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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 백송 운명

기자명 법보신문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1호는 ‘대구 도동 측백나무 숲’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꽤 있겠지만 10호까지 헤아려 본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정보 홍수 시대 속에 생물, 사적, 지리 등의 관련 종사인이 아닌 이상 이 분야의 기념물을 차례로 볼 이유가 별달리 없을 터이니 말이다. 그래도 한번쯤 들여 다 본 사람은 다소 의외의 사실 하나를 발견했을 것이다. 10호까지의 천연기념물 중 2호 ‘합천 백조 도래지’를 제외하면 모두 ‘나무’와 관련 있다. 놀라운 건 10개 중 6개가 모두 ‘백송’이라는 사실이다. 어릴 때는 껍질이 푸르스름한 빛을 보이다가 나이 들면 겉 껍질이 벗겨지며 흰빛을 띠기에 ‘백골송(白骨松)’이라 불리는 그 백송(白松)이다.


중국이 원산지인 탓인지 이 백송은 우리 환경에 참으로 민감하다. 확보된 공간이 다소 좁거나 흙이 바뀌어도 ‘금세’ 명을 달리한다. ‘백송’지킨답시고 함부로 손을 대 고사한 천연기념물도 있는 걸 보면 백송의 삶이 그리 녹록해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6그루의 천연기념물 백송 중 단 두 그루를 제외한 4개의 백송은 모두 지정 해제됐거나 재지정되지 못했다. 고사했거나 보존가치가 상실됐기 때문이다.


6그루의 천연기념물 백송이 모두 서울에 있었다는 것도 흥미롭다. 중국을 왕래한 사신들이 자신들의 거주 지역에 주로 심었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조선당시에도 이 나무는 귀했으니 ‘영화’를 누렸을 것만 같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대 도심 속 오염농도에 쉽게 노출된 통의동, 내자동, 원효로, 회현동 백송은 이미 고사했거나 제 삶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남아있는 두 그루는 어디에 있을까. 한 그루는 헌법재판소 앞에 ‘서울 재동 백송(8호)’ 이름으로 당당하게 서 있다. 또 한그루는? 제9호인 ‘서울 수송동 백송’은 바로 조계사 대웅전 동편, 회화나무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다. 조계사를 자주 참배한 불자라면 한 번쯤 눈여겨보았을 ‘백송’은 대략 500살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이 백송도 이미 수술 받은 흔적이 역력하다. 한쪽 가지가 완전히 잘렸다. 오로지 대웅전 부처님을 향해 ‘절’을 올리고 있는 한 쪽의 가지만 살아 있다. 이 백송이 오래도록 남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불자 뿐만은 아닐 것이다. 천연기념물 아닌가. 하지만 다른 백송의 운명을 지켜보고 있듯, 이 백송 또한 시들해지면 가치를 상실해 언제라도 지정 해제 될 수 있다.


그러기에, 청정도량을 거닐면서도 늘 아쉬운 점이 하나 있었다. 주차 공간 확보 필요성을 익히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백송 바로 옆에까지 승용차를 주차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과해 보인다. 환경에 민감한 백송이 지금처럼 매일 승용차 매연을 맡게 되면 향후 몇 년이나 버틸지 걱정스럽다. 혹자는 ‘조계사 옆 대로 옆을 지나는 차량 매연이 더 심각한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다. 생태환경에 전문 지식이 없는 필자로서는 어떤 게 더 백송에 치명적인지 판단키 어려우니 그 반문을 쉽게 반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부처님 법을 가슴에 담고 있는 불자라면 자비심은 아니어도 배려심은 내어야 하지 않는가. 따라서 필자는 ‘백송 옆 승용차 주차 절대 불가’라는 경고 팻말이라도 당장 세워놓고 싶다. 흔한 말로 ‘천연기념물’ 아닌가.

다행스럽게도 희소식이 들려왔다. 조계사 주지 도문 스님이 ‘승용차 없는 청정 도심산사’ 원력을 세웠다고 한다. ‘치명성’ 운운도 한 방에 날릴 수 있는 ‘일할’이 아닐 수 없다. 조계사 사부대중이 논의 해 최종 결정할 일이니 왈가왈부 할 건 아니다. 다만, 논의 수면선상에 ‘백송’의 운명도 올려주기 바라는 마음만은 간절하다.

▲채한기 상임 논설위원

부처님께 ‘절’ 올리는 백송이 이젠 ‘기도’하는 백송으로 보인다. 그만큼 절박하다.

 

채한기 상임 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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