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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 법주사 주지 현조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좋은 도반과 소통·정진하면 ‘힐링 백신’은 자연스레 생성

중고교 때 ‘죽음’에 천착
쇼펜하우어-사르트르 철학
탐독했지만 얻은 건 ‘허무’


‘사랑을 일부러 만들지 말라’
‘파격’적 일구에 출가 결심


휴지 두장 쓰다 은사에 ‘혼쭐’
주지실 보일러도 함부로 안 써
‘간장 한 방울도 시주인의 피’


수행-교육-포교-복지에 전념
노 스님 기거 수행관 건립 원력

 

 

▲현조 스님

 

 

지난 해 부터 화제를 모았던 셀리 케이건 교수의 책 ‘죽음이란 무엇인가’는 올해 들어서서도 회자되고 있다. 인간 내면에 잠재돼 있는 공포, ‘죽음’. 언젠가는 스스로 풀어야 할 화두임에 틀림없지만 우리는 죽음에 직면하기 보다는 외면하려 한다. 그런 우리들에게 셀리 케이건 교수는 용기를 갖고 맞닥트려 보라고 한다. 그래야 삶의 방향도 설정할 수 있을 터이니 말이다. 종교와 심리 해석을 거의 배제한 그의 ‘죽음’을 놓고 대중은 어떻게 가름하고 있을까.


법주사 주지 현조 스님도 ‘죽음’에 직면한 때가 있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별다른 이유도 없이 ‘죽음’에 천착했다. 칸트와 니체의 저서를 펼쳐 보았지만 고도의 형이상학적 언어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철인들이 펼쳐 보인 ‘관념’은 아직 논리 체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청년을 더욱 혼란스럽게 할 뿐이었다.


죽음을 알기 전 인생을 알아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작은 깨달음이 있어 고교 진학 후 쇼펜하우어와 사르트르, 톨스토이의 인생론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철인(哲人)들이 내어 보인 바다에서 건져 올린 건 허무였다.


“인간은 ‘삶의 의지’에 지배를 받는다고 쇼펜하우어는 말했습니다. 그가 말한 삶의 의지란 살고자 하는 충동이었고, 그 충동은 결국 식욕이나, 성욕 등 탐욕을 성취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인생의 작동 원리 하나인 ‘의지’가 맹목적인 탐욕을 성취하는 것이라면 인간의 삶 또한 맹목적이라는 거 아닙니까? 충동과 욕구충족의 반복은 고통만 낳을 뿐이니 이 얼마나 허무한 인생입니까. 고등학교 때의 쇼펜하우어는 그렇게 읽혔습니다.”


쇼펜하우어는 ‘맹목적 의지’를 설파하면서도 그로 인해 생기는 고통을 어떻게 극복해 갈 것인가도 말했다. 그는 불교에서 그 실마리를 찾았다. 충동적 의지를 철저히 절제하며 평온을 찾아 해탈에 이르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나 더 있다면 그리스도교에서 찾은 ‘사랑’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 막 사춘기를 벗어나 철학의 숲에 들어 선 청년에게 절제, 금욕, 해탈이라는 개념은 낯설 뿐 이었다.


“인생이란 B(Birth. 탄생)와 D(Death. 죽음) 사이의 C(Choice.선택)라 한 사르트르를 통해 잠시나마 힘을 얻었습니다. 자신의 실존은 자신의 결정에 따른 것이라 하니 결정 즉 ‘선택’만 잘하면 ‘멋진 인생’이 펼쳐질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무엇을 선택하는가? 이 또한 고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선택할 만한 그 무엇조차도 찾지 못했거든요.”


허무의 나락으로 다시 떨어졌을 건 너무도 자명한 일. 그나마 톨스토이 인생론 즉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그에게 많은 사유를 할 수 있게 했다. 톨스토이 자신의 글과 철학, 성현들의 명언을 담은 ‘인생이란 무엇인가’ 속에는 다양하고도 깊은 인생관이 배어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죽음과 인생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었다.


어느 날, 대전 버스정류장에 전시된 책 하나에 눈길이 닿았다. 책 표지에 새겨진 ‘법구경’ 한 구절은 스님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사랑하는 사람 가지지 마라. 미운 사람도 가지지 마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서 괴롭고, 미운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 그러니 사랑을 일부러 만들지 마라. 마음이 미움의 근원이 되기 쉽다.’


선뜻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그 동안 사유해 온 죽음과 법구경 속 사랑에 어떤 연관관계가 있단 말인가.


“미움을 동반한 사랑이라도 아름다운 것이라 생각했던 저에게 ‘사랑을 일부러 만들지 마라’는 일언은 파격이었습니다. 사랑으로 인해 ‘마음이 미움의 근원’이 될 수 있다는 건 마음만 잘 쓰면 행복해질 수도 있다는 뜻으로 풀이됐습니다. 여기에 답이 있을 것이다. 죽음의 공포, 삶의 행복이라는 감정이나 인식도 어쩌면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마음 하나만 꿰뚫는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란 확신이 섰다. 더 이상 속가에 머무를 이유가 없었다.


사문의 길에 들어 선 현조 스님은 은사 혜정 스님의 승낙을 받아 동국대에 입학했다. 제자의 동국대 진학을 만류할 리 없었을 혜정 스님이었다.


만공 스님으로부터 법을 이어받은 금오 스님은 제자들에게 한결 같게 일렀다. ‘참선해라.’ 첫 제자 월산 스님에게도 그러했고, 월남, 월두(혜정), 월천 스님에게도 그러했다. 그렇다 해도 엇박자(?) 내는 제자 한 명은 꼭 있는 법. 몇 해 전 입적에 든 법주사 회주 혜정(월두) 스님이 그러했다.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했던 혜정 스님은 추상같았던 금오 스님의 일언에도 남몰래 경전을 탐독했다고 한다. 은사의 뜻을 헤아려 참선에 매진한 건 출가하고도 한참 후의 일. 법주사 주지를 맡았던 1970년대 중반 당시 혜정 스님은 여느 사찰은 시도조차 해 보지 못한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경전을 비롯한 불교사와 교리는 물론,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영어, 심지어 심리학과 논리학, 비교종교학 등의 교과도 개설했다. 선교, 내외전의 겸비를 추구했던 혜정 스님이었다. 현대 강원도 참고해 볼만한 프로그램이다.


현조 스님은 혜정 스님을 ‘자상하고 너그러운 선지식’이라 회상했다. 하지만 늘 그랬던 건 아니다. 어느 날, 현조 스님은 스승을 모시고 재가불자들과 함께 세간의 한 식당에서 공양을 하게 됐다. 작은 음식물이 식탁에 떨어져 있어 삼각으로 접힌 휴지로 치웠다. 정말이지 무심코 한 일이었다. 이 때, 은사 혜정 스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왜 두 장씩이나 쓰나! 한 장만 쓰지.”


순간 모두가 침묵했다. 고요함이 밀려왔다. 부끄러웠다.


“절에 돌아와 생각하니 엄청 억울한 겁니다. 휴지 한 장 더 썼다고 그런 면박을 주신 단 말입니까? 나중에 조용히 불러 혼을 내도 될 일 아닙니까. 눈물 나 잠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큰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법주사 철확은 한때 3000여명의 대중이 법주사에 운집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위) 법주사 진영각은 법주사를 중수케 한 진표, 산문을 연 의신, 전란에 황폐해진 법주사를 중창한 벽암 선사 등 30명의 대화상이 ‘말없는 법문’을 펴고 있다.

 


소박한 삶이 몸에 배인 건 그 때부터라 한다. 법주사 주지를 맡은 현조 스님이지만 승용차는 주지 취임 전부터 갖고 있던 ‘쌍용 카이런’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한 겨울이라 해도 주지실 보일러는 가능한 한 사용하지 않고, 사람 만날 일 있으면 종무소로 내려간다. ‘간장 한 방울도 시주인의 피 한 방울’이라 강조했던 은사 스님의 뜻을 올곧이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법주사는 한 때 3000여명이 운집했던 산사다. 진영각에 모셔진 역대 선지식만 보아도 법주사의 위상을 짐작케 한다. 높이 120㎝, 지름 270㎝의 철확(무쇠 솥), 높이 22m의 당간지주 또한 법주사의 위세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법주사라 해서 고민이 없는 게 아니다. 법주사를 찾는 대중이 연간 150만에 이른다는 말은 옛말이다. 현재는 40만 정도다. 절 살림이 빠듯할 수밖에 없다. 그 뿐인가. 선원과 강원은 물론 지역 포교에도 만전을 기해야 한다. 이 모든 짐을 지어야 하는 사람은 주지 현조 스님이다.


“전임 주지 스님들과 대중들의 노고로 경내 불사는 거의 이뤘습니다. 이제는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에 눈을 돌릴 때라 봅니다. 수행, 포교, 교육, 복지 4대 불사에 전념하려 합니다.”


거창한 것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기존의 건물을 현대인들의 정서에 맞게 재설정 하는 것부터 시작하려 한다. 일례로 총지선원의 방사를 리모델링 할 참이다. 한 방에 두 세 명의 선객이 머물러야 하는 구조를 바꿔, 한 명의 선객이 방 하나를 쓸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선객을 위한 강의 프로그램도 염두에 두고 있다. 나아가 ‘선(禪)’ 전문대학원 과정의 ‘선학원’ 개설도 준비 중이다.


“선방에서 화두 들던 스님들이 승가대학 교과 강의도 들으려는 추세입니다. 강원에서 공부한 스님이 선방에 드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따라서 승가대학 교과과정 개편 문제도 한 번 짚어봐야 합니다. 대학원 과정의 ‘선학원’을 개설해 한국 선사상을 좀 더 단단하게 구축해 볼 계획입니다. 물론 선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실참입니다. 하지만 그에 따른 이론도 뒷받침 되어야 자신의 수행력을 더욱 증진시킬 수 있을 겁니다. 나아가 후학(출재가)을 지도하는 데 큰 힘이 되리라 봅니다. 조사어록만 갖고 선을 대중화시킨다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현조 스님은 무엇보다 스님들의 노후 문제를 어떻게 풀지 고심하고 있다.


“한 평생을 나름대로 중생제도에 힘썼지만 노후가 되면 막상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스님들이 계십니다. 정말 집도 절도 없으면 막막합니다. 공부하다 입적에 드시겠다는 스님들의 바람을 들어 주어야 할 때입니다.”


법주사 주지를 맡자마자 현조 스님은 ‘예경국’을 두었다. 예경국장 스님 한 분이 전담해 산내 어른 스님들의 건강과 근황을 일일이 체크하고 있다. 솔직히, 처음 이 소식을 접했을 때는 ‘대중화합’을 위한 방편일 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게 확연해졌다. 일평생 한 길만 걸은 어른 스님들에 대한 존경의 표현이다. 수행관 건립 원력과 맥을 같이 하는 마음 한 자락이다.


현조 스님은 ‘숲 속 힐링’ 법회도 직접 진행하고 있다. “아픔 없는 시대는 없었습니다. 다만, 그 아픔을 어떻게 치유했는가입니다. 성인과 철학인들은 그 아픔을 통찰하며 나름대로의 해법을 내놓았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가 겪고 있는 아픔은 어떤 아픔인가, 그 치료책은 무엇인지를 함께 고민해 가야 합니다. 제가 대중을 치료해 보겠다는 생각은 한 적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할 수 있는 게 하나 있습니다. 도반과 도반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 새 자신의 몸에서 아픔을 치료할 수 있는 백신이 생성된다는 겁니다. 더욱이 우리에게는 이미 ‘엄청난 도반’이 계시지 않습니까.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라’ 하셨던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대가 지혜롭고 성실하고 예의 바르고 현명한 동반자를 얻었다면 어떠한 난관도 극복하리니, 기쁜 마음으로 생각을 가다듬고 그와 함께 가라.’ 치유는 여기서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조 스님도 기꺼이 대중의 도반이 되겠다는 뜻이리라. 그 대중이 현조 스님의 도반임은 두 말할 나위 없다.


궁금했다. 현조 스님은 죽음을 해결했을까?


“천상병 시인은 ‘귀천’을 통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삶과 죽음을 경계 짓지 않은 시인의 담대함이 너무도 크게 다가옵니다. 옛 선지식 분들도 누누이 일렀습니다. ‘죽음이란 옷 한 번 바꿔 입는 것일 뿐이다.’ 삶과 죽음에 대한 집착을 완전히 떨친 일언입니다. 저는 좀 더 공부해야 한마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죽음이란 삶의 연속’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저의 관심사는 지금, 이 순간입니다.”


생존을 위한 집착도, 생존을 끊어버리려는 집착도 없는 자유인은 죽음을 놓고도 ‘헌 옷 벗고 새 옷 입는 것’이라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당당함은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닐 것이다. 부단한 정진만이 담보할 뿐이다. 현조 스님의 일언처럼 도반과 함께 정진한다면 힐링을 넘어 동산 양개 선사처럼 ‘삶은 일(事)이고, 죽음은 휴(休)’라는 한마디 던질 수 있을 것이다. 

 

채한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현조 스님

법주사에서 혜정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86년 자운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95년 일타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조계종 제14대, 15대 중앙종회 의원과 국제선센터 초대 주지를 역임했다. 현재 법주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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