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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보시와 인욕

기자명 법보신문

선행 의심하는 말들 참아내야 공덕 쌓여

이타적 행위인 보시는
한 생에서 다음 생으로
이어가면서 과보 받아
질투 참는 인욕도 필요


‘화엄경’ 정행품 다섯번째 경문을 보자.


“어떻게 하면 물러나지 않는 몸과 말과 생각의 행위를 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반야바라밀, 자·비·희·사가 원만해질 수 있는가?”


청량국사는 “수행을 해 나가면서 물러나지 않기 때문에 보살행을 원만하게 만족시킨다”고 말했다. ‘만족시킨다’는 말은 여러 단계가 있다. 6바라밀과 사무량심을 원만하게 한다는 것은 최소한 10신위를, 최고로는 등각위를 성취해야 한다는 뜻이다. 10신이 원만히 성취되면 이것을 바탕으로 한 걸음 나아가서 발심을 하게 되니 신성취발심이라 한다. 신불퇴라고도 하니, 즉 신심에서 물러나지 않는 단계에 들어가는 것이다. 10주위 가운데 첫 번째인 초발심주가 된다. 초발심주부터가 진정한 대승 보살의 수행이 시작된다. 보시라는 베푸는 행위를 하면 복된 과보를 받는다.

 

재물을 보시하면 그 과보로 재물 복의 과보를 받는다. 법을 보시하면 총명지혜의 과보를 받는다. 두려움을 없애는 무외보시를 하면 건강 장수의 과보를 받는다. 그러나 이런 과보를 받는다고 삼계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삼계안에서 윤회를 하면서 복을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행이라 부르는 단계는 아니다. 보시를 수행으로 하려면 목표를 복된 과보를 받는데 두지 않는다. 몸과 말과 생각 안에 있는 탐욕을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탐욕을 제거하는 방법에는 소극적인 행위와 적극적인 행위가 있다. 소극적인 행위는 탐욕을 억제하며 제거하는 것이다. 적극적인 행위는 보시라는 베푸는 행위를 실천하며 탐욕을 제거하는 것이다. 보시를 실천하면서 탐욕이 잘 제거되고 있는가를 살핀다. 이렇게 보시바라밀을 완성해 가는 과정이 공덕을 쌓는 과정이다. 탐욕이 완전하게 제거된 상태에 도달하였다면 보시바라밀을 완성한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복덕을 목표로 하지 않았지만 얻어지는 복덕은 훨씬 많아진다. 공덕이 생겨나는 자리에는 복덕이 늘 따르지만 복덕이 있는 곳에 공덕이 항상 따르는 것은 아니다.


보시의 실천은 이타적인 행위다. 보시라는 이타적인 행위는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이지 자신을 위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가는 이타적인 사람이 한 생에서 다음 생으로 이어가면서 복을 받는다. 과거에는 선한 사람이 선한 행위를 하는 데 비교적 쉬웠다. 과거의 사람들은 사람에 대해 그 인품과 행위를 있는 그대로 믿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서 이타적 행위를 실천하는 사람은 존경만 받게 될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현대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의 사람들은 시기심과 의심이 많다. 다른 사람이 훌륭한 행동을 하면 그 진의를 의심한다.


선한 행위는 그 이면에 다른 이기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자신과 다르지도 않으면서 위선적인 행위를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순수하게 선한 사람의 순수하게 선한 행위는 없다고 단정한다. 세상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향해 시기심을 일으킨다. 선한 행위를 하는 사람을 시기하면서 그를 방해하고 파괴한다. 이와 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많은 현대의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 물질 환경은 발달하였으나 인간관계의 환경은 반대로 악화되고 있다. 점점 더 지옥에 가까워지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고 인과응보의 원리가 우리를 떠나가거나 우리가 인과응보의 원리를 떠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과 같이 어려운 여건에서 쌓는 복덕과 공덕은 과거의 환경에서 쌓는 것보다 그 과보가 훨씬 크다. 어려운 환경에서는 더 많은 노력으로 더 큰 성취를 이루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독송하는 경전 가운데 하나가 ‘금강경’이다. ‘금강경’에서 수행방법으로 여러 가지를 말하고 있지만 그중 보시바라밀과 인욕바라밀을 가장 많이 언급하고 있다. 인욕이란 인내하는 것을 말한다. 억울하고 말도 안 되는 치욕적인 상황조차 평온하게 인내하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보다 쉬운 상황은 말할 것도 없이 인내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진심으로 선한 행동 선한 말을 할 때 많은 문제를 만날 수 있다. 사람들이 찾아와서 “나는 당신을 믿을 수 없다. 의심스럽다. 의도가 무엇이냐. 얼마나 언제까지 하나 두고 보겠다”라고 말할 때가 있다. 그 소리를 듣고서 인내하지 못하고 화를 낸다면 그동안 닦은 우리의 공덕이 사라진다. 복덕은 남지만 수행공덕은 사라지는 것이다.

 

▲도암 스님

그렇다면 수행이 없는 것이고 삼계를 벗어날 기약도 없게 된다. 우리는 보시를 통하여 복덕과 수행공덕을 닦고, 인욕을 통하여 그 공덕을 보호 유지한다. 평온한 인내심이 있어야 수행의 공덕도 보호 유지할 수 있다. 이타적이고 안정된 인내심은 사물과 인간을 보다 깊게 이해하고 포용하는 넓은 가슴과 지혜를 만든다. 현대의 우리에게는 넓은 가슴과 지혜가 더욱 필요하다.

 

송광사 강주 도암 스님 doam199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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