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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티베트 본교 - 상

기자명 법보신문

주술사들, 능력 앞세워 정치 세력 형성

자연에 대한 민중의 공포
재앙 막는 주술로 달래며 
본교 巫師들이 특권 점유  
영혼공동체의 핵심 형성

 

 

▲광범위한 군중 기반을 구축하고 있던 본교는 티베트불교 형성 초반에도 대체 불가능한 운명공동체의 중심이 있었다. 사진은 중국 청해성에 위치한 옥수티베트 자치주 본교사원.

 


생명체는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다. 인간에게도 가장 두렵고 무서운 대상이 바로 ‘죽음’이다. 그러나 인간은 언제부터인가 동물과 달리 생물학적 죽음이라는 단계를 뛰어넘어 또 다른 문화적인 해석을 갖게 되었다. 살아 숨 쉬는 육체 외에 보이지 않고 알 수도 없으나 이 모든 것을 초월할 수 있는 존재인 ‘영혼’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러자 인생은 종착역이 아니라 새로운 전환이요, 새로운 자리바꿈이 되어 버렸다. 여기에서 종교의 싹이 트이게 되고 이들을 보내고 맞이하는 제례와 의식이 형성됐다. 고대 티베트사회에서 이런 생명사상과 가치관의 역동적 기능을 하고 있던 샤머니즘이 있었는데 바로 본교(本敎, Bon)다.


티베트불교가 흥성하기 이전까지 본교는 티베트 사회에서 대체 불가능한 사회적, 종교적 기능을 맡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본교는 인도에서 불교가 들어오기 이전까지 티베트의 ‘토착종교’성격을 지녔다. 당시 본교는 샤머니즘(巫)의 내용과 색깔을 가지고 있었다.


티베트 초기사회에서 본교가 흡인력을 가지고 영혼공동체의 핵심 기능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바로 자연을 숭배하고 사랑했기 때문이다. 본교의 숭배대상은 하늘, 땅, 눈 덮인 산, 별, 해와 같은 자연물이다.

 

따라서 본교는 하늘을 삼계(三界)의 가장 상층에 해당되는 최상층의 세계로서 신과 영혼이 사는 곳이라 생각했고, 해와 달, 별은 광명의 신으로 받들어 모셨다. 본교는 산천과 호수를 숭배하였다. 티베트 고원은 설산이 우뚝 솟아 있고, 때로는 눈사태나 진흙과 바위 등이 굴러내려 재난이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따라서 티베트인들은 설산에 대한 경외와 숭배가 본능적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호수는 신령이 드러나는 곳이라 인식하였다. 예를 들어 오늘날에도 티베트의 한 신성한 호수(남초 호수)는 신호(神湖)라고 받들어진다. 그래서인지 고대 티베트의 법왕들은 국가에 중요한 일을 결정하기 전에는 먼저 무사(巫師)를 이 호수에 보내어 성영(聖影)을 보고 길흉을 점쳤다고 한다. 이러한 의식은 훗날 달라이 라마를 선정할 때도 유효하게 적용되었다. 즉 지정된 몇 명의 고승들이 이 호수에 와서 성영을 보고 전세(轉世)된 영동(靈童)의 얼굴을 미리 확인하였던 것이다.


본교는 하늘과 땅, 해, 달, 별 등의 자연물을 숭배하는 자연종교에서 8세기 이후 불교의 영향을 받아 철학적 이론이 풍부한 경문, 체계화된 의식을 갖춘 종교로 발전되었다. 따라서 본교는 크게 3단계의 발전과정을 거치는데 다음과 같다. (1)독본(篤本)시기 (2)가본(伽本)시기 (3)각본(覺本)시기이다. 이를 티베트 역사에서는 다시 (1)과 (2)를 합쳐서 흑본(黑本)이라 하고 (3)을 백본(白本)이라고도 한다. 백본은 ‘옹중(雍仲)본교’라고도 일컫는다. 독본 시기의 특징은 본교가 원시적인 무술(巫術)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본사(本師)라는 인물이 이미 직업인으로서 군림하고 있었고 부자(父子) 또는 숙질(叔姪)이 서로 계승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가본(伽本)시기는 본교가 가장 발전하고 변혁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는 본격적으로 악귀를 내쫓는 종교 활동이 진행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특히 가본의 무사들은 무술, 점보기, 의약, 점성술, 장례의식에 정통한 능력자들이 많았다. 각본 시기는 대략 7세기 중엽에 해당되며 티베트불교의 전홍기(前弘期)와 후홍기(後弘期)의 전체과정을 포괄한다. 이 시기의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어느 날, 푸른 치마를 입은 어떤 대학자가 본교의 경전을 땅속에 묻어두었다가 일단의 시간이 지난 뒤에 자기가 발굴하여 새로이 해석을 하고, 종교예식에 관한 조문도 첨가하여 교파를 창시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엉성한(?) 교파의 창립으로 인해 본교는 정식으로 스스로의 이론적인 경전을 가지게 되었다. 본교는 훗날, 8~9세기 불교의 이론공세에 맞서기 위하여 불교 중 많은 내용을 흡수하여 자기(본교)의 이론체계를 강화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본교도들은 엉뚱한(?) 일을 저지르기도 했다. 즉 불경을 훔쳐 직접 번역하는 일을 한 것이다. 하지만 맹목적으로 기계적인 직역을 한 것이 아니라, 번역과정에서 본교 원래의 종교의식과 이론적 내용을 잘 섞어 넣었다.


티베트 초기사회에서 본교가 득세하고 본교의 수장이 민중들의 절대적 신뢰를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가 추측하기에는 처음에는 단순한 ‘공포심’ 때문이었다. 삭막하고 매정하게 보이는 자연, 그리고 고원의 바람, 이유를 알 수 없는 천둥과 번개 그러한 환경 속에서 티베트인들은 공포와 죽음이라는 현실을 맞이해야 했고 본능적으로 동굴을 찾아 혹은 비바람을 피하게 해줄 그 무엇인가를 찾게 되었을 것이다. 이때 이들에게 인간적인 신(神) 혹은 능력자가 멋지게 등장한 것이다. 바로 본교의 수장이다. 티베트인들이 그를 숭배하고 흠모하게 된 이유는 그가 가진 막강한 주술력(呪術力)때문이었다. 주술은 현실생활 속에서 재앙을 물리치고 행복을 불러들이는 어떤 영특한 능력을 가진 자에게 의탁하는 데에서 이루어진다. 이 특수한 능력을 가진 자가 바로 본교의 수장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능력을 가진 인간신은 훗날, 달라이 라마와 같은 활불(活佛)로 이어진다. 고대나 지금이나 티베트라는 원시적인 공간은 종교와 정치를 양손에 쥐고 있는 능력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티베트사회를 유지하고자 했던 능력자들은 이 점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티베트는 이러한 특수한 능력을 가진 인간신이 존재해야만 유지되고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특수한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티베트불교는 주술성이 매우 강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밀교(密敎)에서 그 뚜렷한 색깔을 드러낸다. 그런데 이 밀교의 성격은 인도에서 유입된 인도불교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토착종교인 본교(Bon, 本)와 습합하면서 생긴 토착적인 풍토와 관계가 깊다.


티베트에서 밧줄이 지니는 의례적, 신화적 기능은 상당히 많은 전승, 특히 불교 이전의 전승에 남아있다. 초대 티베트 왕인 네치찬보(Gna-kti-bstan-po)는 ‘무탁’(dmu-tag)이라는 밧줄을 타고 내려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 신화적인 밧줄그림은 왕릉에도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왕이 사후에 다시 밧줄을 타고 천상으로 올라갔음을 의미한다. 당시 왕에게 지상계와 천상계는 단절된 것이 아니었다. 티베트인의 신앙에 따르면, 고대의 통치자(법왕)는 죽는 것이 아니고 천상으로 올라간 데 지나지 않는다고 인식했다. 오늘날에도 본교의 종교의례에서는 주술력을 가진 능력자는 사다리나 밧줄을 타고 천상의 세계에 갈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사다리나 밧줄을 자유자재로 구사해서 천상의 세계로 갈 수 있는 자들은 한정되어 있었다. 대표적으로 본교의 무사(巫師)가 그러하고 고승(라마)이 여기에 해당된다. 따라서 초기 티베트사회에서 주술사[magician=무사]는 주술적 능력에서 파생한 정치적 사회적 특권을 점유했고 이것으로 인하여 정치 지도자와의 특별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다. (계속)


심혁주 한림대 연구교수 tibet0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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