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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승가’가 자라고 있다

기자명 법보신문

때로 불교는 ‘종단’ 밖에 있다. 조직은 불교의 가치를 증진시켜 주기 위해서 존재할 뿐,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또한 ‘포교’는 세력의 확장이 아니다. 마주 앉은 사람이 자신을 발견하고 행복을 찾도록 도와주자는 것일 뿐이다. 필요 없다고 손을 내젓거나, 다른 곳에서 길을 찾겠다면 웃으며 보내주어야 한다. 불교의 위대함이 여기 있다. 그것을 한 마디로 ‘방편(方便, upaya)’ 정신이라 부른다. 그래서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과 우매를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었다. 현대적으로는 실용적 마인드라 불러도 좋겠다.


말이 난 김에 불교의 ‘조직’에 대해 몇 마디 더 하고 싶다. 조직은 대형일 필요가 없다. 정신적 가치를 내세운 ‘진짜’들은 거의 ‘입문(initiation)’에 의존했다. 입문이란 폐쇄된 몇 명에게만, 까다로운 조건을 걸어, 문을 조금만 열어놓는 것을 말한다. 그룹은 극소수로 구성되었다. 선불교가 그 전형이다. 교리와 조직에 의존하지 않고, 이심전심(以心傳心), 오직 스승과 제자 사이의 직접적 수수(授受)가 있었다. 가령 육조의 제자 남악(南嶽)에게는 제자가 달랑 하나 마조(馬祖)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자랑스러워했다. “뿔 달린 짐승은 많지만, 내겐 천하를 짓밟을 천리마 하나면 족하다(衆角雖多, 一麟足矣).”


불교가 원래의 ‘목적’을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역설적 주장같지만, 규모를 줄이고 더 안으로 침잠해야 한다. ‘조계종단’ 아래 통일된 조직을 가지고, 총무원장이 본사의 주지들을 임명하는 하향식 구조는 불법(佛法)의 구현을 위해서는 비효율적일 수도 있다. 선거는 세력의 규합으로 이루어지고, 정치권과의 유착도 피할 수 없다. 그 과정에서 수행인들은 물론, 대중들도 그저 타자일 수밖에 없고 목적과 수단 사이에 틈은 더 벌어진다.


‘승가(僧伽, samgha)’는 도를 구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예전에는 출가승들만을 가리켰다. 이 규정은 너무 형식적이 아닌가. 출가해도 세속의 습을 달고 있다면 여전히 중생이고, 세속에 살고 있지만, 전혀 다른 삶을 꿈꾸고 길을 찾고 있다면 그는 ‘사문’이라 불릴 만하다. 둘 사이의경계는 지금 불완전해 지고 있다. 수많은 독서, 수행 그룹이 우후죽순, 더구나 작금의 웰빙 힐링 바람을 타고, 만들어지고 운영되고 있다. 새로운 환경에 따라 새로운 수행 풍토와 ‘승가(samgha)’가 만들어 지고 있는 중이다. 지난 번 어느 불교 공부 모임에 초대 받아 간 적이 있다.

 

매주 만나서 그저 책을 읽는다고 한다. 토론이나 질문은 없다. 불교 책 가운데서 고르지만 꼭 한정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마치고 맥주 한 잔을 마시며 뒷풀이를 할 뿐이다. 거기서 궁금했던 이야기, 질문 보따리를 자유롭게 풀어놓는다. 각자 싸 온 간식과 김밥을 내놓고, 안부를 묻고, ‘진정 반가워하며’ 한 해의 덕담을 나누었다.


거기 하나의 ‘공동체’가 있었고, 새로운 ‘결사’를 본 듯했다. 승가는 21세기 새 형태를 실험하고 있다. 기억하자. 선이 새로 태동할 때, 누구도 그것이 새 불교의 중심이 될 줄 몰랐다. ‘방편’이란 시대와 환경을 고려하고, 중생들의 지적 도덕적 수준을 고려하며, 삶에 진정 필요한 지침과 조언을 주는 것을 말한다. 지금 불교는 이제까지 그래 왔듯이, 새로운 동력으로 새 형태를 만들어 갈 것이다.

 

▲한형조 교수

지난해는 금전과 음락의 폭로가 유독 많았던 해였다. 가려진 일들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그렇지만 너무 비관할 것은 아니지 싶다. 규모가 커지고, 사람이 몰리면 드러나는 ‘인간세’의 풍경들일 뿐, 거기에 너무 ‘절망’할 필요는 없으니…. 삶의 실상은 신문의 사건 사고들에 있지 않다. 여전히 밥솥에는 김이 뜨겁고, 굴뚝에는 연기가 오른다. “如來滅後, 後五百歲, 有持戒修福者, 於此章句, 能生信心, 以此爲實.” 그렇게 ‘후오백세’의 굳은 아스팔트 사이를 뚫고 풀잎처럼 창공을 밀어올리는 새싹들이 자라고 있다.

 

한형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idion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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