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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티베트 본교 - 하

기자명 법보신문

생노병사부터 국가 전쟁까지 무사 관여

개인·국가의 대소사 모두
무사의 결정·기원에 의지


왕권 옆에서 권력 극대화
상장 의식도 적극 주관해

 

 

▲원시부락과 씨족사회에서는 대부분 씨족의 족장이나 부족의 수령이 무사의 직무, 즉 제사장의 신분을 맡았다. 그들은 신권을 부여받았으며 부족사회의 중요한 안건을 장악하고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인정받았다. 즉 하늘과 통할 수 있고 아래로는 민의를 감지해 길흉화복을 예지하고 악귀를 몰아내며 고약한 질병으로부터 구제할 수 있는 주술을 겸비한 신의 대리인이다. 사진은 중국 사천성 이현 강족마을서 만난 본교도의 마지막 후예.

 

 

티베트 원시종교 속에서 인간의 죽음은 단순한 생명의 종결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모두 영혼을 갖고 있으며 이 영혼은 육신의 죽음에 따라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세상으로 옮겨 간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죽음을 처리하는 상장의식은 매우 중요시되었다. 따라서 원시사회에서 상장의례는 산자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죽은 자의 영혼을 위한 애도의 시간이기도 하다.


티베트 본교는 고대사회에서 출현했지만 나름대로의 교조와 교의 그리고 경전을 가지고 있었다. 센랍미우체(幸繞米沃)라는 신성화된 창시자가 있었으며, 처세와 신앙의 지침인 계율이 있었고 우주관과 생명관이 담보된 철학적 이론(삼계설)이 있었다. 티베트어 경전인 ‘본교원류(本敎源流)’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전해 내려온다. “왕이 국사를 논 할 때, 종종 좌우에 ‘행(幸)’을 대동하고 다녔다. 그런데 ‘행’이 의사표시를 하지 않으면 왕도 결정을 미루었다.” 여기서 말하는 ‘행’은 본교의 창시자를 지칭한다. 따라서 훗날 ‘행’은 본교 무사(巫師)의 대명사가 되었다. 티베트 본교 경전인 ‘새미(塞米)’, ‘광영경(光榮經)’, ‘타퇴(朶堆)’속에는 센랍미우체의 생몰시기, 가정과 생활환경, 종교적 능력 등에 관한 상세한 기록과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티베트 고대사회에서 신 혹은 절대자의 부류에 들어간 대상들은 다음의 특징들을 가지고 있었다. 첫 번째, 합리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두 번째, 인간의 능력으로 조절이 자유로이 되지 않는다. 세 번째, 영생불사한다. 그러나 위의 대상들은 믿어지지 않게도 인간의 간절한 구애와 노력으로 정신적 소통이 가능했다. 고대 티베트 사회에도 이러한 대상들은 존재했으며 이것들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감은 결국 티베트 원시종교 본교의 탄생을 가능케 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해소하고자 영적인 존재에 대한 제사와 숭배의식은 정당하게 필요했다. 이 중심에 무사(巫師)라는 제사장이 존재했다.


티베트 고대 사회의 특징은 전쟁과 제사다. 따라서 본교와 무사는 이 부분에 집중적으로 관여했다. 무사는 당시 티베트인들의 출생, 결혼, 상장, 질병 등에 관한 문제는 기본이고 왕조의 전쟁과 대소사까지도 참여했다. 예를 들어, 고대 토번왕조시기 장왕(藏王)의 상장방식과 처리문제, 그리고 새로운 왕의 직위문제, 전쟁 회맹(會盟)등에 관하여도 그의 참여와 역할은 막중했다. 무사는 나아가 하늘에서 왕의 후손이 내려오기를 기원하는 굿이나, 왕이 내려온 것을 축하하고 왕국의 안녕을 위해 하늘과 땅과 아래에 있는 신들의 도움을 청하는 의식을 주도했다. 옛 왕이 물러간 다음 새 왕을 등극시키는 것도 그의 일이었다. 왕권이 바뀌는 공백 기간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기 위해 죽은 자들의 세계로 가서 자문을 받아 오기도 했다.


이러한 활약상에 힘입어 본교 무사의 권력은 점진적으로 극대화 되었으며 토번왕조 26대까지 지속되었다. 그러다가 7세기 인도불교가 토번에 전파되고 왕실이 불교에 관심을 보이고 힘을 실어주자 본교는 그 세력을 점진적으로 잃어갔다. 오늘날 티베트 경전 속에서는 본교의 명칭, 전승과정, 복식, 법기, 신단, 주술, 점괘 등등의 소개를 찾아 볼 수 있는데 26대 토번 왕까지의 기록을 근거로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티베트 원시부족사회의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는 영웅 서사시 ‘게싸르 대왕전기’에서는 ‘아니(阿尼)’ ‘업목(業木)’ ‘막마(莫瑪)’ 등 고대 본교 무사의 정식명칭을 확인 할 수 있다. 무사는 그 능력과 신분을 유지 혹은 전승하기 위해서 세 가지의 방법을 이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바로 신수(神授)와 세습, 전승이었다. 그러나 이 방법이 순수하게 적용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면 부자지간 그리고 손자에 이르기까지 세습과 전승이 함께 이루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고대 티베트 사회에서 인간의 ‘죽음’은 매우 공포스럽고 이해하기 힘든 현실이었다. 그래서일까 본교는 상장의식을 중요시했고 능동적으로 주관했다. 살펴보면, 원시종교 사회에서는 주로 석관장(石棺葬)이 성행했다. 이는 티베트의 자연 지리조건이 산과 돌이 많은 반면 나무가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이유로 파악된다. 석관장은 일종의 토장(土葬)형식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초창기 이러한 장법은 본교의 개입으로 종교색채가 농후한 인간의 장례의식으로 거듭난다. 예를 들면 관은 석재이고 시체는 남색의 끈으로 둘러싸고 ‘옹중(雍仲, 卍)’형의 위치로 안치한다. 그리고 일련의 본교식의 상장의식을 진행한다. 본교의 장법은 생과 사를 모두 중시하며 사자의 영혼이 안락한 세계로 이동할 수 있도록 교법에 의거해 진행한다. 훗날 본교의 후장(厚葬)은 인간의 영혼관념을 매우 중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형적인 본교도의 상장의식 지침서인 ‘서장본교도적상장의식(西藏本敎徒的喪葬儀式)’에서는 후장의 풍경을 다음과 같이 보여준다. 고대 티베트인들은 죽은 사람이 갈 수 있는 경지가 두 가지가 있다고 믿었다. 첫 번째가 동물(양, 말, 소 등)의 순장을 통하여 안락의 세계로 갈수 있다고 믿었다. 두 번째는 암흑, 고난의 세계이다. 따라서 두 번째의 세계에 빠지지 않으려면 헌제(獻祭) 혹은 인제(人祭)의 상장의식을 통해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본교의 죽음에 관한 경전인 구승경론(九乘經論)에서는 당시 본교도의 생사관과 장례의식에 관하여 세밀하게 논하고 있다. 이 경전에서는 무려 360종의 죽음의 관하여, 그리고 4종류의 장례방법, 마지막으로 81종에 해당하는 인제와 헌제에 관하여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특히나 구승(九乘)중에 하나인 사행(斯幸, 혹은 세간행파)편은 제사와 주술, 상장방법에 관한 전문 지침서로 볼 수 있다. 티베트의 고대문헌인 ‘오부유교등대신유교(五部遺燈大臣遺)’에서도 ‘세간행파’에는 360종의 죽음의 방법과 4종류의 주류 장법이 있음을 기재하고 있다. 또한 본교의 전통적인 경전인 ‘색이의(色爾義)’나 ‘색이미(色爾米)’에서도, 당시 제사의식에 관한 각종 행위와 의례절차 등을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데 특히나 오늘날 천장터에서 행해지는 생동적인 해부의 내용을 담고 있어 그 신빙성을 더해주고 있다.


예를 들면, 본교의 상장의식은 시체를 들판에 버리기 전에 혈육제의식을 거행한다. 무사가 주도하는 영혼제이다. 이 의식의 주된 내용은 시체의 해부와 영혼이탈이다. 피의 향연이 끝나면 곧바로 영혼의 전송식이 진행된다. 주술사(대부분 무사)가 시체의 정수리에 손을 가져다 대고, 정수리를 통해 ‘영혼’을 배출시킨다. 그런데 이 의식은 오늘날 천장의식의 ‘포와(頗瓦)’라는 밀교의식과 매우 흡사하다. 이는 티베트의 천장의식이 인도 문화에 연원을 두고 있다는 일부 견해에 또 다른 관점을 던져주기에 충분하다. 즉 본교의 삼계설(三界說)과 당시 무사의 종교적 역할은 원시천장에서 오늘날 인간의 천장으로 전환하는데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고대 원시사회에서 본교와 무사의 종교적 정치적 능력은 티베트사회를 견인하고 재구성 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자 실체였던 것이다.


심혁주 한림대 연구교수 tibet0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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