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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행복시대’의 세금

기자명 법보신문

올해 우리나라 예산은 얼마인가? 강연을 다닐 때 청중에게 종종 묻는 질문이다. 뜻밖에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어디에 쓰는가는 더 말할 나위 없다. 대학 강단에서도 관련된 주제가 나오면 학생들에게 툭 물어본다. 마찬가지다.


왜 그럴까? 대다수가 세금은 당연히 내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지니고 있다. 딴은 그럴 만도 하다. 세금 납부 기한이 지나면 연체료가 불어가지 않던가. 게다가 탈세를 하면 감옥행이다. 물론, 대기업 회장들은 탈세를 하고도 버젓이 화장걸음 걷고 있지만, 어쨌든 평범한 사람들의 탈세는 철창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중세 왕조 시대에서 시민혁명을 경험한 국가의 구성원들에게 세금은 당연히 내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흔히 국민에게 납세의 의무만 강조하지만, 그 의무만 강조할 때, 자칫 중세 시대의 신민 꼴 되기 십상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세금은 무엇보다 국민 동의를 얻어야 한다. ‘대표 없이 세금 없다(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는 저 유명한 역사적 금언을 떠올려볼 일이다. 그 말은 보수주의자들이 사뭇 신성시하는 미국이 건국될 때 기본 정신이었다. 영국이 식민지 아메리카에 멋대로 세금을 부과하면서 비로소 독립전쟁의 불길이 타올랐다.


20세기 들어서면서 ‘대표 없이 세금 없다’는 금언은 더 진전되었다. 국민이 낸 세금을 마땅히 국민 행복을 위해 써야 한다는 정신이 그것이다. 세금 또는 조세의 사전적 뜻을 짚어보면 그 의미가 명료해진다. ‘국가를 유지하고 국민 생활의 발전을 위해 국민들의 소득 일부분을 국가에 납부하는 돈’이 세금이다. 이른바 ‘선진국’으로 갈수록 정부 예산 가운데 복지예산의 비율이 높은 까닭이 여기 있다.


세금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야 할 이유도 바로 여기 있다. 마침 새로 출범한 ‘박근혜 정부’가 ‘국민 행복시대’를 약속하고 나섰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시절 공약한 ‘경제 민주화’보다 ‘경제 부흥’을 강조하고 나섰다. 경제부총리와 경제 수석의 인선을 보면,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와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까 회의적이다.


국민 행복시대와 세금은 어떤 관계에 있을까? 먼저 문제의 핵심은 세금을 늘리느냐, 줄이느냐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누구에게 세금을 받아서 누구를 위해 쓰느냐가 관건이다. 따라서 감세가 무조건 좋은 게 결코 아니다. 이명박 정부에서 경험했듯이 부자들이 내는 세금이 줄여들 때 결국 국민 생활의 발전을 위해 국가가 써야 할 돈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세계 경제가 침체 국면에 접어들면서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미국 정부까지 소득수준이 높은 사람들에게 이미 증세를 했거나 추진하고 있다.


그럼에도 어떤가. 박근혜 정부는 물론 여론시장을 독과점한 신문과 방송들은 누구에게 세금을 더 거둬 누구에게 어떻게 써야 할지에 대해 차분한 논의를 가로막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대다수가 예산의 절반을 복지에 쓰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인데도 30%도 채 안 되는 꼴찌 규모의 올해 복지예산을 놓고 ‘포퓰리즘’을 들먹이며 장단 맞춘다. 명토박아둔다. 이는 국민을 어리보기로 여기지않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손석춘
불교는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현실을 새롭게 보는 눈을 길러준다. 교계신문들도 불자들에게 시대정신인 복지와 경제민주화에 대한 고정관념을 벗어나도록 폭넓게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그래서다. 독자에 대한 예의는 아니지만 답을 드리지 않고 질문으로 맺는다. 올해 우리나라 예산은 얼마인가? 

 

손석춘 건국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2020gi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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