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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관계의 중도

기자명 법보신문
  • 법보시론
  • 입력 2013.04.01 14:55
  • 수정 2013.04.01 15:03
  • 댓글 0

노사관계. 조계종이 노동위원회를 만들 정도로 우리 사회에 큰 의제로 떠올랐다. 노사 사이에 섣불리 ‘조화’를 들먹일 때 자칫 윤똑똑이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지금도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과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애면글면 싸우고 있듯이 노와 사의 이해관계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풀어야 할 갈등이 분명히 있는 데도 그 사실을 외면한 채 노동자들의 투쟁 앞에서 ‘화합’만 설교한다면, 결과적으로 사용자 쪽에 서게 된다. 그만큼 노사 사시에 ‘중도’가 어렵다는 뜻이다.


그런데 최근 일본 부총리가 파격적 발언을 했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이 공식 기자회견을 열고 “지금 기업들의 내부 유보금이 두터워진 만큼 노동 분배율을 높이는 것이 렌고(連合)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렌고’는 일본 최대 노동자단체다. 일본의 국가경제정책을 책임진 최고관료가 노동조합 단체에 임금 투쟁에 적극 나서라고 내놓고 ‘선동’한 셈이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 그 말을 한국에 대입해볼 일이다. 박근혜 정부의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기자들과 회견을 열고 “올해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것이 민주노총이 할 일”이라고 강조하는 풍경이 그것이다.

만일 현 부총리가 기자들 앞에서 그런 말을 했다면, 이 나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대다수 한국의 신문과 방송들이 어떻게 보도할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날 선 공격이 곰비임비 이어지고, ‘포퓰리즘’이라는 말이 신문지면과 방송화면에서 어지럽게 춤추지 않겠는가? “좌파” 또는 “빨갱이”라고 매도하는 사람들로 한바탕 나라 전체가 소용돌이 칠 터다.


그런데 어떤가. 지금 일본 정부를 책임진 아베 신조 정권의 정치적 성격은 다 알다시피 ‘보수’이고 ‘우파’다. 그럼에도 일본 자민당 정부가 노동운동 쪽을 두남두며 지지 발언하는 파격을 놓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오는 7월에 있을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아소 부총리가 노동조합에 던진 ‘추파’라는 분석도 있다. 그가 “자민당이 임금 인상 교섭을 하고 표는 민주당이 갖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 언급했기에 설득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일본 경제의 어려움에서 찾는 게 옳다. 실제 일본 내부에서도 그렇게 보는 견해가 많다. 이미 지난 총선을 통해 아베가 총리로 복귀할 때 ‘아베노믹스(재정지출 확대를 골자로 한 경제 살리기 정책)’을 내걸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베 총리 자신도 한국의 전경련 격인 일본 경단련(經團聯)을 비롯해 경제 3단체장과 만났을 때 “실적이 개선되는 기업은 임금 인상을 적극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일본 기업들이 큰 이익을 내면서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지 않음은 물론, 일자리와 임금도 늘리지 않은 채 현금만 쌓아왔다는 게 아베 정권의 기본 인식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노사관계에서 중도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두루 알다시피 중도는 불교의 고갱이다. 붓다의 깨달음 자체가 극단적 고행을 벗어나는 데서 비롯했다. 모든 집착과 분별을 떠나 실상을 볼 때가 바로 중도다. 결국 이분법의 논리를 넘어 서로 반대되는 것이 하나로 원융하는 실상에 이르는 깨달음이 불교의 고갱이라면, 노사관계를 풀어가는 해법도 그 맥락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손석춘
자, 상상해보자. 정부가 나서서 노동조합에 임금 투쟁에 나설 것을 요구할 때, 그 결과 실제로 임금이 올라가면서 내수시장이 확대되고 국민 경제 전체가 살아날 때, 노동자들의 투쟁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기실 일본의 보수 정부만이 아니다. 세계 경제가 장기침체국면에 접어드는 지금 한국 경제의 살길도 바로 그곳에 있지 않을까? 우리 안에 있는 고정관념을 벗어나 중도를 바라보아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손석춘 건국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2020gi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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