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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정신 상징, 스테판 에셀의 타계

기자명 법보신문

온화하고 유쾌했던 佛 지성인
평생 인권·환경운동에 매진
분노는 저항정신의 다른 표현
희망의 미래 위한 ‘참여’ 역설


세계 저항정신의 상징 스테판 에셀이 2월26일 향년 96세로 세상을 떠났다. 단 34쪽에 불과한 ‘분노하라’라는 소책자로 ‘분노 신드롬’을 일으켰던 프랑스 지성인. 그는 평생 분노 속에 살았지만 온화하고 유쾌했으며 끝까지 자비로웠다. 유태인인 그는 2차 세계대전, 프랑스를 점령한 나치독일에 저항한 레지스탕스였다. 망명정부에서 활동하다 나치경찰에 체포돼 유대인 강제 수용소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두 번의 탈출 시도 끝에 살아났다.


“이렇게 삶을 되찾았으니, 이젠 그 삶을 걸고 참여해야 했다.” 극적으로 살아 난 뒤 그는 회고록에 이렇게 썼다. 해방 이후 프랑스에서 유엔 주재 프랑스 대사, 유엔 인권위원회 프랑스 대표 등 외교관의 길을 걸었지만 관심은 인권이었다. 회고록에서 밝힌 ‘참여’는 인권을 신장시키고 불의에 맞서는 일이었던 것이다. 퇴직 후에도 인권과 환경운동에 참여하는 일관된 삶을 보냈다. ‘분노하라’는 이런 그의 삶을 관통했던 저항정신의 핵심을 담고 있다. “분노할 일을 넘겨버리지 말라. 찾아서 분노하고 참여하라. 반죽을 부풀리는 누룩이 돼라. 어느 누구라도 인간의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거든, 부디 그의 편을 들어주고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라.”


그는 인권과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현 상황을 크게 우려했다. 세계 곳곳에서 불법체류자를 차별하고 이민자를 의심하고 국민들의 최소한 삶을 보장하는 퇴직연금제도와 사회보장제도를 축소하고 있다. 산업과 기술의 발달로 부는 끊임없이 확장됐는데 보통 사람들의 생존은 벼랑 끝에 몰리고 있다. 특히 그는 부자들에게 장악된 언론매체에 의해 불의와 불평등이 당연한 것처럼 포장되고 강요되고 있음에 분노했다.


그러나 그의 분노는 철저히 비폭력에 바탕을 두고 있다. 달라이라마와 간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가르침과 맞닿아 있다. 지키려는 가치에 대한 물러서지 않는 단호함과 평화로운 투쟁, 이것이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이다. 무종교인이기도 한 그의 사상은 많은 면에서 불교와 다르지 않다. 2011년 달라이라마의 대화에서 그는 분노의 근원을 ‘연민심’이라고 했다. 부디 남이 잘 됐으면 하는 배려의 마음이 분노의 원동력이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정의롭지 못한 일에 분노할 줄 알되 비폭력의 심지를 곧게 세우고 참여하여 현재와 미래를 창조하라고 역설했다. 그는 분노 신드롬을 일으켰지만 평온하고 행복했다. 자면서 맞이한 죽음 또한 평화로웠다. 그는 불의에 맞서고 행동하는 것이 인간의 구성요소라고 밝혔다. 분노하고 참여하는 그 과정이 참된 삶이며 또한 희망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믿었다. 특히 무관심이 사회정의와 인류의 밝은 미래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라고 역설했다.


역사의 강물을 정의로 돌리려 했던 한 지성인의 죽음은 많은 것을 돌아보게 한다. 일제에 부역했던 사람들이 득세하고 금권에 장악된 언론들. 노동자는 삶의 벼랑 끝에 몰리고 있는데 재벌가는 형제들끼리 수조원의 재산을 놓고 아귀다툼을 벌이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분노하지 않고 있다. 그럼으로 우리의 미래는 암울하다.

 

▲김형규 부장

“창조, 그것은 저항이며 저항, 그것은 창조다.”


자비심으로 마음을 채우고 비폭력으로 불의에 맞서 싸웠던 한 지식인의 죽음, 그 죽음이 무기력한 이 사회에 던지는 화두가 수미산처럼 무겁다.

 

김형규  kimh@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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