을 하는 온순한 초식동물이다.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전법선언을 하시면서 ‘둘이서 한 길로 가지 마라’라고 하신 말씀을 생각하면, 인도 코뿔소만큼 수행자의 정신과 삶을 잘 표현하는 동물도 드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코뿔소의 이미지 때문일까. ‘코뿔소의 뿔의 경’이 담고 있는 내용은 주로, 폭력에 대한 경계나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애착과 집착이 가져다주는 괴로움, 그리고 욕망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삶의 모습 등을 그리고 있다. 그 중 몇 가지 예를 보자.


“다른 사람들이 바라지 않는 자유를 주시하면서 코뿔소의 뿔처럼 홀로 가라”
“온갖 위험들을 극복하고, 두려움이 없이 코뿔소의 뿔처럼 홀로 가라”
“모든 재가(在家)의 속박들을 끊고서, 코뿔소의 뿔처럼 홀로 가라”
“욕망의 대상들에게서 고통을 보고서, 코뿔소의 뿔처럼 홀로 가라”


여기서 ‘다른 사람들이 바라지 않는 자유’란 욕망을 버린 ‘자유’를 말한다.


이처럼 코뿔소의 뿔이 상징하는 것은 세속적 가치와 쾌락을 등진 수행자의 삶이다. 그렇다고 이것을 수행자에 국한된 것으로만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수행자의 모습은 우리를 비추는 거울과도 같은 것이다. 그렇기에 부처님의 모든 말씀은 나를 돌이켜 보는 거울이 된다. 그렇지 않을 때, 부처님의 금구직설(金口直說)은 다른 이들에게 알량한 나의 지식을 자랑하는 장식품이 되기 싶다.


우리는 모두 엄격한 의미에서 ‘홀로’ 살아간다. 하지만 ‘홀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두런두런 이야기할 가족이, 벗이 없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그렇지만 하루에 수 십, 수백의 사람과 만나더라도 그 ‘홀로’인 삶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 속에서 느끼는 ‘고독감’이 더 크게 다가올 때가 많다. 그럴 때, 우리는 ‘절망’과 ‘고통’을 경험하고 ‘체념’한다. 외로움을 달래고자 사람들 속으로 뛰어들지만, 결코 지워지지 않는 외로움을 느낄 때만큼 커다란 상실감도 없을 것이다. 그럴수록 우리는 욕망을 채울 대상들을 찾아 헤매게 된다. 그를 통해 위로받고자 하지만 더욱더 커다란 공허함과 괴로움을 마주하게 될 뿐이다.


나와 나 아닌 사람은 삶의 내용을 얼마나 공유하는가에 따라 친소(親疎)가 정해진다. 아무리 친해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전적으로 같을 순 없다. 전적으로 같을 것을 기대하는 순간,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절망’과 ‘실망’뿐이다.

 

▲이필원 박사

하지만 홀로 가는 자는 쓸데없이 ‘같을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기대가 없는 만큼 고통도 적으며, 나에게 주어진 순간에 충실할 수 있다. 그래서 부처님은 ‘당당하게 홀로 가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이것은 자신을 의지처로 삼고, 가르침을 의지처로 삼으라고 하신 부처님의 유훈과도 맥을 같이 하는 가르침이다.
 

이필원 동국대 연구교수 nikay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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